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유를 향해.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다. 그렇다. 인간은 죽음으로 가는 여로에서조차 죽음을 잊고 사는 오류의 동물이다.
10년 전, 철학에 빠져 나름 몇 권의 철학서적들을 읽고 나만의 답 어떤 나만의 선을 찾고자 노력했다. 어려운 책을 소화하고자 하는 어떤 우쭐함도 분명 있었지만, 실제로 선지자들의 말씀들은 삶의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수많은 철학가들이나 사상가들이 말하는 ‘내려놓음’과 ‘도덕적 성찰’에 대해 공감하고 그저 생각만 할 뿐, 기꺼이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책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깨달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그럴 깜이 안되니까.
이렇게 나를 괴롭힌 자기 비하는 어쩌면 옳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을 과거의 자신을 지속적으로 학대하며 방향을 전환했다. 그런 나를 향한 혐오로 결국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남들이 원하는 말만 하며 남들과의 갈등을 병적으로 회피했다. 나 같은 놈은 생각을 폼으로 하는 놈이란 결핍 (그놈의 결핍)을 견딜 수 없었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삶은 거짓말이라는 믿음이 굳건히 자리 잡았다. 이미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방탕한 삶을 살 용기도 없었지만 적어도 지나치게 철학적인 나 자신을 경계함으로써 나의 도덕적 해이함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것이 합리적인 인간이요 솔직한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나는 의미 바깥의 삶을 즐긴 것이다.
"그래 모든 인간은 다 똑같아. 나라고 별 수 있겠어?"
"그렇게 까지 삶을 피곤하게 살 필요는 없어."
그와 동시에 성공을 갈망하고 (정확하게는 실패하지 않는 내 모습을 위해) 나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최소 비참한 삶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어른들이 그래 왔고, 그렇게 말해줬으니까.
하지만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자유’를 말한다. 진정한 자유. 경제적 자유 같은 표피적인 의미가 아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강박과 관념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말이다. 10년 전엔 내가 사는 현실에선 도저히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도망쳐 왔지만 지금부터라도 완전한 자유를 향해 발걸음을 떼 보려고 한다.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방향이 있다면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원하는 것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 반대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 방향으로는 한 발짝도 옮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애초에 원치 않는 곳으로 가는 다리를 태우는 것이다.
삶이 고통이어도 상관없다. 대단하게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죽기 전 한 번만이라도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