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슬픈 단어라는 사실만 남는다.
아침에는 아프지 않았다.
오롯이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퇴근 무렵이 되니 하루치 아픔이 명치끝에 몰려온다.
이상하다. 별일 없었던 것 같은데?
별일 없음이 아픔을 가져오는 요 몇 주간의 하루들.
필요에 의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상황에 의해 누군가와 가까이 지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
너무나 당연한, 직장의 관계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재회한다.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또 공유하며,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의 시간을 나눠 가진다.
그러면 되는게 회사의 관계다. 그렇지 않나.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라 그런다.
그래 맞다. 이제 나는 어디에 가도 나이가 많으니까.
그럼에도 내 성장통은 너무 쓰리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원인이 너와 나, 그리고 주변의 작은 세계의 변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나도, 입밖의 특정 단어로 단정지었을 때의 너의 표정도. 두렵다.
내겐 믿는 구석이 사람이었나보다.
바보처럼, 누군가를 ‘동의 없이’ 믿어버리곤,
그가 영역을 벗어나 날아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에겐 날아가는 그를 잡을 권리가 없다.
회사에서, 너무 감정적인 것 같으니까.
너무 많은 생각을 담으면 이상해보이니까.
너무. 심각하니까.
나는 아직도 영영-
사람들을 불편해하면서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게 익숙한가보다.
너와 나는 쭉 우리일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나보다. 프로답지 않은.
오해는 혼자만의 갈등을 낳고,
고민은 결국 관계의 덫을 놓는다고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겠나.
이게 사회라고 해버린다면.
괜찮은 척하기 위해 너와 나를 회사원 1, 2라고생각해버리련다. 그래야 미련 많고 기대가 컸던 내가 용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