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해야한다는 부담? 가만히 있어도 된다 이젠.
주말 잘 보내셨어요?
(웃음을 띠며)
야, 니가 뭔데 내 주말을 신경써?
직장인 3년차였던가.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차장급 선배에게 웃으면서 주말 안부 인사를 건냈고,
선배는 특유의 '갈구는' 말투로 대답을 했다.
주변 팀원들은 평소에 봐왔던 패턴이라 익숙하게,
"아 뭐예요 정말"하면서 크게 웃고 월요일을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플레이를 이해하는, '그라운드 룰' 같은 것.
나는 2010년, 대기업에 입사했다.
사회 생활을 첫 시작할 때, 생각보다 배울게 많았다.
밥 먹을 때 휴지깔고 숟가락 놓기, 물따르기
새벽까지 회식해도 끝까지 버티면서 선배들 택시태워 보내드리고 문자로 인사하기
회식 다음날 가장 먼저 나와서 멀쩡하게 일하고 있기
어른들이 농담하면 웃기만 하고 2절 3절 애드립치지 않기
선배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면 아니라고 말하기
이런 것들은 차라리 견딜만하고 쉬웠다.
내가 가장 어려움을 느낀건 그런게 아니었다.
적게는 5살, 많게는 15살도 넘게 차이나는 선배들과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리액션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봐놓고 대답하고 있으면 듣지도 않는 식이지만)
사회는 누군가와 뜸을 들여가며 가까워지는 곳이 아니며,
그저 빠르게 '적응'하고, '내가 선배들에게 맞추고',
굉장히 어려운 '그들의 유머와 언어'에 적응해야한다고 배웠다.
매번 월요일이 반복될 때마다,
답답함을 느끼며 마음속의 메모장에 적어뒀다.
내 후배에게는 잘 해줘야지
점심도 알아서 먹으라고 하고 자유 시간도 줘야지,
주말에 뭐했냐고 형식적으로 물어보지 말아야지
불편할텐데 스몰토크도 걸지 말고, 일만 하게 둬야지
그 날들로부터 15년.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갈구는 농담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어찌됐거나 눈을 마주친 후배와 또는 동료와
어떻게든 '한번은 웃고 넘어가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 되었다.
달변가에, B급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보니
아주 가끔은 집에 가면서 말 실수를 한 것 아닌가 하는
후회를 반복하는 순간도 겪는다. "그냥 가만히 있을껄" 싶은 그런거.
'아저씨'인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본다.
나야말로 후배들이 불편하다. 생각보다 많이.
사무실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동안,
후배들이 저 복도에서 걸어오면 난 불편하다.
나에게 인사를 할 것이 예상되고,
나는 웃으면서 받을지 핸드폰을 보며 못 본적 할지 고민한다.
업무로 엮여있는 사이에도, 뭔가를 더 말해줘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그냥 편하게 핸드폰만 보고싶은데
그가 뻘쭘해서 한마디할까봐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한다.
나는 그냥 혼자 읽던 책 마저 읽고 싶은 사람인데!
내 나이와 직급, 조직 내 포지션이 자꾸 뭔가를 하게 만든다.
가끔 표정을 드러내는 후배들을 보면, 차라리 '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하다.
왜냐고? 그 친구들에게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까!
지긋지긋한 오지랖의 고리를 끊고자,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을 선택했다!
오히려 나는, 사회 생활 초년부터 생각해온 것이 있다.
회사는 서로 계약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각자의 목적과 본분에 맞는만큼 각자가 에너지를 쏟다가 가면 된다
내가 임원도 아닌데 어떤 후배를 끌어줄 힘이나 있는가
주말에 뭘 했는지, 솔직히 나도 안 궁금한데 쟤는 궁금하겠나
결과적으로, '물어보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 외엔 서로 말할 '권리'가 없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지 딱 한달,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순항하게 됐다.
출근할 때 인사하고, 하루종일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남의 업무 시간과 방법을 존중하니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오해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줄이니 서운하지도 기뻐 날뛰지도 않는다(기복이 없다)
말하는 힘을 아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들을 에너지가 생겼다.
관계에 무리수를 두기보다 시간을 함께 흘려보내는
자연스러운, “원래의 나”다운 삶을 올해 찾아가고 있다
내가 늘 그리는, '적당히 드라이'해서 뽀송뽀송한 삶
나이가 들면 말이 늘고, 편해진다
그 편함은 15년전 나같은 사람들이 받아주면서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형성되는 거다.
생각보다 내 주변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고,
나도 모든 에너지를 일에 오롯이 할애하여 그 많은 일들을 능히 만들어낼 수 있었다
크게 언어적 표현을 하지 않는 조용한 후배가,
"자리에 빵 하나 올려두었습니다"라고 말을 하고는
다시 모니터를 보며 일을 하고 있었다.
사회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느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호들갑 떨지 않고, "아. 고맙다 잘먹을게."
담백하게 주고 받고는,
나도 자리에 앉아 빵을 한참 바라봤다.
좋은 고요함이었다.
강요하지 않음이 모여 오늘의 빵이 나에게 전달됐다
Mind the gap
되게 오랜만에 떠오르는 좋은 문장
대학생 때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피해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사진을 찍으며 나만의 에너지와 무드를 지켜내려던 그 노력들이 생각난다. 애써 홀로 흐르던.
모든 것의 정답은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과 지금의 나, 퍽 마음에 든다.
새해의 내가 기대되고,
은근한 촛불같은 진정성이 느껴져서 감사하다.
아저씨. 이제 괜찮아.
내가 바라던 아저씨의 삶을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
내가 무리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니까.
불편해할 것 없이 내 공간만 잘 지켜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