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기부터
나는 알랭드보통의 <여행의 기술> 애독자다. 보통의 글 솜씨와 탁월한 콘셉트 선정을 좋아하지만, 그의 독자에 대한 눈부신 배려는 따로 있다.
여행을 실제로 가려면 어떤 이들에게는 생각해야 할 것이 이만저만 아니라서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나 같은 이는 물론 여행 갈 생각만으로도 도파민이 솟구쳐 살맛이 난다. 실제로 올해 열흘동안 국외 출장을 다녀오니, 내 나름 출장보고서를 빼곡히 채운 알찬 출장이었지만, 내 얼굴이 좋아졌다는 주위의 이구동성에 씁쓸하게도 아내 눈치를 본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뭐든 좋다. 일단 나가는 날짜와 들어오는 날짜가 정해지면, 무엇을 타고 공항까지 이동할지 생각하게 되고 그에 맞는 가방의 크기와 짐 개수, 나가는 날의 옷차림, 출입국 검색대에서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는 가방 싸기까지 여러 가지 계산을 단숨에 하게 된다.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 주연의 영화 <업 인 디 에어>에서 아주 맘에 드는 장면이 이 영화 앞부분에 나온다. "해고 전문가" 조지 클루니의 유쾌하지 않은 비즈니스 출장 기술을 상당히 쿨하고 심플하게 보여준다. 이나는 물론 영화 주인공처럼 멋있지도 않고 마일리지왕이 될 정도로 출장이 잦은 것은 아니지만 종종 피할 수 없는(피하기 싫은?) 국외 출장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 나름의 여행의 기술은 가지고 있다.
짐 싸기. 내게는 공항에 어떻게 가느냐 하는 첫 질문과 더불어 여행 준비의 가장 기본이며 시작이 되는 문제적 기술이다. 아무래도 비즈니스 출장이 많다 보니 가벼운 정장 한 벌 또는 구두 한 켤레는 챙겨가야 할 듯한데 큰 짐을 끌고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고 그다지 멋져 보이지도 않아서, 가방은 작은 걸 선호하고 옷도 구김 없고 얇은 것을 챙긴다. 구두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스니커즈로 대체할 경우가 많고 현지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재킷을 걸치고 갈지, 캐리어에 넣어서 갈지를 정한다. 그리고 업무시간 후 여유 있는 일상을 위해 슬리퍼를 챙기는 것은 필수. 다만 크록스류는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다른 아이템을 양보해야 한다. 플립플롭이나 납작한 스포츠 슬리퍼를 추천하지만, 패션은 그야말로 취향이기 때문에...
다음 달에 출장 한건이 정해져 있는데, 잘하면 이 달에도 나가게 될 것 같다. 프랑스어가 통하는 아프리카로 가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피하기보다는 즐길 줄 아는 마인드가 진정한 여행의 기술자 라고 할 수 있겠지. 오늘은 어린이날 단상을 남기러 왔다가, 지난 4월 출장 전 공항에서 첫 문장만 적어놓고 귀차니즘에 미뤄두었던... 회심의 습작 "여행의 기술" 1장. 짐 싸기에 대하여 잠시 적었다. 할 이야기는 더 많지만...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적는 것이 뭔가 더 생동감이 있는 것 같다는 "또 다른" 핑계를 대며 다음 출장으로 이어지는 글을 기약하며 줄이려고 한다.
이렇게 게으른 저를 용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 독자님들, 편집자님들. 글 쓰기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처음 시작은 힘겹지만, 날아오르는 기분만큼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