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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롱고스 Sep 09. 2019

천년의 역사 싱벨리르와
숨 쉬는 지구 게이시르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가족여행 #2

자유인들의 야외 의회, 싱벨리르 Þingvellir 국립공원

아이슬란드의 유명한 투어 루트인 골든 서클 Golden Circle은 레이캬비크를  출발하여 싱벨리르와 게이시르 Geysir, 굴포스 Gullfoss를 기점으로 한 바퀴 도는 일종의 링로드(Ring road)를 의미한다. (섬 전체를 도는 해안도로를 공식적으로 링로드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 곳이길래 ‘골든’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이번 여행의 전반부는 이 골든 서클을 하루에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아이슬란드의 골든 서클. 싱벨리어와 게이시르, 굴포스가 오늘의 목적지.

어제 도착했지만 할그림스키르캬와 시내만 둘러본 터라(세상 끝의 아름답고 한적한 어촌,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몸이 가뿐했던 우리는 이른 아침에 첫 목적지인 싱벨리르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싱벨리르는 930년부터 1798년까지 아이슬란드의 야외 의회인 알씽 Alþingi이 개최되었던 곳으로 의회와 배후 지역, 참석자들의 부스가 있던 곳 및 정착지 등에 대해 중세 스칸디나비아 - 게르만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음이 인정되어 2004년에 유니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즉,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곳에서 중앙집권을 거부하고 국가 간 수뇌부들이 모여 자유인들 사이의 법을 제정하고 분쟁을 해결했던 것이다.  

실제로, 싱벨리르를 영어로는 Assembly Field라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알씽은 아이슬란드인에게 깊은 역사적, 상징적 연관관계가 있다. 유산은 싱벨리어 국립공원과 알씽 유적 자체를 포함하며, 잔디와 돌로 건축된 50개의 부스 유적과 주변 흔적들이 남아 있다. 10세기 이래의 유물들은 지하에 매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유적지는 또한 18, 19세기 농업 유적도 포함한다. 싱베틀리르 국립공원은 1,000년이 넘도록 보존해 온 뚜렷한 경관을 보여 준다." (출처 :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하지만, 직접 본 싱베틀리르는 세계 문화유산이 아니라 자연유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수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싱벨리르로 가는 길은 광활하고 아름다웠다. 달리던 중간에 호수 풍경에 매료되어 차를 세웠는데, 작은 텐트 두 동이 있었다. 사람을 보기 어려운 아이슬란드의 국도를 운전하다 보면, 세계 각지에서 온 배낭여행족을 가끔 볼 수 있다. 저 여행자들은 지난밤에 백야를 즐겼을까, 은하수를 보았을까?

싱벨리르로 가는 국도변의 캠핑족. 이른 아침이라 잠을 자는지 텐트 문이 굳게 닫혀있다.

레이캬비크를 출발한 지 한시간 남짓, 싱벨리르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간 걸어 들어갔다. 개울물은 아주 맑았는데, 자세히 보니 물이 흘러 떨어질 때 청록색을 살짝 띠는 것이 빙하에서 흘러오는 듯 했다.

싱벨리르로 걸어 들어가는 길

오른쪽에 나타난 거대한 암석 장벽을 등지고 왼쪽으로 돌아보니, 탁 트인 넓은 초원에 수많은 갈래의 강이 흘러 싱벨리르 호수로 흘러들고 있었고 멀리 보이는 산과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장관처럼 펼쳐졌다. 호수 쪽으로는 싱벨리르 교회와 몇 개의 작은 건물들이 보였다.

싱벨리르로 들어가는 길. 장벽을 따라 걷는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이 곳에 천 년간 의회가 있었고 사람들이 농장을 이루고 살았었다. 저 넓은 초원에 가축들을 방목해서 키웠을 것이다. 나무로 만든 전망대에 휘날리는 아이슬란드 국기가 이 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관광객들도 별로 없고 야생동물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드넓은 평원은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싱벨리르 국립 공원 전경. 오른쪽 호숫가로 싱벨리르 교회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평원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그 가운데 싱벨리르 교회와 4동의 별장 건물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빛 아래 물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목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소란스러우면 안 될 것 같은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은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흥분을 했는지 핸드폰으로 셀프 동영상을 찍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문득, 걸어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봤더니 우리가 서 있던 전망대 뒤로 거대한 장벽이 병풍처럼 서 있어 발이 얼어붙었다. 장벽은 반듯하게 사람이 쌓아 올린 것일 테지만, 너무 오랜 모습이라 지구가 지각 변동을 일으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라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싱벨리르 안쪽에서 바라본 전망대. 사람들이 모여있는 전망대 뒤로 장벽이 솟아 있다.

