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지킨 자연의 나라, 스위스로 떠나는 가족여행 #1
하얀 만년설이 뒤덮인 알프스의 영봉과 더불어 절경을 이루는 푸른 호수, 초원 위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소와 목동, 요들송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명품 시계나 스위스 아미 나이프, 또는 완벽하게 비밀 유지가 된다는 스위스 은행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만화 영화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보면서 '정말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라고 동경했었던 나는 나이가 든 후로는 ‘swiss made’로 대표되는 그들의 정밀 기계 산업과 '산악 열차'로 유명한 우수한 철도 기술에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스위스는 어떻게 이데올로기에 편중되지 않는 영세 중립국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자금의 비밀 유지와 보안이 완벽한 스위스 은행의 명성도 중립국이 만들어 낸 시스템이다.
스위스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지리적 이유 때문에 중립국이 될 수 있었다고 어슴푸레 짐작했던 나의 고정관념은 이번 여행을 계기로 180도 바뀌게 된다.
스위스인들이 수천 미터가 넘는 알프스의 험준한 지형에 철도를 놓기 시작한 것은 1800년 대에 석탄을 나르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유럽 국가들은 이를 '정신 나간 짓'쯤으로 치부했다. 철도가 발명된 지 얼마 안 된 시절, 낙후된 기술로 산악지대에 철도를 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강인하고 끈기 있는 스위스인들은 알프스를 끝내 철도로 정복하였고, 거칠고 추운 고산 지대에 철길을 놓으며 발달한 고도의 계측, 기계 기술은 정밀한 시계 제조 산업의 바탕이 되었다.
100여 년 전에 건설되어 현재도 연중 운행하고 있는 융프라우나 고르너그라트 산악 철도는 철도 역사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는 산골 마을까지 도로와 철도가 뚫려있어 세계 최고의 교통망을 자랑하는 국가이다.
나는 대학생 때 빈 주머니로 배낭을 메고 유럽을 돌았었다. 돈이 없으니 가게에서 빵과 토마토, 치즈를 사서 점심과 저녁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공원에서 비둘기와 먹던 시절이었다.
그때 스위스는 비싼 물가와 일정 때문에 제네바만 스쳐 지나가며 아쉬워했었는데, 그로부터 20여 년 후 영국에 와서 생활이 안정되고 나서야 스위스로 향하는 며칠 간의 가족 여행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몇 번의 중세 유적지 여행 덕에 ‘맨날 성당만 다닌다’며 투덜대는 아이들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에서 여행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나 역시 '하이디' 마을에 대한 노스탤지어뿐 아니라, 꼬마 국가가 어떻게 강대국 틈새에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확인할 기회로 기대했다.
철도로 알프스를 정복한 덕에 관광 대국으로 성장한 스위스는 남한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국토 안에 26개 자치주(칸톤)가 있으며, 4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5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정도면 '마을 규모'의 자치주가 있는 셈인데, 이것 만으로도 직접 민주주의와 자유를 중시하는 스위스인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중립국으로 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는 화폐도 유로가 아닌 스위스 프랑(CHF)을 사용하지만 솅겐(Schengen) 협약국이어서 EU 국가들과는 국내처럼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
영국이 EU 회원국이지만 솅겐 협약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아 유럽 국가에서 들어가도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과 정반대인 셈. 브렉시트가 구체화되면 영국으로의 통행에 더욱 제약이 걸릴 것이다.
스위스는 국가와 화폐의 약칭이 각각 CH, CHF라서 배경을 모르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프랑스식으로 스위스(Swiss) 또는 영어로 스위츨랜드(Switzerland)이니, 응당 S라도 들어가야 할 텐데 도무지 관계가 없는 알파벳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위스 지방의 원주민은 켈트족의 한 갈래인 헬베티카(Helvetica)족으로 그들은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유럽 대륙의 한가운데 있어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넘나들었던 까닭에 공용어만 해도 독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그리고 원래 이 지방의 언어(레트로망스어) 등 4개나 된다.
따라서 공식 국가 명칭을 어느 한 언어로 정하기 어려워 차라리 라틴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헬베티카 연방'이라는 공식 명칭을 라틴어로 쓰면 Confoederatio Helvetica 즉, CH가 된다.
스페인 남부 가족여행에서 새벽 비행기가 아님에도 여유를 부리다 놓쳐서 곤욕을 치렀던 우리 가족, 이번에는 절치부심하여 모두 새벽 2시 반 기상에 성공했다(스페인으로 출발, 그리고 새벽 런던 공항에서 벌어진 일).
