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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롱고스 Jan 15. 2020

옥스퍼드(Oxford), 아이에게 열정의 불씨를 심다

역사와 전통의 남부 잉글랜드로 떠나는 가족여행 #4

요즘은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예전에는 옥스퍼드에 가서 옥스퍼드 대학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본 사람들이 있었다. 

28명에 이르는 영국 총리, 7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는 옥스퍼드 시 중심부에 흩어져 있는 39개에 이르는 부속 단과대학(Colleage)과 6개의 PPH(Permanent Private Hall)를 모두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11세기부터 존재했으나 1167년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자국 학생들의 파리 대학으로의 유학을 금지한 이후 급격히 발달한 옥스퍼드 대학교는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한국의 종합대학처럼 메인 캠퍼스라고 부르는 곳도 없고, 시내에서 대학의 경계가 어디인지도 딱히 구분하기 어렵다. 옥스퍼드 시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대학이 도시 자체인 곳, 어디를 가든 학생들 또는 교수, 연구자들로 보이는 사람들로 지적 포스가 풍기는 곳이 옥스퍼드이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구성하는 칼리지와 PPH 휘장들 (출처 : theoxbridgepursuivant.blogspot.com)


영국에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를 합쳐 옥스브리지(Oxbridge)라고 부른다. 한국에 시쳇말로 Sky라고 부르는 대학들이 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실제로 영국의 중고등학교는 일반 공립과 사립, 그래머 스쿨과 보딩 스쿨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 있는데, 중학교 때부터 시험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그래머 스쿨이나 학비가 비싼 고급 사립학교에는 옥스브리지를 타겟으로 하는 수재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입시 성공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기를 강요받지만, 영국은 중학교 무렵부터 옥스브리지를 포함한 대학을 목표로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적성에 맞는 길을 찾을 것인지 나누어지는 느낌이 있다. 사회적 비용을 아끼고 학생들에게 가능성이 적은 희망고문을 할 필요가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나름 합리적이다.

인권과 노동법이 발달하여 실질적으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인식이 있고, 누구든 사회에 건강하게 기여하는 일원이면 충분하다는 기저의 사고방식, 단순 노동자라 해도 기본적인 사회적 복지와 보호장치가 있는 나라라서 가능한 구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왕을 정점으로 하는 계급 사회로서 서민들이 느끼는 한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부와 힘의 대물림이 있는 나라임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기 주도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랐으므로, 억지로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고 원하지 않는 사교육은 시키지 않았다.(단, 책은 많이 읽도록 했다.) 영국에 왔을 때도, '영국 사립학교'로의 유학은커녕 구청에서 뺑뺑이로 배정해 주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들어가도록 했다.

영국은 의료와 교육은 국가에서 책임진다는 복지정책이 있어서 일반 공립학교는 학비가 무료인데, 무료 교육이 주는 교육의 질적 한계는 매우 뚜렷하다.

 

한참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딸에게 한 마디 잔소리보다 세계 최고의 대학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아이가 자신이 미래를 설계할 때, 여러 길 중에 이 길로 가면 어떤 모습일지 보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부 잉글랜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하루 동안 돌아본 옥스퍼드였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해야 한다는 것.


전날 코츠월드에서 옥스퍼드로 들어온 시간이 저녁 7시 무렵이어서 짐을 풀고는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들어왔었다. 옥스퍼드의 밤거리는 매우 조용했는데, 학생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식당도 꽤 저렴했다.

숙소로 잡은 게스트하우스는 수수했지만 깔끔했고, 아침은 잉글리스 브랙퍼스트가 제공되었다.

역시 아이들과 다닐 때는 조식이 좋아야 하루가 든든하다.

옥스퍼드의 게스트하우스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Christ Church Colledge)

크라이스트 처치는 옥스퍼드를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꼭 들르는 곳으로, 이 곳의 다이닝 홀(Dining Hall)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연회장으로 로케이션 된 바 있다.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장 큰 칼리지 중 하나이다.

하루 안에 옥스퍼드의 모든 칼리지에 다닐 수는 없으니, 가장 유명한 크라이스트 처치에 먼저 가기로 한 것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영국 절대왕권의 상징인 헨리 8세(Henry VIII)가 1546년에 설립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는 영국 성공회 교회와 대학이 합쳐져 있는 곳으로, 교회의 대주교가 칼리지 총장을 맡아 왔다고 한다.

헨리 8세는 내연녀 앤 불린(Anne Boleyn)과 결혼하기 위해 첫 왕비인 캐서린(Catherine) 왕비와 이혼을 요구했다. (자신이 왕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앤 불린도 대단하다.) 이 때문에 그는 로마 교황 및 왕비의 친정으로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에스파냐와 대립하다가 교황에 의해 파문을 당했다.

