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과 퇴사, 자유를 꿈꾸며 회사에 몸담은 회사원에게

1. 공공기관 인턴으로 시작한 떠돌이 라이프

by 밀밀

공기업, 공공기관, 하여튼 ‘공’자로 시작하는 조직에서 일하다보면 순환근무는 거의 필수라고 보면 된다. 사기업에서 몸이 갈려나가듯 일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덕에,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살겠다는 중학생 때부터 이어진 유구한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나는 공조직 외에는 다른 옵션을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일하고 보니 공조직도 몸을 갈아넣어 일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으며, 안정적이라는 장점 외에는 비혼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전무했다. 우선 임신, 출산, 육아 관련 제도를 제외하면 혜택의 80%는 날라가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듯.)

공공기관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인턴으로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지원할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원주혁신도시의 공공기관에서 일 년에 두 번씩 대량으로 청년인턴을 채용하는데, 아무런 경력도 가산점도 없어 초조했던 나는 이에 지원하여 11개월동안 연고도 없는 강원도 원주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지방 이전 정책으로 형성된 원주혁신도시는 가족을 수도권에 두고 홀로 거주하는 사람들,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며 매일매일 길에서 4시간 이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2020년 초반 기준)

나는 차마 출퇴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오피스텔에 11개월 단기 계약으로 들어갔다. 적지 않은 인원이 인턴으로 오가며 근처 오피스텔, 원룸 등 임대업자들의 쏠쏠한 자금의 원천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의 인턴 생활을 통해 공공기관 근무에 대해서도, 지방 근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찍먹해볼 수 있었다. 지방 이전 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지방 근무는 생각보다 나와 잘 맞았다. 유흥을 즐기지 않는 집순이, 서울의 인구밀도에 지칠대로 지친 내향인은 늦은 시간이면 불이 꺼져 어두컴컴하고, 주말이면 사람이 죄다 빠져나가 유령도시처럼 보이는 이 곳을 좋아했다. 물론 내가 집에서도 백만가지를 할 수 있는 취미부자였다는 점, 원주가 그나마 수도권에 근접한 도시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턴은 어디까지나 인턴일 뿐이다. 업무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 수도 없으니, 그 전후로 강한 업무노동 등으로 유급질병휴직자가 다수 발생했다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한(*추정) 케이스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11개월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에서의 생활도 정리하며 나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했다. 이제는 청년 인턴 가산점도 있고 자기소개서에 적을 내용도 많겠다, 취업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이제 겨우 필수조건을 다 갖추고 출발선에 선 제로베이스라는 상태라는 것도 모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