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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Nov 23. 2022

다시 현장으로

책임을 짊어지기 위한 첫걸음

박사과정을 잠시 멈추고 얼음판 위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현장으로 온 지 5개월 가까이 되었다. 전 빙상인에서 현 빙상인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들었던 말들 중 하나는 "공부한다더니 왜 얼음판 위에 왔어." "겨우 이거 다시 하려고 유학 갔던 거야?"와 같은 말이었다. 어떤 선배는 "지옥으로 들어왔구나" 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었다 (제가 천국 같은 데서 온건 아닙니다만..). 암튼 재밌는 건 현장으로 다시 오기를 결심하기까지 스스로 수 없이 되뇌었던 말들인지라 크게 충격을 받진 않았다.


그동안 내가 현장에 가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실패했던 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규정한 실패가 진짜 실패였나 돌이켜보면 단지 내가 성취하고 싶던 만큼 이루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실패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영원히 실패로 남는다는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선수로서 실패자로 여겼기 때문에 나를 모르는 다른 곳으로  성장하고 무언가를 멋지게 성취  , 금의환향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도전의 탈을  회피였을까). 그렇게 답을 정해버린  삶을 향한 나의 망상은 채워지지 않은 결핍이 되어 나를 끝없이 괴롭혔다.  하나 현장을 회피한 변명을 하자면 내가 좋아했던 친구들 동료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얼굴 붉히고 전전긍긍 살고 싶지 않았다. 돈과 성적을 위해서라면 쌓아온 신뢰와 관계도 저버리는 도덕적 해이감에 젖은 사람들과  하루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나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을까  두려웠다.


Photo by David Pinheiro from Pexels


영국에 있는 동안, 현장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두 번째 진로라고 생각한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기에 거절했다. 그리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공부를 포기한 것처럼 보일까 쪽팔렸다(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게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그리고 애초에 공부하면 안정된 삶이 기다리고 있고, 지도자가 되면 당장 먹고살긴 해도 비전이 없다는 생각 또한 나의 망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잘해야 안정된 삶도 있는 것이고 좋은 미래도 있는 것이다. 미래라는 것은 원래 알 수 없고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현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지난날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무엇을 선택하던 내가 하기 달린 것인데 말이다.


Don't Make the Right Decision, Make the Decison Right!


그렇게 무엇을 선택하던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안하고 불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해졌다. 선수에서 유학길로,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나의 선택이 내 삶을 직선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그릴지라도 그것이 그저 온전한 나의 선택이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무려 3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옳은 선택은 없다고 하지 않나, 그저 내가 내린 선택을 옳게 만들 수 있으면 된다.


5년 전 야심 차게 내 삶을 바꾸리라 다짐했던 나의 선택에 떳떳해지려면, 지금 이 순간을 도리어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지금은 내 위치에서 책임을 다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지탱하며, 한 가정을 보살피는 가장으로서의 나 자신을 독려해야 할 때이다. 얹어진 책임의 무게만큼 사람은 성장한다.


흔들리지 않는 무소의 뿔 같은 심정으로, 그곳이 어디든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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