당당하고 위압적인 헨리 8세의 초상화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아예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설립해 버린다.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는 것이 사회적 죽음이었을 중세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과 결별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변혁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잉글랜드는 왕(또는 여왕)에 따라 국교가 가톨릭과 성공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수백 년 동안 나라가 피로 물들었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결혼한 왕비만 6명에 이르고 그중 2명은 목을 베어버린 헨리 8세. 그는 영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든 왕이었다. 이런 왕이 세운 성공회와 결합된 칼리지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정면에 우뚝 솟은 종탑, 탐 타워(Tom Tower)와 안쪽의 사각형 모양의 광장 탐 쿼드(Tom Quad)는 영국이 자랑하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의 작품으로 1682년에 완공되었다. 칼리지는 1500년대 중반에 완공되었지만 정면 출입구의 타워만큼은 그보다 130여 년 후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셈이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렌은 영국 성공회의 중심인 런던의 세인트 폴(St. Paul) 대성당을 건립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우리 사무실 근처에 있었기도 했지만 내가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탐 타워의 탐(Tom)은 종탑의 종을 의미한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밖에서 본 탐 타워
크리스토퍼 렌의 종탑이 추가되기 전, 1675년에 그려진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전경 (출처 : 위키피디아)


오전 일찍 도착하여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먼저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입구를 찾았다. 일반 관광객은 탐 타워를 통해서는 입장할 수 없었으므로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한참을 돌아가서 남쪽에 있는 방문객 입구로 가야 했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전체 모습 (구글 위성사진 캡처). 오른쪽 위가 남쪽으로 방문객 입구이다.


방문객 출입문은 크라이스트 처치 남쪽의 미도우 빌딩(The Medadow Building)에 있다. 1866년에 지어졌다는 이 빌딩은 원래 칼리지 학생들을 위한 스위트 룸이었다고 한다. 빌딩 앞으로는 영국의 전형적인 목초지(Meadow) 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오솔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가로수가 노랗게 물든 낙엽을 떨구고 있어 피크닉이나 산책하기 아주 좋아 보였다.

우리가 도착한 오전 시간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금 기다렸다가 티켓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일반 방문객 입구인 미도우 빌딩(The Medadow Building)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시험 중이니 조용히 하라는 안내문이었다. 영어 외에도 5개국 어로 쓰여 있었는데 한국어가 없는 것을 보니 괜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곳이 역사 관광지임과 동시에 학업이 진행 중인 대학 현장임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조용히 미도우 빌딩의 복도와 계단을 지나 탐 쿼드 광장으로 나왔다. 사각형 모양의 잔디 광장 한가운데 분수대가 보이고 그 뒤로 밖에서 보았던 탐 타워가 우뚝 솟아있다.

초록 잔디 광장을 둘러싼 황금색 쿼드와 종탑은 옥스퍼드의 상징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관광객들은 이 잔디 광장 쪽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칼리지 내에 정해져 있는 관람 동선을 따라 이동만 가능하다. 정숙해야 할 대학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다.

 

서울 이화여대의 상징인 배꽃이 중국에서 부와 행운의 상징이라는 속설이 퍼져 그 대학교가 중국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다는 몇 년 전의 뉴스가 떠올랐다. 화(梨花)의 발음이 중국어로 ‘리파(利發; 돈이 불어난다)’와 비슷하여 부자가 되고 싶은 관광객이 몰린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였다.

유명한 관광도시임에도 극도로 조용한 옥스퍼드를 걷고 있자니 서울의 대학가와 무척 비교가 된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탐 쿼드
크라이스트 칼리지 안쪽 탐 쿼드(Tom Quad)에서 바라본 탐 타워


광장을 지나 탐 쿼드의 복도를 따라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Christ Church Cathedral)으로 들어갔다.

이 대성당은 옥스퍼드 교구의 대주교좌 성당임과 동시에 대학의 채플인 독특한 성당이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영국에서 다소 변형된 양식(노르만)이며, 영국 성공회 대성당 중 가장 규모가 작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교회의 성가대는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다루어지고 여러 번 방송에 나올 만큼 꽤나 유명하다.

아이들이 대학까지 와서도 성당이냐고 다소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유럽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인 것을.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의 성가대석
안 뜰에서 바라본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대성당이지만 규모는 아담하다.


성당을 나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로케이션으로 유명한 크라이스트 처치 다이닝 홀로 올라가 보았다. 사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촬영한 왓포드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여기서 멀지 않다.(런던에서는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 가야 한다)

실제 다이닝 홀은 영화에서 보던 것 대비 아담(?)하지만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아무래도 판타지 영화 특성상 CG 등으로 많이 각색해서 그럴 것이다. 다이닝 홀은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의 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서 정말 학생들이 지금도 밥을 먹는다고?'

