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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롱고스 Aug 29. 2019

유럽의 발코니를 거쳐 알함브라를 가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 남부로 떠나는 가족여행 #3

유럽의 발코니(Balcony of Europe)

어떻게 이런 멋진 이름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

여행 3일째인 오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었지만, 말라가 Malaga에서 그라나다 Granada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 네르하 Nerja에 잠시 짬을 내서 들러보기로 했다.

어차피 가는 길 중간에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 있다는 '유럽의 발코니 Balcony of Europe'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말라가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유럽의 발코니


이름 자체가 감성적이기도 하고 얼마나 자부심이 넘치면 그런 이름을 붙인 건지 궁금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예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2세가 이곳 절벽 언덕을 방문했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변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지중해 쪽으로 돌출된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그 위에 올라서 보니, 짙은 청록색 투톤의 바다에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셔 제대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니스의 해변이 얌전한 숙녀라면 네르하의 바다는 세련되지만 거친 남성의 모습이다.  이베리아 반도가 지중해를 향해 달려가다가 눈 시리게 푸른 바다에 깜짝 놀라 주춤거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곳은 육지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말 그대로 발코니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전망대는 예전에 군사적인 요새였음을 나타내듯 오래된 대포가 지중해를 향해 포문을 향하고 있었고, 전망대 아래쪽으로 돌아서 내려가면 여느 해수욕장처럼 모래사장에서 사람들이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절벽 아래 해변을 보면 영국 남쪽 브라이튼 근처의 세븐 시스터즈와도 흡사하지만, 이 곳의 강렬한 태양빛을 북쪽의 영국이 따라올 수는 없었다.

지중해를 향한 전망대, 유럽의 발코니.
전망대에서 바다를 향해 섰을 때 왼쪽으로 보이는 풍경
전망대에서 바다를 향해 섰을 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풍경


알함브라 궁전의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어 촉박하긴 했지만, 다시금 물을 보고 흥분한 아들이 발코니 전망대 아래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30-40여 분을 놀며 짧았던 수영장의 아쉬움을 달랬다.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려고 별 기대없이 절벽 위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갔었는데 이게 웬걸, 오션 뷰의 테라스에서 샌드위치와 수프로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2시간가량 머물렀지만 마치 반나절은 즐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멋진 곳, 유럽의 발코니이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아쉬움을 달래는 아들


알함브라 Alhambra

이베리아 반도를 800년 간 지배했던 이슬람의 수도이자,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스르 왕조의 중심이었던 그라나다 Granada. 거기서 술탄의 위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왕실이 거주한 궁전이자 난공불락의 요새,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로 꼽히는 알함브라는 적어도 나에게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당일에 와서 줄을 서 봐야 티켓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나는 3개월 전에 이미 티켓을 예매해 두었는데, 그 일정에 따르면 우리는 알함브라에는 2시, 알함브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나자리 Nazaries 궁전에는 정확히 4시에 입장해야 했다.  별도 유료인 나자리 궁전은 특히, 관람객 숫자를 통제하기 때문에 내 입장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네르하를 출발한 차는 구름 한 점 없는 강렬한 태양빛을 뚫고 알함브라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자리 Nazaries 궁전 입장 시간이 1시간가량 남아서 뒤쪽의 알카사바 Alcazaba부터 둘러보았다. 이 구역은 그라나다 시내와 성 내부 전체 조망이 가능한 탑이 있는 군사지구이다. 

나자리 궁전에서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바짝 따라붙어 다니는 바람에 집중이 잘 안되긴 했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로 간략히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런던이나 파리의 인구가 몇 만명도 안되던 소도시일 때,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면 단연 인구 50만의 그라나다였다고 한다.(중국이 있었는데 세계 최대였을까? 유럽 대륙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온갖 장식과 물이 귀했던 준 사막지역의 산 꼭대기 궁궐에서 사시사철 내내 분수와 흐르는 물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술탄의 위세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알람브라 내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그라나다 전경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슬람 문화에서는 우상 숭배의 위험성을 없애기 위하여 인간이나 동물을 형상화할 수 없기 때문에, 건축 예술은 대부분 식물의 덩굴이나 기하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문양과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자리 궁전은 이런 아라베스크 양식의 걸작이라고 불리는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세공된 미세한 조각과 모자이크, 종유석 같은 기둥과 코란의 글자를 형상화한 내부 장식에 입을 쩍 벌리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술탄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엄청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을까? 알함브라 내부를 거닐면서 수많은 상념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알함브라에서 이질적이고 아쉬운 공간은 카를로스 5세 궁전이다. 1492년, 국토회복 전쟁(Reconquista)에서 이슬람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스페인 왕조는 이 곳에 거주하고자 알함브라 안에 가톨릭 궁전과 성당을 짓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기존 알함브라의 유산을 많이 훼손하고 실제로도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카를로스 5세(카를 5세,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나지르 궁전의 내부


