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왜 아파트 얘기나 아제 개그만 해야되요?

나이가 들면 그저 입을 닫으라는 세상, 가끔 먹먹하다

by 알렉스키드

여의도가 건너편에 보이는 호텔에 이틀 정도 머물렀다. 가족 모두가 잠든 밤, 창문 너머 한강과 여의도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릴때 엄마 손잡고 순복음교회에서 예배 드리던 일

63빌딩 수족관도 가고,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일

스물한살 때 남자 넷이 윤중로 벚꽃놀이를 본 일

IFC몰이 생기기전 텅 빈 주말의 여의도에서 데이트를 하던 일

직장인이 된 친구들과 여의도 야장에서 실컷 떠들고 택시를 타기 전까지 회사 욕 하던 일


아름답고 다양한 추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 한켠이 아릴만큼 잔인한 현실의 단면이.


이젠 이런 얘기 어디서도 못하겠다


누군가가 나의 말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 다만 자유롭게 말하고 생각할 기회를 자꾸 박탈당한다. 회사에선 일 얘기만 해야하고, 친구들은 도파민 없는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 사회에서 ‘기성세대’가 된다.기성세대는 더이상 ‘달달한 이야기’를 하면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시기에 봉착한 절체절명의 때인 것이다. 나는 마흔하고도 몇 살을 더 먹은 기성세대 그 자체다.


쉽게 말해서,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것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모든 것에 프레임이 씌워진다는 말이다. 만날 친구도 지인도 줄어들어가는 ‘좁아지는 삶’에 더해지는 혹독한 나이의 덫인 것이다.


옛 추억을 이야기하면 과거에 빠져산다는 말을 듣고
요즘 여의도를 이야기하자면 철 없게 남들 노는데 끼려고 하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저 한두마디 했을 뿐인데, 이미 모든건 담정이 지어져있다.


나이가 들면 감상에 젖는 것 자체가 사치다
결국 “여의도 아파트 살껄” 같은 말이나 해야 대화가 통하는,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한다고 어디서 덜 손가락질을 받는다. 통탄할 지경이다.


썸 탈 것도 아닌데 왜 직장인 모임에 나가고, 젊은 애들 모이는데 왜 사회인 취미 커뮤니티에 가느냐는 말은 나도 진작에 알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 난 서서히 침몰해야하나보다.


가슴이 자주 답답하다. 싸이월드,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sns를 쭉 이어온 나지만 이제는 그 세계에 내 나이의 누군가들(더 정확히는 대화에 관심을 가져줄)이 더는 없다. 있어도 돈 이야기를 하거나 아이에 대한 어떤 것들만을 이야기할 뿐.


20대 때는 워낙 예민한 감성이라도, 그런 것을 존중받는 일부가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린 기분이다. 내 생각들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는 반토막이 난 느낌이랄까.


그냥 아무 말이나 해버리면 안되는 나이다. 왜 어른은 누군가에게 기대를 줘야하고, 역할을 다해야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시들어가기만을 강요당해야할까?


단정과 단죄. 그 어느 사이에서 일과 가족 외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편하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저 창문 너머 강 속에 내려둔다.


난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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