해리 포터 마니아인 딸이 놀라서 물었다. 판타지 영화 속에서나 보던 곳에서 실제로 생활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관람이 가능한 시간은 학생들의 식사 시간을 피해 정해져 있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다이닝 홀
다이닝 홀의 벽면에 있는 초상화들


성모 마리아 대학 성당에서 본 옥스퍼드 전경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를 나와 세인트 알데이트(St. Aldate's)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시내 중심가로 여겨지는 사거리에 곧장 닿는다. 이 곳에는 카팩스 타워(Carfax Tower)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세인트 마틴스 타워(St. Martin's Tower)가 있다. (Carfax란 '교차로'라는 의미의 라틴어 quadrifurc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12세기에 있었던 세인트 마틴 교회의 종탑이었는데, 중심가 교차로에 서 있어 탑 위로 올라가면 옥스퍼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성모 마리아 대학 교회의 종탑 위에 올라가서 옥스퍼드를 조망할 계획이었으므로 카팩스 타워를 올라가는 것은 단념했다. 우리 아이들이 한 도시에서 2개의 탑에 올라갈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종탑 아래에 있는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도 2등급 보호 대상 건축물이라는 것.

모바일 시대에 공중전화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빨간색 전화 부스는 '옛' 영국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뭐든지 '새 것'이 중요시되는 우리도 수백 년 전의 유물만 찾지 말고 지금의 문화를 후대에 남기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옥스퍼드 시내 중심가를 상징하는 카팩스 타워


카팩스 타워를 등지고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를 따라 두 블록만 걸으면 '동정녀 성모 마리아 대학 성당(University Church of St Mary the Virgin)'이 나타난다. 이 성당은 최초의 옥스퍼드 대학 건물로 기존에 있던 성당을 대학에서 인수한 것이며, 13세기부터 대학의 운영을 위한 논의와 강의 등이 여기서 있었다고 한다.

이 성당이야말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현재 옥스퍼드의 시작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성모 마리아 대학 교회 전경


성모 마리아 성당의 내부는 수수하고 검소하며 매우 고요했다. 13세기부터 수백 년에 걸쳐서 개축되어 온 성당의 주된 양식은 영국식 고딕이다. 종탑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옥스퍼드 대학을 조망할 수 있다기에 아이들을 격려해 가며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성모 마리아 성당의 본당 내부 모습과 종탑으로 올라가는 나사형 계단


성당의 종탑 위에 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눈 아래로 올 소울스 칼리지(All Souls Colledge)의 장엄한 건물과 반대쪽으로는 화려한 크림슨 색의 브레이즈노즈 칼리지(Brasenose Colledge) 건물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의 광장에는 원형의 래드클리프 카메라(Radcliffe Camera) 도서관 건물이 옥스퍼드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양 우뚝 서 있다.

래드클리프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성 마리아 성당과 칼리지들 (구글 위성사진 캡처)


올 소울스 칼리지는 15세기에 헨리 6세가 프랑스와의 백년전쟁 희생자를 기리기 위하여 설립했으며, 현재 학부 제도는 없고 대학원 과정만 있다고 한다. 작은 첨탑이 촘촘히 세워져 있는 도서관 건물이 유명하다. 반대편의 브레이즈노즈 칼리지는 16세기 초에 설립된 대학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조정 클럽이 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 성당의 종탑은 아래서 볼 때는 낮아 보였지만 위에서는 옥스퍼드 대학의 뷰를 가장 잘 감상해볼 수 있는 곳이다.

성모 마리아 성당 종탑에서 바라본 뉴 소울즈 칼리지
성모 마리아 성당 종탑에서 바라본 브레이즈노즈 칼리지 전경


성당 종탑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온 곳은 래드클리프 광장(Radcliffe Square)이다.

이 광장에는 영국에서 보기 어려운 원형 디자인 건물이 눈에 띄는데, 바로 래드클리프 카메라(Camera; Room이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불리는 도서관 건물이다.

베네치아 건축가 팔라디오(Palladio)가 창안한 팔라디안 스타일로 지어진 원형 건물이 네오 클래식한 멋을 풍기고 있다. 이 도서관은 18세기에 옥스퍼드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의사로 큰 부를 쌓은 래드클리프의 유산으로 건립되어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옥스퍼드에는 이 도서관 외에도 그의 이름으로 된 건물이 4개나 더 있다.