싱벨리르 교회와 건물들은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작았다.

교회는 알씽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서기 1000년 경부터 싱벨리르에 있었다고 하며, 노르웨이의 올라프 국왕이 서기 1015년에 교회를 건축하도록 목재를 제공했다고 안내문에 나와 있다. 교회 옆 건물은 '싱벨리르 하우스 Þingvellir House'라고 부르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1970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1907년, 덴마크 왕 프레데릭 8세의 방문을 위하여 싱벨리르 내 옥사라르 폭포 Oxararfoss 근처에 'King's House'라는 이름으로 3동의 건물을 지었다고 하며, 이후 총리(Prime Minister)의 여름 별장으로도 사용했는데 1970년 화재로 타버려 이곳 싱벨리르에 새로 지으면서 건물을 늘렸단다.

1970년 당시 아이슬란드의 총리와 부인, 손자가 화재로 숨졌다고 하니 여기에도 비극이 담겨 있다. 행정부 수반의 여름 별장이 이렇게 수수할 수 있나 싶었는데, 1930년대 초기 설계를 그대로 따라 했다고.

교회 옆에는 작은 묘지가 있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만 풍파에 닳은 비석들의 주인은 이 곳 의회와 밀접한 사람들이거나 농장을 일궜던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싱벨리르 교회(좌)와 현재는 총리(Prime Minister)의 여름 별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건물(우)
싱벨리르 교회 앞마당의 묘지

별장에서 우리가 들어왔던 곳 반대쪽을 올려다보았더니, 저 멀리 절벽 위에 사람들이 우리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를 가봐야겠네!’

그 절벽 위의 전망대를 향해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잠시 걸어 올라가다 보니, 길 옆에 지각과 지각이 벌어지면서 생긴 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싱벨리르 호수에는 다이빙 포인트가 있는데, 이 호수에 다이빙을 해서 보면 물속에서도 그 틈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빙하의 크레바스 같고,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길 같은 지각의 틈을 들어다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설명문을 보니, 원래는 일반 트레일로 절벽의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었으나, 2011년에 땅 속에 깊이 10여 미터의 틈이 발견되었단다. 정밀한 조사 결과, 이 틈은 2000년 ~ 2008년에 싱벨리르에 있었던 지진의 영향으로 땅이 갈라져 생긴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지진으로 갈라진 틈 위로는 나무다리를 얹었다.

트레일을 따라 가다보면 저 멀리 전망대 위에 사람들이 서 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암석들이 쏟아져 내린 트레일의 한쪽.

절벽 위에 올라서서 보니, 아까 아래쪽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싱벨리르 호수 옆으로 평원과 교회, 그리고 그 뒤로 멀리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가 또렷하게 들어왔다.

절벽 위 암반도 갈라지고 있었는데, 아들이 갈라진 틈으로 뛰어 들어가서 깜짝 놀랐었다. 다행히, 틈 안은 안전하게 땅으로 막혀있었다.


절벽 전망대 주위로는 오랜 옛날에 사람들이 정착지를 만들기 위해 쌓아올린 듯 돌담들이 이어져 있었고, 일부는 지각 변동의 영향인지 거대한 암석들이 무너져 있었다. 생생히 살아있는 지구의 모습과 거기에 조화를 이루는 인류의 문화가 들여다 보이는 멋진 곳, 싱벨리르 국립공원이다.

트레일 중간 절벽 위에서 바라본 바라본 싱벨리르의 돌담
겁도 없이 갈라진 땅속으로 뛰어 들어간 아들. 사실은 안전한 틈새이다.


