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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롱고스 Sep 11. 2019

힘들게 지킨 아이슬란드의 보석, 황금 폭포 굴포스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가족여행 #3

아이슬란드는 화산, 지진과 함께 빙하의 나라이고, 매년 빙하가 녹아내려 수많은 폭포를 만든다.

포스 Foss란 아이슬란드어로 폭포를 의미하니, 굴포스 Gullfoss란 황금 폭포라는 뜻이다. 굴포스를 정점으로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도는 유명한 투어 루트를 골든 서클이라고 하는데, 그 이름이 굴포스에서 기인한다고도 한다. 폭포는 아이슬란드 북동쪽 방향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흐르는 흐바타 강(Hvata River) 협곡에 발달해 있다. 옅은 잿빛의 빙하수를 토해내고 있는데, 왜 이름이 황금 폭포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좁은 협곡에 칼로 자른 듯 90도에 이르는 낙차 큰 폭포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게이시르에서 간헐천에 매력에 푹 빠졌던 우리는(천년의 역사 싱벨리르와 숨 쉬는 지구 게이시르) 늦기 전에 매점에서 샌드위치와 물을 사서 들고 굴포스로 차를 몰았다.(샌드위치와 물 한 병이 대략 2만 원 꼴이다. 역시, 혀를 내두르는 물가에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 게이시르에서 굴포스까지는 매우 가까워서 불과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이시르에 도착할 때만 해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으나, 변화무쌍한 날씨의 아이슬란드는 굴포스에서 너무도 화창한 파란 하늘로 반겨주고 있었다.

골든 서클의 핵심 포인트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열었더니, 쿠우우- 하는 웅장한 소리가 들리고, 앞쪽에서 엄청난 물보라가 수증기처럼 하늘로 솟아 올라가고 있었다. 예전에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는 천지를 진동하는 폭포 소리와 압도하는 높이, 엄청난 수량에 온 몸이 위압감에 눌렸었는데, 굴포스는 느낌이 다르다. 나이아가라가 오랜 세월 동안 주변을 지배해 온 전성기의 왕의 느낌이라면 굴포스는 왠지 절제된 규칙을 지키는 모범생 같은 느낌이랄까.


넓은 평원 위를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날카로운 칼에 잘린 듯한 수십 미터 땅 속으로 사라진다. 자연 상태의 하천에서는 이런 지형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이 지역이 활성 단층대임을 보여주는 증거인데, 실제로 폭포 앞에는 단층 활동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폭포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높이 11미터의 상단부 폭포는 다소 경사를 타고 강물이 내려오지만, 하단부 폭포는 직벽 20미터 아래로 물이 떨어지며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하단부 폭포 아래로는 내려가서 볼 수 없다.

설명문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도 단층 활동으로 폭포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굴포스 협곡은 길이 2.5 킬로미터에 총깊이는 70미터에 이르는데, 빙하기 말에 대 빙하의 홍수가 이 지형을 깎았다고 한다. 폭포는 이 지역의 지질 특징을 보여 주는데, 현재의 폭포 엣지 부분은 용암이 단단하게 굳은 현무암층이고, 무른 현무암층은 빙하수가 깎아내렸다. 이러한 지질층은 빙하기 중반에 생겼다고 한다. (현장 안내문)


폭포 위쪽으로는 협곡을 따라서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거기서 보면 평원 위를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갈라진 지각의 틈을 따라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아이슬란드의 폭포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인데, 수억 년간 자연적으로 침식된 지형이 아니라, 화산 활동으로 급격하게 생긴 지형임을 알 수 있다. 협곡 위 탐방로를 걷다가 폭포 반대쪽으로 굽어 보니, 평원 저 너머로 빙하가 보인다. 지도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Ice Cap, 랭외르퀼 Langjökull의 끝자락이 아닌가 싶었다. 이 흐바타 강물은 저 빙하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왼쪽 위의 탐방로와 중간 아래쪽의 폭포 진입로. 강물이 평지를 흐르다가 갈라진 지각 틈으로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굴포스 협곡의 탐방로에서 바라본 빙하. Ice Cap이라고 부르는 듯.

협곡 위 탐방로를 따라 폭포 가까이 있는 전망대 쪽으로 가 보았다.

그제야 20미터 아래로 떨어지는 하단부 폭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좁은 협곡으로 엄청난 수량의 폭포수가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칼로 자른 듯한 협곡 양쪽의 땅을 보니, 단층 활동으로 인한 지각의 변화가 그대로 느껴졌다.

