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은 처음입니다.

by ALF

양평은 경기도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었다. 대안학교에 무관심한 나에게 신랑이 여행 겸 한 번만 가보자며 설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신랑은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월급쟁이 외벌이로 대안학교 학비를 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키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2018년 봄..

부모참관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큰 아이 학교를 방문했다. 처음은 아니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3학년 교실로 향했다. 큰 아이는 어릴 적부터 매사에 적극적이고 의사표현이 확실해서 큰 걱정이 없던 아이였다. 그런 큰 아이가 교실 뒤쪽을 가득 메운 부모들을 뒤로 한채 엎드려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는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우리 아이에게만 핀조명이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들 앞에서 더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선생님의 질문에 서로 경쟁하듯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지만 우리 아이는 수업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유치원 3년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성실한 둘째도 걱정 없이 초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기 초, 학원선생님께서 아이의 공부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으니 쉬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성적이고 표현에 서투른 둘째는 싫다는 말도 못 하고 지금까지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의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후, 대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던 경력을 뒤로 한채 아이 옷과 신발, 이불까지 만들며 태교에 전념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토피가 생기자 직접 보습제를 만들어주기 위하여 국제아로마테라피 자격증과 아토피상담자격증을 취득하였다. 큰 아이가 커서 엄마의 화장품에 관심을 갖자 숯으로 만든 아이라이너와 천연립밤까지 만들어 줄 정도로 열혈엄마였다. 그렇게 전업주부로써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에게 낯선 아이들의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우리 아이들의 귀한 시간을 이렇게 보내게 할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양평으로 이사하다.

일요일이라 학교는 조용했다. 간단히 학교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따듯한 분위기의 교실과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작품을 하나 둘 보면서 대안학교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 후, 우리는 입학설명회에 참석하였다. 우리는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수업시연을 보고 아이들은 다른 교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잘 그린 그림이 아닌 아이들의 색깔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습식수채화였다.

큰 아이의 작품

'우리 아이들도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면 좋겠다...'


결국 우리는 1학기 마칠 즈음 대안학교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한 달 남짓한 여름방학에 아이들을 전학시켰다. 2학기 시작을 대안학교에서 시작하고 싶어 우리는 살던 집도 비워둔 채 양평에서 월세를 얻었다.

우리 부부는 양평으로만 가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 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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