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렉스키드 Dec 15. 2023

복지관 사진 속 공주는 웃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브이를 그리는 그녀를 보며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당당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우아한 공주님으로 성장할
한 소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누나가 초등학교 저학년때의 일이라고 한다

어느날 그 어린 딸이 학교를 다녀와서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내 짝꿍이 도시락을 안 싸와요
엄마가 짝꿍것도 싸주면 안되요?


세상 어느 엄마가 딸의 이런 기특한 부탁을 거절하겠나

엄마가 그날 이후로 매일 도시락을 두개를 싸줬고,

그 어린 소녀가 매일 책가방을 매고 도시락통 두개를 낑낑 들고 학교를 갔다고 한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짝꿍을 위해, 당시 두 모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누나의 짝꿍은 우리 엄마가 해주시는 점심밥을 먹었다.


그렇게 한 학기 넘게 엄마와 누나가 수고하고, 나중에 이 사실이 학급 어머님들 사이에 알려져서는

“어휴 L 엄마, 같이 하지 힘들게 혼자 하셨어요.” 

라며 다같이 그 친구를 위해 돌아가면서 도시락을 싸줬다는, 짧은 동화같은 그런 이야기다


엄마는 아마, 그 아이를 위해 말하지 않았겠지
그야말로 ”소문“이 나면, 아무리 옛날이라도 놀리거나 수근대는 사람이 생길테고
결국 상처받는 것은 그 ”짝꿍“일테니. 어른스럽게 대처하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 아이가 도시락을 싸올 수 없었는지는 아마 선생님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을터

그저 점심을 굶는 아이에게는 짝궁의 착한 마음과 엄마의 선한 노력,

그리고 그 둘의 마음과 노력이 은은하게 퍼져 모두의 마음이 닿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저 순수하게, 매일의 도시락으로 완성됐음을


아빠와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책을 읽어주는 아빠에게 기대서 낮잠을 자는 그런 삶을 그 짝궁은 살아봤을까. 당연한 삶이 왜 그 소녀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을까.


대학생 때는 봉사활동을 다녔다

교회 대학부를 통해 독거어르신을 도와드리러,

대학교를 통해 아이들 공부방과 지역 돌봄 센터를-


봉사활동을 했다고 자랑하는건 아니고,

‘봉사한다는 행동이 어색하다’라는 식의 거부감이 들지 않을만큼, 나 스스로 봉사에 대한 설득이 될만큼은 했던 것 같다는 말.


봉사활동이라는 단어부터, 행동에 이르기까지 사실 성인이 되면 많은 고민과 개인의 선입견이 생기지 않나. 시니컬한 나도 그런 어색함과 내적 고민이 깊었는데, 봉사를 다니면서보니 그런 편견이 사라지고 마음과 행동만 남더라. 그리고 주의해야할 점도 알게 되고.


그후 직장에 들어가서는 완전히 발길이 멎게 되었다.(아동 "후원"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그런 피곤하고 재미 없는 어른이 되버린 것이다.


중간 중간 회사에서 가는 김장 담그기 같은 봉사는 몇번 갔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봉사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이런 부분도 분명한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수막과 사진은 불편하지만 납득이 가는 현물이나 기부금 지원이 따른다면 부분 찬성이다.
단, 괜히 사진에 아이들, 어르신들을 끼워넣거나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가급적 '중장기적인 호흡'으로 길게 함께 가면 좋을텐데 말이다.


샹들리에가 늘어선 멋진 대궐이 아니더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웃으며 누워 천장을 볼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없다는 슬픔이라니.


그 사이 나는 딸 둘을 가진 아빠가 되었다.

매일 아이들과 책도 읽고 같이 씻고 간식도 먹고,

“엄마는 혼내는데 아빠는 놀아줘서 좋아“라는 달콤한 말을 큰 딸에게 듣는 행복한 아빠.


우연한 기회로 다른 본부에서 계획한 복지관 봉사를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시설 매니저님들과 직원들이 함께 가서 시설 안전 점검, 소방/전기 공사를 해주시고,

폐기물 처리 등 환경미화를 해주시는 “제법 쓸모 있는” 봉사를 하시기에 참여했다.


