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나라, 스페인 남부로 떠나는 가족여행 #4
독실한 가톨릭 국가 스페인에서 부활절 축제는 전국적으로 중요한 행사지만, 그중에서도 세비야의 축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그 사실을 떠나기 직전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비야에 예약해 둔 숙소 주인장이 여행 일주일 전부터 메신저로 몇 번이고 몇 시에 도착하는지 물어 왔었고, 부활절 축제 때문에 주차가 쉽지 않을 거라 걱정이라는 문자를 보낼 때만 해도 나는 그저 '사장님이 좀 과하게 친절하신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필 우리가 세비야로 들어가는 오늘이 일주일간 진행되는 부활절 축제의 하이라이트로서, 세비야 대성당을 중심으로 방대한 지역에서 차량 통행이 금지되는 날이었다. 주인장은 며칠 전부터 꼭 오후 2시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면서, 내가 주차해야 할 사설 주차장의 좌표를 서너 번이나 문자로 찍어 주었고, 당일에는 끊임없이 문자를 보냈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까지는 약 240km. 넉넉하게 3시간이면 가겠다는 생각에 느긋하게 일어나, 창밖 알함브라궁전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감탄하며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어제 저녁에 힘들게 끌고 왔던 그 짐들을 다시 질질 끌고 걸어서 20분 거리의 주차장으로 출발한 시간이 오전 10시 무렵. 마침, 숙소의 주인장이 넓고 편한 우회로를 알려주었던 터라, 생각보다 마음 편히 네 식구가 터덜터덜 삼분의 이 가량을 걸어 내려왔는데, 갑자기 등줄기에 싸-하게 올라오는 그 서늘한 느낌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여보야, 나 백팩 안 메고 왔다!!'
'어머나, 어떡해! 거기 여권이랑 다 넣어뒀잖아!'
참 야속하다. 어쩌면 이렇게 과거에 없던 사고들이 이번 여행에서는 폭포수처럼 쏟아진단 말이냐. 난 두말없이 왔던 길을 되짚어 뛰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었다. 머릿속에는 세비야에 확실히 늦을 거라는 생각과 여권을 분실하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숙소까지 7-8분 남짓을 쉬지 않고 뛰었다. 숨이 턱에 닿을 때쯤 사색이 되어 주인장과 함께 방문을 열었더니, 내 백팩은 거실 식탁 위에서 날 보고 웃고 있었고 난 허탈함에 다리가 풀려 버렸다. 호텔방이었기에 망정이지, 저잣거리 까페였기라도 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아까 헤어졌던 자리로 돌아오니, 아내와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길가 빵집에서 빵을 먹으며 나를 환하게 반겨 주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늦지 않으려고 두 시간 반을 쉬지 않고 운전한 끝에 세비야 시내에 들어선 시각이 오후 1시 40분, 이 정도면 아슬하게 대략 안정권이라 생각했다.
‘아아악, 안돼!’
내비게이션이 우리가 10분 안에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줘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나는 정면에 보이는 장면이 믿기지 않아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내가 통과해서 지나가야 할 골목길 앞을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쳐 막고 있었고, 모든 차량들이 양 옆으로 우회하고 있었던 것. 식은땀이 솟아오르고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경찰의 수신호를 따라 한번 우회해 보았으나 이래서는 답이 없을 거라는 것을 금방 깨달은 나는 차를 유턴시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근처에는 주차장도 없었고 차는 엄청 밀렸으며, 또다시 그라나다에서처럼 짐을 끌고 길을 헤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일단 무작정 바리케이드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경찰 앞으로 차를 들이댔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거뭇한 턱수염이 언뜻 모델처럼 보이는 젊은 경찰 친구가 나에게 오른쪽으로 우회하라고 손짓하는 순간, 나는 창문을 내리고 영어로 소리를 질렀다.
'저는 제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해요!!'
하지만, 경찰은 영어를 몰랐다.
순간, 신기하게도 25년 전 고등학교 때 배웠던 스페인어가 머릿속에 또렷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정말이지 살아야 했다. 경찰이 정확한 주소가 어디냐고 물었던 것 같고, 나는 지나갈 수 있음을 직감했다. 손짓 발짓을 총동원하여 처절한 눈빛으로 설명하는 동양 아저씨를 쳐다보던 그 경찰 친구가 머리를 왼쪽으로 까딱하며 '오케이-!'라고 던진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오래지 않아, 구시가지 전체 지역은 단지 차량 진입을 막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견인차 부대가 와서 길거리의 모든 차량을 들어내서 치우는 것을 보고 이게 얼마나 큰 축제인지 깨닫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내 차는 이미 하룻밤에 20유로짜리 좁디좁고 간판도 없는 어느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처박혀 버린 뒤였다. 아파트 주인장의 선견지명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숙소 아파트는 주차장에서 5분가량 떨어진 구시가 한편에 간판도 없이 번지 수만 덜렁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이때 주차장 위치를 눈여겨봐 두지 못한 대가는 나중에 치르게 된다. 구시가 골목길은 지도가 무의미하다.)
숙소 주인장인 안토니아는 예순 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스페인 할머니였는데, 주차장에서 자기 차에 우리를 태워 숙소에 내려주며, 자세한 집 안내는 자신의 남편이 와서 해 줄 거라고 하며 바삐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러나, 우리를 안내해 준다던 남편은 안 오고 웬 20대 초반의 흑인 직원이 와서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고 떠들어 댔다. 머릿속에 번득, 스치는 생각에 내가 물었다.
‘혹시 안토니아의 남편이 당신이요?’
‘네, 제가 남편이에요’
....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역시 세상은 넓고 문화는 다양하다.
영어는 하나도 못 알아듣고, 스페인어도 좀 이상한 거 같아서 사연을 들어보니 브라질에서 이민을 왔다고 한다. 더 이상은 실례가 될까 싶어 묻지는 않았다. 상상은 자유. 내 눈에는 참 이상한 커플이었지만, Ismar(그 남편의 이름)는 정말 착해 보였다.
그는 내가 체크인 서류를 쓰는 동안에도 열심히 뒷 정원을 청소했고, 알아듣든 말든 TV 사용법까지 친절히 설명해 준 후에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라고 해맑게 인사하며 돌아갔다. 지상 1층(Ground floor)에 있는 아파트는 겉으로는 정말 허름해 보였고 실내도 생각보다 매우 좁았지만, 차 한잔을 할 수 있는 뒷 정원도 있고 전체적으로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지상층의 아파트는 시원했다. 그제야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더위를 피해 잠시 휴식을 취했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그 유명한 부활절 축제가 펼쳐지는 세비야의 대성당 주변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