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ow you know>
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Y Combinator 창업자 Paul Graham의 <How you know>라는 에세이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저도 최근에 가졌던 의문이었는데 이제 마음 편하게 책 읽고 까먹을 수(?) 있겠네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실리콘밸리 대가들의 에세이와 인터뷰를 번역한 글을 매주 수요일 저녁에 받아보실 수 있어요 :)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쓸모 있는" 글만을 보내드린다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읽는 분들의 "시간을 빼앗는" 글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드릴게요.
아래 링크에서 이메일만 입력하시면 바로 신청됩니다 :)
저는 빌라르두앵(12세기 프랑스의 기사이자 역사가)이 쓴 《제4차 십자군 원정 연대기》를 저는 최소 두 번, 어쩌면 세 번은 읽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 책에서 기억나는 걸 전부 적어보라고 한다면, 아마 겨우 한 페이지를 채울까 말까 할 겁니다. 이런 일이 수백 권의 책에 대해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책장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집니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어도 남는 게 거의 없다면, 대체 책을 읽는 의미가 뭘까요?
몇 달 전, 콘스탄스 리드(미국의 수학 전문 전기 작가)의 《힐베르트 평전》을 읽다가,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힐베르트(20세기 독일의 위대한 수학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힐베르트는 학생들에게 사실만 잔뜩 주입하고 정작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수학 강의에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해답의 절반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 말은 늘 제게 굉장히 중요한 통찰로 다가왔는데, 수학의 거장 힐베르트에게서 직접 이 말을 듣고 나니 확신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애초에 이 생각에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제 경험과 제가 읽었던 다른 책들이 합쳐진 결과였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그 순간에는 관련된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저는 힐베르트가 이 사실을 확증해 주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 개념의 중요성에 대한 저의 믿음은 더 깊어진 채로 남을 것이고, 심지어 제가 이 책에서 배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후에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성과로 남을 겁니다.
독서와 경험은 세상을 이해하는 당신의 사고방식을 다듬어 줍니다. 설령 그 경험이나 읽은 내용을 잊어버린다 해도, 그것이 당신의 세상 모델에 남긴 영향은 그대로 지속됩니다. 우리의 정신은 마치 소스 코드를 잃어버린 채 컴파일된 프로그램과 같습니다. 작동은 잘되는데, 왜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죠.
제가 빌라르두앵의 연대기에서 얻은 것을 찾으려면, 제가 책에서 기억하는 내용이 아니라, 십자군, 베네치아, 중세 문화, 공성전 등에 대한 저의 머릿속 모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더 집중해서 읽지 못한 것을 변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독서의 결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보잘것없이 작지는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 당연한 이야기네" 싶은 것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큰 깨달음이었고, 읽은 것을 너무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 불안함을 느끼는 다른 모든 분에게도 아마 놀라운 사실일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단순히 망각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시사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서와 경험은 보통 그것들이 일어나는 당시의 뇌 상태를 이용해 '처리(컴파일)'됩니다. 따라서 같은 책이라도 인생의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흡수됩니다. 이는 곧 중요한 책일수록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예전에 책을 다시 읽는 것에 대해 약간의 망설임을 느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독서를 '목공' 같은 작업과 동일시했던 거죠. 목공에서는 무언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일을 잘못했다는 증거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이미 읽은 책"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 시사점은 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 발전은 우리가 경험을 다시 체험하는 것을 점점 더 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 삶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이 책을 다시 읽을 때처럼, 경험을 되새기며 거기서 또 다른 배움을 얻는 것이 흔해질 수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경험을 재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색인을 만들고 심지어 편집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를 '어떻게' 아는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숙명처럼 보일지라도, 어쩌면 영원히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역주: 뉴럴링크가 하나의 예시일 수 있겠네요.)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