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눈치 보기 싫어서 혼밥합니다

점심 시간에는 나도 쉬어야하니까요

by 알렉스키드
저는 회사에서 만나는 후배들에게 호불호를 두지 않는 편입니다. 나나 그/그녀나 모두 회사와 계약한 동등한 관계라는 생각이니까요. 다만, 휴게 시간에 대한 답답함이 조금 불편한 사람입니다.

오늘 점심, 후배가 어떤 인사를 건냈는가?

맛있게 드세요
(약속 있으니 따로 먼저 나가겠다는 말)

나 : 네, 맛있게 먹어요!(웃음)

약속 없으세요?
(점심 같이 드시겠냐는 말)

나-1 : (일단 누가 남았는지 보고 후배들만 있다면) 아 저는 따로 먹을게요 다녀오세요!(웃음)


나-2 : (선배들이 같이 있다면) 네 갑시다.(벌떡)


미묘한 차이, 눈치 챘는가? 그렇다. 나는 십여년째 선배들에게 후배들이랑 좀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존대를 하든 반말을 하든, 거리를 두는게 느껴진다나. 내가 친근한 이미지를 누군가에게 주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감내하겠다.


반론 하나. 나도 친할 사람들은 알아서 친하다.

오히려 먼저 연락해서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하고, 따로 불러내서 알아서 커피 마신다는 이야기다. 내가 하고 싶은건 마음에서 우러난 함께 하는 시간이지, 눈치성 무리로 먹는 식사는 불편하다.

더군다나 나는 철저한 오프라인형 인간이다. 카톡은 언제 끊어야할지 모르겠고, 표정이 안 읽히는데 대화가 되겠나 라는 생각도 있다. 그러니 관계 폭이 줄어든다. 대신 더욱 진한 이야기를 하는 좁은 관계를 택한 거다.


수저 놓고 물뜨고 그냥 알아서 한다. 나라는 인간이 별것도 아닌데 네가 나를 챙겨야할 이유는 없다는 회의적인 조직 관계론자이다보니- 그런면에서 난 선배들이 편하다.


그러다보니, 혼자 밥을 먹는게 너무 편하다.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하는 조직 생활을 후배들이 나에게 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 이랬던가?


반론 둘. 나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첫 회사에서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일년 반만에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 면담을 하며 선배에게 내가 건낸 말은 “앞으로 식사는 혼자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점심 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하고

일 얘기를 하면서 업무가 끊기지 않았다

심지오는 아까 혼나던더 마저 혼나기도하고

면담 후 선배의 배려로, 점심은 혼자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혼자 밥을 먹게된 내가 느낀건 기쁨이 아니라 허무함이었다. 이게 뭐지? 라는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 이런 별 것 아닌 자유를 위해서 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괴로웠던건가라는.


그래도 선배님은 2년차가 됐을 때 이제 약속도 자유롭게 잡으라고 열어 주셨다. 그렇게 못하게 막는 인간이 따로 있어서 우리 모두가 괴로웠나보다.


반론 셋.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마음을 터놓고 싶어지는 유혹이 생겼다.

직장인이 된 이후, 늘 마음이 불안했다

회사 사람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하면 소문이 났고

동기들은 달래주는 일 말고는 해줄게 없었다

친구들과는 힘든 마음을 터놓을 여유가 없어 그저 빙빙 돌았다

가족들은 걱정할까봐 말을 아꼈다

교회에서는 기도 하자는 말 외에는..


뭐랄까. 늘 절체절명의 시기가 이어졌다.

고작 사회인이 됐다는 사실 하나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가 내던져진 느낌이랄까. 외로웠다. 너무. 여자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근원적 존재로서의 외로움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는 시들어가고 있는데..
그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인데


반론 넷. 혼자 있고만 싶진 않다. 전혀.

여럿이 밥을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단둘이나 소수로 먹는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내 생각이나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고, 그 또는 그녀의 사정이나 생각을 공감할 수 있고. 작은 비밀을 나눠가질 수 있는 신뢰 있는 관계.. 좋잖아?


이런 삶을 살아왔다보니, 후배들과의 점심 식사는 왠만해선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특히 부서 후배들에게는.. 14년전 내가 느꼈던 기분을 후배들이 나와 밥을 먹으면서 느끼게 된다면, 나 또한 사회인으로서 한 명의 개인으로서 즐거울리가 없지 않겠나.


굳이 점심 시간 아니라도 할말은 다 하고, 할 일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겨지는 옵션이 되기보다 주체적인 옵션을 쥐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그래. 사실 그들보단 나를 위해 혼자 먹는다.

(나도 내 시간이 귀하기도 하고)

오해하지 마시길. 회사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점심은 온전한 휴식이고,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지금은 둘 또는 셋이 좋다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굉장히 귀하다. 그러나 과어와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혼자 있는 것만 소중했지만, 지금은 단 둘 또는 소수가 있는 시간 또한 너무나 귀하다는 것.


시간이 많이 지나고 보니 느껴지는 게 있다. 나는 무작정 혼자 있는 걸 원했던 게 아니다. 돌아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을 때, 잠시 혼자 있는 여유를 즐기는 것 뿐이었던 것이다


한번 두번 세번 쭉- 보는게 좋다

그러면서 조금씩 대화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신뢰가 쌓이고- 단면이 아닌 입체의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이.


사회에서 그걸 맹목적으로 원하진 않지만, 아주 가끔 그렇게 이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심해어. 난 당신과 내가 심해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밝은 빛을 쐬면 완전히 눈이 멀어 버릴 것이고,

의식하지 못 할 만큼 희미한 빛을 아주 조금씩 찾아가면,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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