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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May 18. 2022

42.195km

인생 첫 마라톤 도전.

지난 일요일 35년 인생 첫 마라톤을 완주했다. 나름 마라톤 거리를 뛰려고 경기 두 달 전부터 평소 5-10km 정도의 거리만 뛰던 내가 20km 정도의 거리를 두 번 정도 뛰었다. 단기간에 준비한 마라톤 인지라, 평소보다 긴 거리를 너무 자주 뛰었던 걸까. 무릎과 종아리 통증이 지속되었다. 경기 당일 전 까지도 통증이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지나치게 빠른 속주 연습도 안되고, 거리를 늘려서도 안되었다. 연습에서 그 이상 무리하게 되면, 무릎이나 골반 어디 하나는 고장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차저차 하여 다가온 경기 당일. 코로나로 인해 2년 만에 열리는 대회는 활기가 가득했고, 13,000명이 넘는 러너들이 덴마크 코펜하겐에 응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청난 인파와 분위기만으로도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5km

완주까지 유지할 페이스를 가늠하는 시간이다. 5분 중반으로만 맞추면 4시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경기에서는 처음에 비슷한 수준의 러너들과 우르르 달리면 예상한 기록보다는 - 10초 정도는 빨리 뛸 수 있었다. 같이 뛰니 평소보다 덜 힘들었다.


10km

몸이 조금 더 풀리고 같은 노력으로 조금 더 빨리 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40km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페이스상 5분 초반대로 뛰어도 충분히 뛸 수 있었다. 심박은 다소 높지만 괜찮다. 준비한 에너지겔을 하나 꺼내먹고 주변의 분위기 옆에서 같이 뛰는 러너들의 페이스와 내 페이스를 견주어 20km를 향해 나아간다. 다른 러너의 페이스와 내 페이스를 비교하는 것은 딱 하프까지만 가능하다. 이후부터는 내 페이스만 집중해야 한다.


20km

하프를 지나면서도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꽤 안정되었다. 어? 이거 4시간 안이 문제가 아니라 3시간 40분 안으로도 들어오겠는데? 하프까지의 기록은 1시간 50분대. 뛰어온 속도와 템포로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대로만 유지하다가 힘이 더 남으면 속도를 더 올릴 마음까지도 들었다.


30km

하지만 이때부터 갑자기 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GPS 시계로 꾸준히 5 30 평균 페이스를 유지하던 기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느끼는 템포는 그대론데 페이스는 6분이다. 이대로 끝까지 가면 겨우 4시간 안에 들어오겠다는 계산이 섰다. 나의 원대한 목표를 가진 초심의 자아와 현재 내가   있는 만큼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자아와의 싸움에서 빠르게 후자의 손을 잡는다. 이제 목표는 3시간 59 59초다!

30km 지점


35km

꿈속에서 나는 도망치려고 죽어라 뛰는데 뛰어지지 않는 기분이다. 이때부터는 딱 그런 기분이었다. 나머지 7km 정도만 버티면 되는데.. 하지만 처음의 7km를 뛰는 거리와 7km가 남았을 때의 나의 몸은 절대 같지 않다. 그야말로 지옥이다. 어느 순간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어졌고 그저 걷지 않고 도착하길 바랐다.


40km

죽어라 6-7분대 페이스를 유지하기를 바라며 뛰는 시늉에 가까운 자세로 뛰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이 이상해졌고 손끝은 저리면서 다리는 아픈  같은데 아프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걷지 않겠다는 나의 심오한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달리기를 멈추면서 무너졌다. 그렇게 1km 이상을 좀비처럼 걸었던  같다.   


"아무리 그래도 걷는다고? 그 정도로 나약하진 않지!" "예상 기록은 못 맞춰도 걸을 정도로 멘털이 약하진 않아!"


그 와중에 걷는 동안 주는 물과 식량은 있는 데로 받아먹었다 (살기 위해서).


41.5km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더욱 짙어지고, 무릎이 부서져도 피니시 라인은 뛰어서 지나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전히 내리쬐는 태양 밑에  4시간 안으로 뛰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자신감은 사라졌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골인지점을 향에 몸뚱이를 한 발 한 발 지탱하는 것뿐이었다.


42.195km

그렇게 4시간이 넘는 장정이 끝이 났다. 오랜만에 다시 느껴본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다시금 생각해보니 걸을 정도로 힘들줄 알았다면 애초에 도전조차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35km를 넘어선 순간에는 그저 한발 한발 뛰고 있다는 감각밖에 없었다. 솔직히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걷게 될 것 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걷는 것이 포기가 아니라 완주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a.k.a 정신승리).


다시금 생각해보니 걸을 정도로 힘들 줄 알았다면 애초에 도전조차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마라톤을 도전한 이유는 기록도 아니었고, 완주도 아니었다. 그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뛰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나의 도전은 나름 성공이다. 완주는 덤이다!  


다음번 목표는 3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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