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Life is short> by Paul Graham
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오늘은 Y Combinator 창업자 Paul Graham의 <Life is Short>라는 에세이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삶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인생이 짧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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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고 있듯이, 인생은 짧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이 말에 대해 의아함을 품곤 했습니다. 삶이 정말로 짧은 것일까, 아니면 단지 유한하다는 사실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보다 열 배를 더 산다고 해도, 그때 역시 삶이 짧다고 느낄까?
이 물음에 해답이 없어 보여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을 얻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제게 이 질문에 답할 실마리를 주었고, 그 답은 인생은 실로 짧다는 것입니다.
두 살배기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주말은 고작 쉰두 번뿐입니다. 가령 '마법 같은 크리스마스'(아이가 산타를 믿을 때)의 시간이 3세부터 10세까지 지속된다면, 아이가 그 마법을 경험하는 순간을 지켜볼 기회는 여덟 번에 불과합니다. 시간처럼 연속적인 양에 대해서는 그 많고 적음을 논하기 어렵지만, '여덟'이라는 숫자는 결코 넉넉한 횟수가 아닙니다. 손에 땅콩 여덟 알이 쥐어져 있거나, 선택할 책이 여덟 권 꽂힌 책장이 있다면, 우리의 수명과 관계없이 그 분량은 명확히 제한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실로 짧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 삶에 차이를 만들어낼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 ] 하기엔 너무 짧다”라는 문장에서 빈칸에 무엇이 들어갈지 고민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죠. 인생이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짧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만약 스스로 "이것"은 내 인생을 낭비하기엔 너무 아까운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가능한 한 그것을 당신의 삶에서 제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 삶에서 "인생은 [ ] 하기엔 너무 짧다"에서 빈칸이 무엇이었는지 자문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헛짓거리(bullshit)였습니다. 이 대답이 사실상 동어반복적이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헛짓거리란 인생이 너무 짧아서 할 가치가 없는 것들의 거의 정의와 같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헛짓거리'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무언가 가짜 같은 면이 있습니다. 마치 경험의 정크푸드와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어떤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지 묻는다면, 아마 이미 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불필요한 회의, 무의미한 논쟁, 허세, 지겨운 교통 체증, 중독성은 강하지만 보람 없는 소일거리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시간 낭비 요소들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 삶에 침투합니다. 외부로부터 강요되거나, 아니면 기만당해 스스로 선택하거나입니다. 어느 정도는 환경이 강요하는 헛짓거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버는 행위는 대개 잡다한 업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이를 보장합니다. 어떤 일이 더 보람되고 가치 있을수록, 사람들은 더 낮은 대가를 받고도 그 일을 하려 들 테니 말입니다.
다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외부의 강요가 적을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기회는 적을지언정 삶이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존재해 왔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앞으로 더욱 보편화될 수 있습니다.
헛짓거리에 쏟아야 하는 시간은 직장마다 다릅니다. 대다수의 대규모 조직(물론 작은 조직들도 많지만)은 그런 헛짓거리로 얼룩져 있습니다. 하지만 헛짓거리를 피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우선순위에 둔다면, 당신의 시간을 덜 낭비하는 고용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프리랜서이거나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면, 개별 고객 수준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악성 고객을 잘라내거나 애초에 피한다면, 수입이 줄어드는 정도보다 훨씬 더 많이 삶에서 헛짓거리의 양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헛짓거리는 불가피하게 강요되겠지만, 우리를 속여 삶에 스며드는 헛짓거리는 오롯이 우리 자신의 책임입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선택한 헛짓거리가 강요된 것보다 제거하기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은 그만큼 사람을 속이는 데 탁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예로 온라인에서의 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의견에 반박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격으로 다가옵니다. 때로는 꽤 노골적으로 말입니다.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이 우리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많은 본능이 그렇듯, 이 본능 또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 맞게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반직관적으로 느껴지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당신의 삶을 소모시키는 것입니다.
온라인 논쟁은 부수적으로 중독성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들도 존재합니다. 제가 이전에 언급했듯이, 기술 발전의 한 가지 결과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욱 중독성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내가 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방식이 이것인가?"라고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헛짓거리를 피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중요한 것은 다르고, 대부분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아야 합니다. 운 좋은 소수는 일찍이 자신이 수학, 동물 보호, 글쓰기 등을 사랑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많은 시간을 그 일에 바칠 방법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뒤섞인 채 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둘을 구분하는 법을 배웁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경우, 이러한 혼란의 상당 부분이 그들이 처한 비자발적인 상황 때문에 발생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또래들의 시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인들에게 그 나이에 무엇을 후회하는지 물어보면, 거의 모든 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너무 지나치게 의식했다고 답합니다.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한 가지 지표는 "미래에도 내가 이 일을 신경 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가짜로 중요한 것들은 대개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의 정점이 매우 날카롭습니다. 그 순간의 강렬함이 당신을 속이는 방식입니다. 시간-중요도 곡선 아래의 면적은 작지만, 그 모양이 핀처럼 당신의 의식 속을 찔러 들어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반드시 사람들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부르는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도 중요합니다. 나중에 그 시간이 아깝다고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어린 자녀를 두는 것의 큰 축복 중 하나는 아이들이 당신을 가장 중요한 일, 즉 아이들에게 시간을 쓰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휴대폰을 응시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소매를 잡아당기며 "아빠, 같이 놀아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순간이 바로 헛짓거리를 최소화하는 선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생이 짧다면, 우리는 그 짧음에 예고 없이 덮쳐질 것을 예상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어느 순간 그것들이 홀연히 사라집니다. '언제든 저 책을 쓸 수 있고', '저 산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문득 기회의 창이 닫혔음을 깨닫습니다.
가장 슬픈 창의 닫힘은 다른 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 발생합니다. 그들의 삶 역시 짧았으니 말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계실 것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저와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에 불시에 습격당하는 것을 피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삶이 더 위태로웠기에, 사람들은 지금은 다소 음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죽음을 인지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죽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답은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더 나은 해결책은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일 겁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성급함"을 기르는 것이죠. 그 산을 오르거나, 그 책을 쓰거나, 어머니를 찾아뵙는 일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무언가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우리가 하는 두 가지 행동을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이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가진 것을 최대한 음미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이 짧은 인생에 적절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의 수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가진 시간에 더욱 깊이 집중하는 것으로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급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기 쉽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몰입(flow)에는 일상의 잡무와 알람 속에 갇혀 삶을 멈추어 음미하지 못하게 하는 어두운 이면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제임스 솔터(James Salter)의 책 제목인 《나날들을 불태우다(Burning the Days)》였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어느 정도 늦추는 것은 가능합니다. 저는 그 방법을 더 잘 익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도움이 됩니다. 어린 자녀가 있을 때는 그 순간이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이죠.
어떤 경험에서 남김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느끼는 것 또한 도움이 됩니다. 제가 어머니에 대해 슬퍼하는 이유는 단순히 어머니가 그립다는 것을 넘어,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놓쳐버린 모든 순간들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제 맏아들은 곧 7살이 됩니다. 3살 때의 아들이 그립긴 하지만, 적어도 '그랬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빠와 3살 아들이 보낼 수 있는 가장 충만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헛짓거리를 단호하게 잘라내고, 중요한 일을 미루지 말고, 당신이 가진 순간순간을 음미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 짧다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어야 합니다.
https://paulgraham.com/v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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