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먹고 뭘 해온건지 부끄럽지만, 장기근속 수상을 돌아보며
오늘로 입사 10주년. 나는 공공기관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 중 10년 장기 근속을 축하 받는 시간을 가졌다.
세레머니가 끝나고 난 뒤 후배들이 축하한다고 연락도 줬고, 팀에서는 큰 꽃다발도 준비해서 다같이 기념 사진도 찍었다. 평소 같으면 환하게 웃으면서 즐길 법도 한데, 웬일인지 감사함을 표하거나 함께 기뻐 하기 힘들었다.
요즘 내가 멘탈과 마음이 안 좋은데, 단지 그런 이유에서 기뻐하지 않은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정말 어째서 축하를 받는지 모르겠더라. 나는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게 서러운 시기인데.
얼떨떨했다. 와닿지 않았다고나할까? 그냥 회사 꾸준히 다닌게 전부인데. 나중에 은퇴할 때도 비슷한 감정이려나? 오래 다니기로 작정하고 들어온 회사라서 더 와닿지 않았는지도.
아마 요즘들어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울적한 마음이 좀 드는데(직장 내 위치, 관계, 미래 불안 등), 그래서 덧없이 흘러간 시간이 더 와닿아서 그랬나보다.
삼성 나오면서 내가 바라는 회사는 딱 세 조건이었다.
첫째는 안정
둘째는 서울 근무
셋째는 문과 중심 회사
그렇게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최적의 회사라, 어디 안가고 쭉 다닌 것 뿐이다. 순환 근무제도가 있어 TF도 경험해봤고, 벌써 세번째 팀인 홍보에선 5년째 커리어를 가져가고 있다.
적지 않은 분들이 10년 근속을 축하해주셨다. 행사가 끝나고 팀에서 꽃도 마련해주셨고, 축하한다며 빙 둘러서서 사진도 찍어주셨다. 나중에 인스타 게시물에 선배가 댓글을 달아줬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나에 대한 축하를 이해하게 됐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회사를 위해 헌신한 것은 축하 받을 일이고 너무 고생하셨다.
그래. 축하 받아 마땅한 일이구나. 축하받는게 어색하기만한 심오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이런 일은 스스로도 축하하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자.
환하게 웃으며 응하지 못해 죄송해요. 선택적 내향인인지라, 이런 진짜 고마울 땐 티를 못내요.
동기들과 나란히 수상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저 창문 너머의 어떤 순간이 떠올랐다. 제법 오랜만에 삼성 동기들이 보고 싶은 순간이었다
(삼성 입사 스토리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43
인개원에서 같이 교육을 수료하던 순간부터 퇴사하던 날, 그리고 지금 회사 이직을 확정짓던 모든 순간에 삼성 동기들이 옆에 있었다.
학교 동문이자 같은 조였던 H양이 “축하해요 오빠”라며 뱃지를 달아주던 순간도 기억나고(옆 자리 동기에게 달아주던 세레머니)
주진행 대리님이 “L군, 옷 잘입는건 굉장한 자산이야. 앞으로도 자기는 좋아하는 옷 잘 입으면서 자기 브랜드로 삼아”라며 어깨를 두드려준 기억도
나 퇴사날 한마디도 안하고 줄담배만 피던 W군
공공기관 이직했다니까 내 일처럼 좋아하던 인사팀 동기 A양
참 철없던 내가 이만큼 컸다 친구들아.
성장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다들 고마웠어. 그때 나눈 다짐처럼, 삼성의 별이 되진 않아도 각자 인생에서 찬란한 별이 되어 빛나자.
그리고 지금 회사에 입사하면서, 감사하게 13명이나 되는 동기를 얻을 수 있었다. 신입 시절 동기들은 나를 남들과 달리 “삼성 다니다 온 중고신입”이 아닌 “노는거 좋아하는 착한 형” 정도로 받아주었고, 나는 언제나 동생들보다 무엇이든 제일 먼저 해내는 사람이었다
결혼, 출산, 서울 아파트.. 매번 가장 먼저 뭔가를 하고, 혹시나 조언을 구하면 진지하게 나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꼰대짓이 아닌 동등한 동기로서.
요즘은 사회연차가 쌓이면서 부끄러운 일이 많이 생긴다. 마음 가짐도 이전같지 않은지(특히 요즘) 나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무너지는 정신과 태도를 잡는데 온힘을 쓰고 있을만큼 힘들다.
선배나 후배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부끄러운 모습, 이제 동기들에게는 편하게 털어놓는 내가 되리라. 그래도 되니 맺어진 동기 인연인거고, 이젠 그때처럼 어린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사랑해 내 동기들
형이 너희들 중년 우울증 오면 다 안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