저가 항공도 아닌 스위스 국적기의 히드로 공항 출발 시간이 새벽 6시였기 때문에 대안은 없었다. 아무리 유럽 내 단거리 비행이라 해도 새벽 6시에 이륙하는 비행기는 나도 처음 타는 경험이었다. 시차를 맞추는 것도 아닌데 출발 전부터 피곤하다며 온 몸이 아우성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우리는 승객이 아무도 없는 썰렁한 보안 검색대를 순식간에 통과했다. 하드로는 세계적으로 붐비는 공항인데, 안에서 개미 한 마리 볼 수 없어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일찍 나온 덕분에 히드로 공항의 모든 샵과 레스토랑이 새벽 4시 30분에 영업을 시작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행시간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새벽 비행은 피곤했다. 책을 읽는 둥 조는 둥 하다 보니 오전 8시가 되기 전에 취리히에 도착했다. 취리히 공항은 입국심사대까지 나오는데 헷갈릴 정도로 출/도착이 섞여 있어 공항 초보자는 애를 좀 먹을 듯하다.
스위스는 철도 최강국답게 기차가 안 들어가는 마을이 없고, 스위스 패스만 있어도 기차와 버스, 배 등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차 여행이 틀에 박힌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렌터카를 예약했다.
유럽 여행을 온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는 융프라우가 있는 인터라켄을 찍고 루체른이나 베른 또는 취리히를 거쳐 하루, 이틀 만에 다른 나라로 가 버린다.
우리는 한 도시나 지역을 천천히 돌아보는 데다 이번에는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묵기로 정했기 때문에 기동성과 편의성이 우선시되었다.
기차의 낭만은 포기했으나 구불구불한 스위스의 지방 국도를 달리면서 산과 호수에 감탄사를 내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위스 철도는 정확성과 안전을 보장해 주지만 편의성과 자유를 생각하면 렌터카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물론, 눈으로 막힌 길이 많은 겨울에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여행 첫날밤을 루체른(Luzern)에서 머물기로 정해 두었으나 이른 아침에 차를 받은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루체른의 반대쪽, 스위스와 독일 간 접경 지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비가 흩뿌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취리히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라인 폭포(Rhine Falls)를 건너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샤프하우젠 주와 취리히 주를 나누는 라인 폭포는 길이 약 1,300km에 달하는 라인 강의 유일한 폭포이자 유럽 대륙 최대의 평지 폭포이다. ‘라인 강의 기적'과 로렐라이 언덕으로 유명한 라인 강은 스위스 중부의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서부 독일을 가로질러 네덜란드를 통해 북해로 흘러 들어간다.
스위스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출발할 때 세차게 비가 쏟아져 걱정을 했지만 라인 폭포에 도착할 무렵에는 짙은 먹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비가 멈췄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라우펜 성(Laufen Castle)으로 향했다. 지금은 폭포의 관광 안내소와 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지만 서기 858년에 처음 기록에 등장한 이 성은 수많은 주인을 거쳤다.
특히 19세기에는 스위스의 풍경 화가 요한 루드비히 블루울러(J.L. Bleuler)의 품에 안겼다가 1941년에 취리히 주 정부에 의해 인수된 후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라인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라우펜 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라우펜 성은 생각보다 아담해서 성이라기보다는 큰 저택 같다. 작은 탑으로 된 정문으로 들어선 후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성의 안쪽에서 라인 폭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유럽 대륙에서 가장 큰 폭포라고는 했는데 평지를 흐르는 강의 폭포라 그런지 아이슬란드의 굴포스와 비교해도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언덕 위의 성에서 내려다보는 폭포의 뷰는 생각보다 평범해 보여서 웅장한 폭포를 기대했던 것 대비 첫인상은 살짝 실망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폭포의 본모습은 못 본 터, 성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까이 내려가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라니, 폭포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대단하다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웅장한 폭포 소리가 귀를 울렸다. 넓은 강의 물이 30미터 남짓 되는 절벽 아래로 하안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장면이 위압적이었고 무엇보다 수량이 엄청나 보였다.
강 반대쪽에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어 사람들이 수시로 타고 내리고 있었고, 노랗고 빨간 유람선은 청록색의 강물과 대비되어 유독 눈에 띄었다.