숙소는 도대체 어디에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었지만, 지쳐가는 가족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서둘러 하산길을 잡았다. 숙소는 알함브라 궁전 근처였지만 좁은 골목길 중간에 있는 아파트까지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 도보 10분 거리의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기로 계획을 세워둔 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 걸려도 30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내 생각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박살이 났다.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활절 축제 때문에 숙소가 위치한 구시가지 Albaizin 쪽으로는 경찰이 도로를 막고 차량을 통제 중이었던 것. 이리저리 한참을 헤맨 끝에 구시가지 바깥에 있는 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숙소까지는 30분 넘게 짐을 끌고 걸어가야 했다는 것이다. 이게 완전히 판단 미스였는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쭉 뻗은 포장도로가 아니라, 거미줄 같은 ‘구시가지'였다는 점 때문이다. 


반복되는 언덕과 좁은 골목만으로도 이미 한숨이 나올 지경인데, 오랜 옛날에 촘촘히 장돌을 박아 포장한 길 위에서는 캐리어를 제대로 끌 수 없었고, 골목 천지에 널려 있는 개똥과의 전쟁으로 심신이 지쳐갔다.  숙소 아파트 간판은 내 손바닥보다도 작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아파트 근처 골목길에서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지 셀 수가 없다. 결국, 전화 속 주인장의 목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거리까지 와서야 숙소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개그가 아닐 수 없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보니, 알함브라를 나와서 1시간 반이나 헤맨 꼴이었다.  딸은 드디어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고, 길 찾느라 만신창이로 지쳐버린 나도 딸의 짜증을 받아내는 게 버거웠다.  그렇게 망친 기분은 저녁식사 후에야 풀어졌다. 나중에 주인장이 좀 더 편한 길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구글 지도에 의존해서 초행길을 갔어야 하는 나로서는 이만한 도전도 오랜만이었다. 힘들게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걷던 와중에도 나는 석양 아래 알함브라의 모습에 감탄하여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다가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구시가지 골목 깊숙이 자리한 이 작은 아파트의 침대에 누우면 알함브라의 완벽한 외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반전의 끝판왕이 아닌가 싶었다. 아들이 침대에 누워 웅장한 성을 바라보며 '아~ 좋다!'를 연발할 정도였다.  숙소 역시 겉에서 보기에는 작은 판잣집 같았지만, 큰 침대방이 2개에 화장실은 무려 3개나 있어서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숙소를 찾다가 골목길에서 포착한 석양의 알함브라.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짐을 놓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거리에서 너무 진을 빼고 숙소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저녁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한 끼 정도는 그냥 패스할 수도 있으련만, 나는 오기가 생겨 여행의 작은 기쁨인 식도락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졌다.


아파트 주인장은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타파스 바를 추천했는데, 그 레스토랑까지 다시 구불구불한 구시가지 언덕을 500미터가량 올라가야 했다. 지칠 대로 지친 딸이 자기는 절대 나갈 수 없다고 저항했지만 굶을 수는 없었고, 내일이면 또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므로 구시가지도 가볍게 둘러볼 겸 급하게 전화로 예약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밤 9시 반이 되어서야 구시가지 언덕 한편에 자리 잡은 한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약을 해놨었지만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 불친절한 웨이터들이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야 야외에 추가 테이블 깔고 주문을 받았다.


음식은 신선하고 맛도 좋았는데, 다들 너무나 피곤했던 게 큰 함정이었다.  나는 알함브라 alhambra 생맥주 두 잔에 모든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졌지만 해산물을 싫어하는 딸은 음식에서 비린내가 난다고 좀 고생했고, 뭔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투박한 동네 집 같은 느낌이라 아내도 그다지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수천 년 고도의 한가운데의 시원한 야외 테이블에서 그럭저럭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그라나다 구시가 한가운데의 식당에서.

숙소로 복귀하는 길은 같은 골목길을 다시 돌아 내려오는 거라서 한결 쉬웠다. 오는 길에 골목 사이로 보이는 알함브라의 야경은 덤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테라스에서 성의 야경을 벗 삼아 맥주 한 잔을 더 마시고 이내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체 말이다.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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