현재 이 도서관은 광장 안쪽에 있는 보들레이안 도서관(Bodleian Library)의 "Reading room"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교에는 도서관이 100개가 넘고, 연구 목적의 보들레이안 도서관만 해도 보유 장서가 1,200만 권이 넘어 영국에서는 국립 도서관에 이어 2번째로 크다.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지하 도서관 시스템을 통해 보들레이안 도서관과 10여 개의 보들레이안 부속 도서관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울대 도서관이 약 50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압도적인 규모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레드클리프 카메라


어느덧 점심시간.

바로 옆 퀸즈 칼리지(Queen's Colledge) 옆 길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우리 주위는 온통 학생들로 북적거렸는데 소음은 별로 없었다. 모두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하거나 노트북을 올려놓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대학가 속 카페라 그런지 분위기가 사뭇 차분했는데 나도 시간을 거슬러 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퀸스 레인에 있는 커피 하우스에서.


캐임브리지처럼 옥스퍼드에도 학생들이 배를 태워주는 펀팅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다들 별로 내키지 않아 대신 위쪽 캠퍼스를 더 돌아보기로 했다.

퀸즈 레인과 뉴 칼리지 레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탄식의 다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허트포드 다리(Hertford Bridge)가 나타났다. 이 다리는 허트포드 칼리지의 양쪽 건물을 잇는 다리이다. 혹자는 베네치아에 있는 '탄식의 다리'와 닮아서 그렇다고도 하고, 혹자는 시험을 망친 학생들이 탄식을 하며 지나갔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별명이 붙은 다리이다.('탄식의 다리'는 케임브리지에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다리는 베네치아에 있는 탄식의 다리와는 많이 다르게 생겼고 오히려 리알토 다리와 닮았다. 딸에게 다리의 별명을 이야기했더니 재미있어하면서도 ‘시험이 얼마나 어렵길래?’라고 궁금해했다.


옥스퍼드 자연사 박물관

옥스퍼드 전체 일정의 마지막은 자연사 박물관으로 정했다. 런던의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지만 알찬 구성과 수준 높은 전시가 돋보이는 박물관이다.

19세기에 건설된 박물관 건물은 원래 대학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자연과학 대학을 모았다가 규모가 커지면서 오늘날의 박물관으로 남았다고 한다. 아직 어려 대학 도시를 돌아보는데 지루함을 느낀 둘째에게 자연사 박물관은 크게 흥미를 줄 수 있겠다 싶어 마지막 일정으로 잡았다.

옥스퍼드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하는 가족들


정면에서 볼 때 오랜 건물로만 보였던 박물관은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공룡관은 철골 구조에 유리천장으로 높고 넓게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등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겉만 화려하고 내실은 적은 박물관도 많은데, 옥스퍼드 박물관은 큰 단일 공간 안에 다양하고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종의 기원’을 연구해 진화론을 주장했던 찰스 다윈의 동상과 그가 다른 학자들과 이 박물관에서 논쟁했음을 기념하는 비석이었다. 1860년에 종교계와 과학계를 포함하여 영국 과학발전 위원회 주최로 찰스 다윈과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 대주교 사뮤엘 윌버포스 등이 진화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찰스 다윈과 멘델에 대한 위인전을 읽으며 생물학자를 꿈꿨던 적이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매우 당연한 듯 배웠던 진화론이었지만 기독교가 온 사회와 가치를 지배하던 200여 년 전의 영국에서는 학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얼마나 논란이었을지 새삼 호기심이 일었다. 무심히 서 있는 작은 기념비에는 종교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나 학문의 자유와 진리의 탐구를 중시하는 옥스퍼드의 자부심이 새겨져 있다.

진화론에 대한 논쟁 기념비(좌)와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의 동상(우)


만 하루도 안 되는 옥스퍼드 돌아보기.

곳곳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대학의 분위기와 역사와 전통의 힘에 가족 모두 신선한 기운을 느꼈다. 막연히 옥스퍼드 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던 딸아이도 여행 이후 학교와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아빠, 나도 옥스퍼드 같은 분위기의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여행을 끝내고 오면서 딸이 했던 말이 생생하다.


옥스퍼드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후, 딸은 자신이 다니는 동네의 일반 공립학교를 다녀서는 꿈을 이루기 어렵겠다며 영국 사립 중학교에 편입 시험을 보겠다고 선언, 나와 아내에게 학비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영국의 공립학교는 무료지만 사립학교는 학비가 꽤 비싸다.)

몇 달간 여기저기 알아보고 혼자 공부하던 딸은 결국 매일 기차를 타고 통학해야 하는 사립학교의 편입 시험에 합격했고, 그 후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전공과 일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오늘도 그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옥스퍼드 시내의 길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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