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고 싶어서 대기업을 그만뒀다

그렇게 키운 사랑하는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by 알렉스키드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유치원 졸업식에서 졸업식 가운을 입고 원가를 부르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다고 해야할까- 처음 느끼는 감동에 눈물이 짐짓 흐르려고 하는 것이었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그리고 나는 딸과 보낸 모든 시간을 기억한다. 생생하게.

아직도 새벽에 잠에서 깨어 우는 딸아이를 달래며 꾸벅 꾸벅 졸며 창 밖 너머의 어스름한 무언가를 바라보던 시간이 바로 어제 같은데.


코로나 시국에 돌도 안된 딸을 원에 보내기 힘들어서, 육아 휴직을 내고 가정 보육을 하던 3개월. 하루 종일 아이를 보고, 아내가 퇴근할 때 맞춰 저녁을 준비하는 주부의 삶도 지냈었고.

나름 이 시기가 힘들지만 즐거웠다. 근데 힘들었던지 살이 5키로 가량 빠지더라. 애 데리고 휴직 때 회사 한번 갔더니 피골이 상접한 나를 보는 회사 누님들의 안쓰러운 눈빛이란.


누구에게 꽃을 사줄때보다 더 떨리고 가슴 벅차던 순간. 내 아이가 졸업을 하고, 이제 초등학생이 되다니. 언제까지 내 딸에게 이렇게 기쁘게 꽃을 사줄 수 있을까. 사랑해 내 딸.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지던 순간의 감동도 내 몫이었다


어린이집 첫 등원은 당시 휴직 중인 내 담당이었다. 등원 첫날은 함께 원에서 아이들과 잠시 적응 시간을 가졌고, 둘째날 등원을 하는데 아이를 혼자 들여보내고 30분 뒤 찾으러 오시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혼자 원 밖에 남겨져서, 근처의 카페에 앉아 홀로 커피를 마시던 그 기분. 뭔가 손을 떠난 느낌이 들면서, 아이를 홀로둔 불안감도 들면서.. 주변의 아이 엄마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이기도 하던 그 기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 혼자 주변과 함께 두 다리를 딛고 일어설 수 있기를 응원해주자는 마음이 든 것이. 부모는 그저 넉넉한 품이 되어주자는.


이제는 익숙하게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옆자리에 앉아 쥬스를 마시고 책을 읽는 친구 같은 딸. 사춘기까지 잘 지내보자. 그 뒤에도 잘 지내준다면 너무 감동일테고.

시간이 흘러, 이젠 초등학교 입학식을 맞았다.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초등학교를 향해 셋이 걸었다. 강당과 교실에서 아이의 자리를 찾아주고, 선생님의 말씀을 아이는 앉아서 듣고 아빠는 뒤에서 멀찍이 바라보고. 바른 자세로 집중하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더라.


제법 달변인 나조차도, 아는 단어들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던 그런 순간이었다.


공부든 뭐든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과 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앞으로도 그저 내 딸을 세상에서 누구보다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 아빠로 남겠다는 생각뿐이다.


부모님께서 꾸리셨던 나의 결혼 전 모습은 어땠던가

지방 회사를 다니셔서 주말에만 올라오시던 아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짧지 않게 집을 비운 누나

내가 학교에 가고 회사에 다녀올때까지 평일에 홀로 집을 지키던 엄마

지방으로 떠나며 중학생인 내게 아빠가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막중한 의무를 주셨고, 나는 딸같은 아들로 20년을 더 살다 결혼을 했다.

화목한 믿음의 가정이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넷이 다같이 모였던 시간은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일주일 중 주말 이틀, 그게 전부였다.
돈 잘버는 대기업을 그만둔 이유, 내가 바라는 가족의 그림을 함께 그리기 위함이었다.


해외로 돌아다니는 업을 따라 일하게 되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나는 내 아내와 아이들을 매일 보고 싶고 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나는 누구보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존경 한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지긋지긋한 가난의 꼬리를 아버지 대에서 끊으셨기때문에, 내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결혼 전 대기업을 퇴사했고, 급여는 많이 줄었지만 서울에 근무할 수 있어 가족과 매일 함께 할 수 있는 기관으로 이직을 한 것이다. 두 아이 모두 육아휴직을 3달씩 쓸 수 있었고, 지금도 매일 직접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씻기고 같이 가방을 정리해준다.


앞으로도 내가 간절히 원하던 소망대로 나는 언제나 나의 아이들 곁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내 소원, 그 자체니까.


내가 만들고 싶던 가족의 모습에 언제나 생각지 못했던 큰 틈을 채워주는 두 딸들, 아빠가 많이 사랑해.


아이만 크는 게 아니라 아빠도 함께 큰다. 언제 어른이 될까 늘 고민 했지만 이렇게 늘 어른이 되어가나보다. 오늘 밤에도 잠에드는 아이들을 꼭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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