담당하신 해당 부서 팀장님도, 딸 바보 아빠에 굉장히 섬세한 마음을 가진 분이셔서

사전 식은 빠르게 우리끼리 진행하고, 종일 닦고 부시고 치우고 정리를 진행했다.

아이들과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애초에 배려있게 준비하셨던 점이 마음에 들었음.


복지관에는 여아들이 살고 있었다,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일과를 보내다보니, 복지관의 다양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복지관의 작은 쪽방에 5년 전쯤 유명 장난감회사에서 기부해준 장난감들은,

마지막으로 언제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는지 모르게 질서 없이 쌓여 있었고


강당에 있는 도서들이 오래 됐고, '온전한 전 집'이 없이 중간 중간 책이 빠져있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1권부터 마지막권까지 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비어있는 책들을 구할수도 없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놀수 있는 것들에 제약이 있고 한계가 있다는 것.
성장하며 누려야 할 당연한 것들을 못하는게 '너무 많았다'


낡은 것에 대한 노스탈지아는 옳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선택이 아닌 “주어진”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어떤 아이들은 평생을 인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을수 있겠구나.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못보던 것들이 보였다.

내 아이가 당연히 누리는 것들과는 다른 것들.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가 집에 가지 않고 보육원으로 돌아온다. 사춘기의 예민한 나이에, 타인과 함께(아이들에게는 가족일 수 있다. 미안하다.) 공간을 나눠 쓰면서 새 것보다는 헌 것을 쓰고, 가지고 싶은 것들을 말할 수 없고, 부모님이 사주는 것이 아닌 '모르는 누군가'가 사준 것들을 쓰게 된다. 그것조차 대부분 물려받는다. 그것마저도.


복도에 붙어있는 예쁜 공주님 사진

스치다 본 그것에 내 모든 시선을 빼앗겼다.


너댓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공주님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쓰고 있다.

해맑게 웃으며 '내 딸이 짓는 표정'과 똑같이 브이를 그리며 찍은 사진이다.


(함부로 상상하고 마음을 담아서 미안하다)

명치 끝이 아팠다. '아이를 낳은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일 터.

그들은 행복한데 내가 멋대로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다만, 내 딸이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하는 내 딸 나이 또래의 저 공주님이 사진 속에서 브이와 웃음을 짓고 있다. 근데 그 사진 속의 아이의 모습을 보는데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언제일까. 이 아이들이, 친구들이 누리는 당연함에 대해서
나의 삶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아이가 마음껏 투정을 부릴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괴로운가. 내 감정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어린 시절 배워버린다면 그 아이의 여생은 얼마나 비극인가.


드레스를 입고 등원한 어린이집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도 즐겁고, 그대로 드레스를 입고 하원하여 친구네 엄마와 우리 엄마와 넷이 문센에 가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는 즐거움이 있다. 친구랑 싸우고 집에 가더라도 엄마가 얘기를 들어주고, 깨끗이 씻고 포근한 새 이불에 누워 내 방 침대에서 엄마 아빠의 굿나잇 볼 키스를 받으며 잠든다.


사진을 찍을 때도 찍은 그 뒤에도,

어떤 소녀에겐 계속 즐거운 삶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당연함을 선택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

마땅히 누릴 소녀의 행복을 빼앗은 것도 어른이고,

이렇게 마음 아파하는 것에 대해서, 가식 떨지 말라고 값 싼 동정하지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어른이다.


나는 끝맺음을 내지 않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이 글은 끝맺음을 내기 어렵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인데, 뭐라 쉬 표현하기가 어렵고, 어디까지 감정과 마음을 허락해야할지도 도무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봉사활동을 독려하는 글도 아니고,

무책임한 어른들이 나쁘다고 손가락질하는 글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아이만큼만
사진 속 공주님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영원히 결론 내릴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이다.

학생 때도 이런 광범위한 세상의 단면들을 보면 나의 무력함을 느끼며 좌절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의 나로서는 뭔가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다.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까 고민했는데,

다시금 그 고민에 빠져드는 사흘의 시간이다.


오래전에 즐겨 묵상하던 노래 한 구절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의 문은 열어둔 채 글을 닫는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나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나중에 아빠도 네 손을 잡고 걸을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