가이저(Geyser)의 어원, 게이시르 Geysir

온천이 암반의 압력과 열 때문에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간헐천(間歇泉)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Geyser라고 한다. 이 영어 단어의 뿌리가 바로 아이슬란드에 있는 간헐천 게이시르 Geysir이다.  게이시르는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간헐천으로 알려져 있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을 떠나 게이시르에 도착할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우였지만 변화무쌍한 아이슬란드의 날씨를 믿고 입구의 휴게소에서  20여분 가량 빗줄기가 약해지길 기다려 간헐천을 보러 움직였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온천 지대에 여기저기 연기가 솟아나고 있었고 길가에는 온천물이 연기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온천물에 녹아있던 철이나 유황 등이 온천의 물길을 따라 그림을 그려놓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호기심 천국인 아들이 흐르는 온천물에 손을 넣으려는 찰나, 깜짝 놀란 아내가 ‘안돼!’라고 소리를 질렀다. 손을 넣지 말라는 안내문도 있기도 하고, 연기를 내며 흐르는 온천물은 언뜻 보기에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분출해서 땅 위를 흐르는 온천물이라 약간 미지근한 정도였다. 내가 살짝 손가락을 대보고 안심시켰다. 그래도, 외국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게이시르를 보러 가는 길. 입구부터 주변은 크고 작은 온천의 열기가 땅으로 솟아 오르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게이시르는 자이언트 게이시르 Giant Geysir라고도 별칭하는데, 주변에 작은 게이시르들이 여러 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활발했던 간헐천이 화산과 지진활동의 변화에 따라 활동을 멈추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자이언트 게이시르도 언제까지 뜨거운 물을 뿜을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게이시르는 19세기에 가장 활발하게 분출하다가 20세기에는 활동을 중지한 시간도 꽤 되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지진이 활발해지면서 게이시르도 다시 분출을 하게 된 경우라고. 지구의 시간으로 보면 인류의 시간은 찰나일 뿐 아닌가.

자이언트 게이시르 위 쪽에도 비슷하게 생긴 온천 구멍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서는 뜨거운 온천물이 조용히 계속 올라올 뿐이었다. 중간에 작고 귀여운 간헐천도 있었는데 ‘꼬마 게이시르’라고 세워둔 푯말이 재미있었다.

입구쪽에 있는 깜찍하게 생긴 꼬마 게이시르.

게이시르 앞에 도착하니,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온천물이 뿜어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하늘로 솟구치는 물기둥을 본 터라 우리도 한껏 기대하며 옆에 서서 기다렸다.

게이시르는 널따란 암반 한가운데에 지름 10미터가량 원형으로 패인 곳에 뜨거운 온천물이 고이다 흘러내리고 있고, 그 가운데 지름 2-3미터가량으로 뚫린 구멍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온천물이 담겨 있다. 끝없이 피어오르는 수증기 덕에 자세히 보기는 어려웠지만, 간헐천 구멍의 벽은 땅속임에도 에메랄드빛으로 보였다. 저 속에 빠지면 100도가 넘는 지하 온천 속에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녹을 것 같았다. (온천은 순수한 물이 아니므로 온도가 100도를 넘기도 한다고.)

넓직이 둘러서서 게이시르가 분출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잠시 후 구멍 위의 물이 꿀렁거리는가 싶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 하얀 물기둥은 일부는 수증기로 공기 중에 흩뿌리고, 대부분은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지며 암반을 후려쳤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물을 한번 크게 뿜은 온천은 다시 잠잠해졌다가 5분가량 지나고 나니 이따금 한 번씩 꿀렁거렸다. 마치 뿜을까 말까 장난을 치는 듯했는데, 몇 번 숨을 쉬던 구멍이 크게 한번 요동치더니 다시 한번 하늘로 물기둥을 세웠다. 한번 뿜으려면 15분가량 기다려야 했던 것 같은데, 구멍의 물 움직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거대한 구렁이가 꿈틀대듯 고래가 물을 갈라내듯 온천의 물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춤을 췄다.

게이시르가 분출하는 순간.
멀리서 보면 하늘 위로 수십 미터를 솟구쳐 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이시르는 분출할 때마다 규모와 높이가 달라진다.
궂은 날씨 탓에 쉽지 않았지만 게이시르의 분출을 짧게 담아봤다.

한참 물기둥을 구경하고 서 있었더니, 어느덧 파란 하늘이 나타났고, 자이언트 게이시르 주변의 다른 온천 구멍들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온천 지대에는 끝없이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온천물이 흐르고 있었다. 차로 돌아오면서도 뒤쪽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면 다들 휙 돌아섰다. 게이시르는 계속 보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골든 서클의 하이라이트인 굴포스로 길을 잡았다.

게이시르 위쪽의 다른 온천은 고요하다. 아래 게이시르의 분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온천수는 수많은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흘러내리는 온천수에서 녹아나온 성분들이 지형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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