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옹졸해진다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한다

직장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옹졸함의 주체는 누굴까

by 알렉스키드

누군가에 의해 내가 손해를 본다라는 사실은 사회 연차가 쌓일수록 가장 기피해야할 요소가 된다. 다만, 그 범위를 정하는 건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직장인은 늘 고민하고, 때로는 그 고민이 남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지상 과제가 된다.


왜? 옹졸해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만만해보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옹졸해보이고 싶지 않다는건 사실 성립이 불가한 가설이다. 근데 왜 우리는 이런 고민을 매일 안고 사는걸까?


업무 시간, 오가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수만가지의 감정이 교차한다. 일을 하러 모였는데, 결국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신경써야하는건 어쩔수 없다.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니까.


다른 부서와 일할 때는 우리 부서가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고민해야하고, 부서 내에서 일을 할 때마저도 내가 더 일을 하게되거나, 내 후배가 어려운 일에 처하지 않도록 날을 세우게 된다.
수많은 카드가 있다. 언제부턴가는 나만 갈아내는 카드가 아니게 된다. 그래. 내가 수긍하면 나를 둘러싼 우리가 힘들어진다. 이것조차 변명일까?


지켜야할 것이 생겼다.

나의 결정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 우리쪽이나 상대쪽의 시간과 손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



주니어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다. 시키면 묵묵히 일하고, 화내면 죄송하다는 말로 덮어쓰면서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라며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애 썼다. 나를 누르고 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원래부터 앓고 있던 예기불안이 심해져서 불안장애를 겪게 되었다. 연일 이어지는 스트레스로 피부는 화농성 여드름을 안고 살았다. 회사를 떠나 사람에 대한 기피가 생기게 되고, 결국 퇴사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과 아픈 나를 흘러보내고나니, 결국 내게 남는건 두가지 선택지였다. 무릇 내 마음과 자신을 지켜야한다는 생각.

자기방어. 사회인이 되기 전에는 한번도 삶에 닿아본 적 없던 그런 개념.


상처가 가득한, 뾰족한 가시같은 마음만 남아버린 자신을 마주하는 비참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대다수의 사람이 이렇다면 위로가 되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나 외엔.

그보다, 나를 지켜야한다

남에 대한 배려는 결국 나를 깎고 희생할 때 가능하니까 라는 생각이 점차 자라나는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다음엔 네가?


세상에 그렇게 달콤한 것은 없다. 의사결정자는 자리를 떠나면 끝이고, 누군가를 위해 세이브했다고 생각한 나의 공은 조용히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 현실이다.


그저 착한 사람처럼 웃고 살면 우리의 관계도 노력도 누군가의 부재와 함께 사라지게 되는 현실을 몇 년 맞이하다보면, 어느순간 아득하게 떠오르는 몇 장의 사진들이 있다.


그래서 그 선배가 자취를 감췄구나

그 선배가 그래서 화를 냈구나

그래서 그 팀은 와해됐구나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웃는 가면을 쓴다.

페르소나-라고 해야할까나. 많은 선택지가 놓인 것 같지만 딱히 결정권은 없는 하루의 경우들을 보면서, 그리고 퇴근하면서 바보같은 하루의 선택에 대한 후회들을 하면서 자책한다


할수 있는 일이라곤 애꿎은데 화풀이하는게 전부일진데,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는걸까? 누군가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개인이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왜 진짜 내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까라며, 사회 롤에 충실한 우리의 노력마저 스스로 평가절하해버리는 것이다


부디, 스스로의 노력을 무시하지 말자.

노력하고 애쓰는 나 자신을 위로하고 알아줄 것은 나 자신뿐 아닌가. 마음껏 옹졸해져도 좋다. 적어도 혼자 독백하는 순간만큼이라도 할 수 있는 한 한껏 옹졸해지자.


내일의 페르소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처받은 어른 아이인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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