위쪽 탐방로에서 바라본 굴포스

폭포 진입로를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진입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엄청난 바람과 물보라가 불어오는데, 자칫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협곡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얼마나 센 에너지를 분출하는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좁은 곳으로 일제히 떨어져 부서지는 폭포수가 좁은 계곡 벽 사이에 압력으로 넣어 물보라를 협곡 위로 밀어 올리면서 마치 수증기처럼 하늘로 뿜어 올리고 있었고, 물방울들에 부딪힌 햇빛이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장관이었다.

폭포가 방출하는 엄청난 양의 수증기 덕분에 그 상공에서는 항상 구름이 발달한다고 하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더불어, 석양빛을 받은 물안개가 황금빛으로 빛나기 때문에 황금 폭포로 불린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폭포의 바람과 물보라는 강력했다.

굴포스 하부 전망대로 진입하는 길. 폭포와 햇빛이 만드는 무지개가 아름답다.
물보라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 들어가야 한다.
폭포 아래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물보라를 맞아보면 그 에너지가 실감난다.

진입로를 통해 하부 전망대에 도착하면 잿빛으로 무섭게 흐르는 상단부 폭포의 물줄기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스위스와 독일의 접경지대에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크다는 라인 폭포가 있는데, 그 폭포가 굴포스의 상단부 폭포 만한 것 같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아래에서 배를 타고 볼 수 있어서 규모에 압도가 되나, 굴포스는 하단부 아래로는 내려갈 수가 없어서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아래 전망대에서는 물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어 조심해야 한다.
아래 전망대에서 본 상단부 폭포의 모습. 물살이 거세다.

우리가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폭포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시그리두르 토마스도티르(Sigríður Tómasdóttir, 1874 ~ 1957)라는 아이슬란드의 한 여성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7년, 굴포스 지역 땅 소유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의 회사에 수력발전소 건설이 가능하도록 땅을 빌려주는 계약에 서명을 했다고 한다.(다행히 땅을 팔지는 않았다고.)

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 굴포스는 수장될 위기에 처했던 터.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토마스도티르는 이에 격분하여 자신의 저축을 털어 변호사를 고용, 법정 다툼에 나섰다. 법적으로는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었으나, 대중적으로 크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시그리두르 토마스도티르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몇 번이고 레이캬비크까지 먼 길을 가서 정부에 항의 운동을 펼치던 그녀는 공사가 시작되면 폭포에 투신하겠다고 협박했고 기나긴 다툼 끝에 수력발전소 건설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녀를 대리했던 변호사 스베인 비요른슨(Sveinn Björnsson)은 후에 아이슬란드의 초대 대통령(President)이 되었다. 1957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의 일원이 굴포스와 주변 지역을 정부에 매각하면서 지금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1900년대 초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했던 때이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도티르는 환경운동의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고, 굴포스의 한쪽에 그녀의 동상이 서 있으며, 2010년부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굴포스의 전설'로 실리고 있다고 한다.


굴포스의 휴게소에서 잠시 커피 한 잔을 하고 난 후, 레이캬비크로 출발했다.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기보다는 골든 서클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오기로 하여 셀포스 Selfoss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아이슬란드에서는 강과 호수뿐 아니라 화산암 지대 등 달리는 주변의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면서도 몇 번이나 차를 세우고 내려 주변을 둘러봤는지 모른다.


시간에 맞추어 레이캬비크로 돌아와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 날 한 레스토랑이 아이슬랜딕 맛집이라고 해서 갔었는데, 1시간 반을 기다리라고 해서 포기하고 이날 저녁으로 예약을 해뒀기 때문이었다. 가격은 런던보다도 20-30% 비싸서 후들후들했지만, 우리는 식도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스타터는 모두 제치고 메인 요리와 키즈 메뉴로 선정하여 저녁을 먹었는데, 영국보다야 훨씬 맛있었으나 당분간 '맛집' 투어는 포기해야 할 정도로 출혈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왔어도 아직 해는 서쪽으로 채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피곤한 가족들은 숙소로 일찍 돌아왔고 숙면을 위해서 두터운 커튼을 내렸다.

다음 날은 섬의 남쪽 해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자, 얼마나 맛있길래 아이슬랜딕 맛집인지 한번 들어가 봅시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는 시간인데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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