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도전한 이직, 이쯤되면 성공이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양가를 포함한 누구의 도움 하나도 없이,
등하원을 6년째 함께 해내고 있다
등원은 내가, 하원은 아내가 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면 알겠지만, 다 똑같이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가방을 싸고(설거지 등)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깨워 씻기고 입히고
시간이 허락하면 머리를 묶는다
(내가 씻고 옷 입는 시간도 포함된다)
요즘은 머리 묶어줄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첫째가 원하는 만족도에 도달하지 못해서 적당한 타협을 이루고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부터,
셔틀버스 도착 15분 전까지 몇 번의 알람을 맞춰둔다.
마지막 알람이 울리면, 다급해져서 우당탕탕
신발장으로 달려가고, 아이들의 변덕을 받아주며
셔틀을 타러 둘째를 안고 가방을 한짐 들고 달린다.
겨우 등원을 마치고난 뒤,
버스를 타서 헝클어진 옷을 바로잡는다.
전철역에 내려서 15분에 한대 오는 전철,
저걸 놓치면 지각이라는 생각에
구두 신은 다리로 전력으로 달려나간다
(덕분에 족저근막염에 시달리는 중)
첫째 돌 때부터 어린이집 4년, 유치원 2년
둘째 돌 때부터 어린이집 3년째. 둘의 터울은 3살
그렇게 6년을 등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살아오며 느낀 그 어떤 행복감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행복감을 느낀다. 정말.
만원 전철에 올라타서 땀을 식히면서
그동안 등원하며 찍어온 두 딸의 사진들을 보는데
모든 순간이 한편의 영화처럼 흐른다, 아름답게.
처음엔 둘을 함께 안고 등원 시켰는데
6살 여름쯤부터는 첫째가 안아주지 않아도 된다며
아파트 코너를 돌기 전에 품에서 내려갔다.
코너를 돌면 셔틀 버스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고, 그중 누구도 아빠가 안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짐작이 된다. 나와 딸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
이런 소소하지만 큰 분기점이 되는 것 같은 순간들을,
아이들 등원을 시켜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느꼈겠는가
경험해 본 바 결코 대기업보다 업무가 적지 않지만,
배려해주시는 조직 문화 덕분에 유연근무를
사용하면서 두 아이들의 등원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내 일에 최선을 다 한다. 퇴근할 때까지 일을 다 못하면 노트북을 가져가서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마무리 지어 보낸다. 그게 마음 편하다.
투자 대박, 초고속 승진? 성공의 지표일 수 있다.
다만, 나처럼 내 가족을 위해서 인생에 커다란 모험을 거는 것(대기업 퇴사), 그리고 그 모험을 통해 쟁취해 낸 가족과 함께 보내는 평일의 시간들.
우리 딸들, 아빠가 너희 아이들 등원
도와줄 때까지 건강할게! 사랑해 공주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