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지도한다는 것은.
노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지도자란 "하지유지(下知有之)"라 했다. 사람을 다스리는 가장 훌륭한 상태는 "다스림을 받는 줄 모르게" 다스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최고의 리더는 사람들이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다음 리더는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존경한다.
그다음 리더는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다음 리더는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최고의 리더가 일을 했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해냈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코치를 하기로 결정하고 온 지 1년이 되었다. 사실, 처음 코칭을 시작할 땐 나의 기질이나 본성과는 다르게 반대로 해야 한다는 무언가의 압박을 느꼈다. 신비함과 카리스마로 무장하여 선수들을 홀리고 싶었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기본적으로 화가 나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상대가 불편해할 만한 말이나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다양한 수준과 성격의 선수들을 지도하기에 이런 내 회피형 성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이성과 감정을 최대한 숨긴 채 선수가 실수를 했을 때나 일반적으로 화를 내야 마땅한 상황들을 맞딱들였을 때는 그에 응당하게 화를 냈고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는 말들도 했다. 선수를 성장시키기 위함과 동시에 내가 스스로 우스워지지 않으려는 행동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도자가 우스워지면 그것만큼 선수에게 해로운 것도 없다고 생각도 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뜨거운 불 앞에 몸을 녹이려는 사람처럼 지도자와 선수는 적당한 거리를 조심스럽게 유지해야 한다. 사이가 가까우면 타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면 얼어버리는 상성의 관계라고 할까. 그만큼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예민하다.
지난 1년의 나를 반추할 때, 어딘가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선수들과 소통하고 한 팀을 이끌어 갈 때 나라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전히 선수들 앞에 서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선수들을 다그치기라도 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하는 것인지, 아님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선수들을 끊임없이 다독이며 선수가 원하는 방향과 나의 방향을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은 말이다.
사진출처 - 밥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