폭포가 떨어지는 강 한가운데에는 꼭대기에 전망 데크를 설치해 둔 작은 바위 기둥(Observation rock)이 서 있고, 유람선 탑승객들이 바위 기둥 뒤쪽의 물살이 잔잔한 곳에서 내려 계단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가 모두 폭포수에 깎여나간 채, 홀로 남아 강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버티고 서 있는 바위 봉우리가 위태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저 약해 보이는 돌기둥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안전'에 늘 민감한 아들에게 혹시 저기 올라가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원래 절벽이었을 엘리베이터 아래는 폭포를 향해 접근할 수 있도록 지그재그 형태로 전망로가 놓여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부서져 떨어진 물이 다시 강이 되어 흘러가는 폭포의 하단부인데 강물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어 청량감마저 든다.
예전에 캐나다 로키 산맥에서 보았던 레이크 루이즈(Lake Louise)의 에메랄드 빛 호수 색깔이 떠올랐다.
폭포 아래라서 강물의 흐름은 매우 거칠었지만 유람선 운전사는 마치 꼬부랑길에서 차를 몰 듯 물살에 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폭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물의 흐름을 가지고 노는 배테랑의 솜씨다.
우리는 승객들과 웃으며 손인사를 주고받았다.
전망로를 따라 좀 더 내려갔더니 절벽의 암반을 뚫어 폭포 바로 옆까지 가볼 수 있게 만들어 둔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팔을 뻗으면 닿을 눈 앞에서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어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이 사람들은 관광객을 감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효과가 극대화되는지 잘 아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얼굴 바로 앞에서 하얗게 부서진 수억 개의 물방울들이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리는데, 그 물줄기가 방출하는 바람과 에너지 때문에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멀리 위에서는 얌전해 보이던 폭포였는데 바로 옆에 와서 보니 거칠다 못해 난폭했다. 아래로 떨어지며 부서진 물방울들은 강 위에서도 안개와 비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떨어지는 물소리에 옆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우와-! 하면서 소리를 질러대기 바빴다.
동굴 밖으로 나와서 보니 폭포가 떨어지는 지점 앞에는 강 안쪽으로 길게 돌출된 전망 플랫폼이 설치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플랫폼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마치 폭포 위에 떠 있는 듯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이 거친 폭포에서 어떻게 저런 전망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북미에 있는 엄청난 규모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이렇게까지 실감 나게 자극적이지는 않다. 너무 큰 폭포는 가까이 갈 경우, 정작 폭포는 보이지 않고 떨어지는 물이 바람에 날려 폭우로 돌변하여 나는 빗속에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잰걸음으로 전망 플랫폼 위에 올라섰다. 눈 앞에는 폭포수가 거대한 해일처럼 나를 향해 덮쳐 오는 듯 위압감이 최고조에 달했고, 나를 향해 끊임없이 몰려오던 물줄기는 내 발아래로 푹 꺼지며 사라져 갔다.
내 주위는 엄청난 물살과 폭풍인데 그 속에서 있으면서도 맘 놓고 구경할 수 있는 기분은 기이했다. 이 위에서는 아까 있었던 동굴 속보다 몸이 물속으로 더 빨려 들어가는 듯 얼얼했다.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아서 더 궁금했던 라인 폭포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경험을 주었다. 전망 플랫폼은 라인 폭포의 백미이며 이런 걸 짓겠다고 생각한 관광대국 스위스의 세심함은 돋보였다.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의 폭포는 높지만 수량이 적다. 평지의 폭포는 수량이 풍부하지만 낮다. 라인 폭포는 폭포를 구경하는 방식에 변화를 줌으로써 평지 폭포의 평범함을 색다르게 바꿨다. 뜻밖의 발견이었다.
내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때,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한 아이들의 불만 게이지는 위험 수위(?)까지 상승해 있었다. 매점에서는 별다른 음식이 없이 소시지와 감자튀김을 팔고 있어 아이들과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음식만으로도 이 지역이 독일어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로잔과 같은 프랑스어권으로 가면 와인과 치즈 문화가 발달해 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루체른으로 운전대를 틀었다.
루체른까지는 고속도로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었으나, 이왕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넓은 루체른 호수를 돌아 드라이브를 즐기자는 생각을 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호수 반대편 끝에 있는 부르넨이라는 마을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천천히 숙소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선택은 생각지 못한 재앙(?)을 부르고 말았다.
(루체른 편은 다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