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Seven Sixty Four>
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Paypal의 공동창업자 Max Levchin의 <Seven Sixty Four> 에세이를 번역했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길!
실리콘밸리 대가들의 에세이와 인터뷰를 번역한 글을 매주 수요일 저녁에 받아보실 수 있어요 :)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쓸모 있는" 글만을 보내드린다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읽는 분들의 "시간을 빼앗는" 글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드릴게요.
아래 링크에서 이메일만 입력하시면 바로 신청됩니다 :)
<신용불량자가 금융 서비스를 만들게된 이야기>
성공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제대로 된 창업 스토리 하나쯤은 필수입니다. 조금은 쑥스러운 일화 몇 가지에 가슴 찡한 교훈적인 순간 한두 개를 더한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홍보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 기억에 남는 탄생 스토리는 창업자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고, 늘 따라다니는 "이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됐어요?"라는 질문에 재치 있고 뻔하지만 현명한 대답을 제시해 줍니다.
여기 소비자 금융을 더 정직하게 만들겠다는 저의 엉뚱하면서도 진심 어린 목표에 밑거름이 된 저의 개인적인 경험 중 하나를 풀어놓습니다.
제가 일리노이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2학년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루크와 스콧이라는 두 괴짜 친구가 마운틴 듀를 마시며 사무실에서 제가 밤샘 코딩을 하던 것을 방해했죠. (제 개인 컴퓨터가 없어서 학교 장비를 활용하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제게 그래픽 데모 만드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자신들과 함께 신나는 스타트업 모험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저의 스타트업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회사를 차리는 것은 멋진 주말 프로젝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약 1년이 훌쩍 지난 후, 저희의 작은 스타트업은 현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해 동안 스콧의 제법 되는 자본, 루크의 얼마 안 되는 자본, 그리고 저의 아예 없던 개인 자본까지 모두 털어 넣었고, 이제 피할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자금 유치 시도는 허사로 돌아갔고, 저희의 수익으로는 서버를 계속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스콧이 제가 신용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안 된 이민자였고, 순전히 세상 물정 몰랐던 덕분에 캠퍼스 내 신용카드 홍보원들을 기가 막히게 피해 다녔던 것입니다. 반면에 루크와 스콧은 한두 달에 한 번씩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최소 결제액을 요령껏 관리하며, 기술 장비 구매에 필요한 신용을 계속 늘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생 첫 신용카드(와 덤으로 받은 티셔츠)를 손에 넣었습니다.
새로 생긴 현금줄로 꽤 많은 돈을 긁어 썼고, 그 현금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저희 스타트업은 결국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가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200달러 한도(와 티셔츠)를 선뜻 내주었던 이름 없는 카드사의 사람들은 저만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몇 번 연속으로 최소 결제액을 놓쳤거나, 빚 독촉 전화에 바로바로 답하지 않은 탓이겠죠. 저의 카드 한도는 즉시 0원으로 줄었고, 다른 카드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모두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1995년에는 저는 "FICO 점수"나 "신용 보고서"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신용카드 최소 결제액이 0원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도 희미하게만 알고 있었죠. 1996년이 되자 저는 그 결과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심각하게 망가진 신용 점수를 복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여가 시간에는 세상을 뒤집을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재미는 덜해도 돈이 되는 계약직 일을 했고 신용카드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1997년에 졸업할 무렵에는 작은 성공도 거두었습니다. 저의 사이드 프로젝트 중 하나를 실리콘 밸리의 진짜 회사에 팔았으니까요. 어쨌든 저는 더 이상 빚이 없었습니다. 계좌는 폐쇄되었고, 그 지긋지긋한 카드는 마침내 가위로 잘라 버렸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진짜 문제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졸업 직후 팔로 알토로 이사했지만, 저는 휴대폰 개통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가 유니버시티 애비뉴의 스프린트 매장에서 저를 위해 보증을 서줘야 했고, 몇 년 동안 모든 발신자 표시에는 제 이름 맥스 대신 에릭이 떴습니다. 신용 점수 때문에 어떤 집주인도 저를 받아주려 하지 않아서, 저는 스콧의 팔로 알토 원룸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피터 틸이 저를 태워주는 것에 지쳐 제 차를 사라고 요구했을 때, 루크가 저의 첫 자동차 대출에 연대보증을 서주었습니다.
낮은 신용점수는 몇 년 동안 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첫 데이트에서 새로 만든 고금리 신용 회복 카드가 거절당하는가 하면, 그랜트 애비뉴에 있는 편안한 바닥집(?)에서 벗어나 이사를 결정했을 때 더 낮은 수준의 아파트를 알아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민 온 사람들은 신용을 거부당하고, 젊은이들은 0%라는 미끼에 속아 고금리 카드에 발을 들이며, 질병이나 실직 같은 단 한 번의 사건 때문에 사람들의 재정 생활이 송두리째 망가집니다. 하지만 이럴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신용 점수 시스템에 대해 느꼈던 그 좌절감과 말도 안 된다는 불만은 제가 그것을 해결할 시간과 자원을 갖게 될 때까지 제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Affirm을 설립하여 민첩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독점적인 신용 점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학생, 이민자, 새로운 가정을 꾸린 사람들 등 더 많은 이들에게 신용과 금융 혜택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