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토(한국사, 컴활1급, 토익/취업준비생의 3대 기본 덕목)와 인턴 경력을 갖추고서야 겨우 취업준비의 출발선상에 섰다. 자소서 무차별 발사를 시전하며 NCS스터디도 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공공기관의 입사는 서류심사, 필기시험, 면접 3단계로 이루어져있다. 확실히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첫번째 고비에서 허덕이던 걸 두번째, 세번째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SNS에서 떠돌던 취업에 대한 찰떡같은 비유가 있다. 취업은 대형마트 주차 자리가 날 때까지 뱅뱅 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그러던 어느 날 흔한_면접_불합격_통보.jpg를 받고 공부하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다.
당연히 안받았고 번호를 검색해봤더니, 면접 불합격 통보를 받은 기관이 아니겠는가. 놀라서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그 기관의 인사팀. 추가합격이란다. 한 사람이 마지막에 입사를 포기했다며.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마음 속으로 큰절을 하면서 입사준비를 시작했다.
큰 기관이 아니었기에 교육은 아주 짧았다. 처음 배치는 받은 곳은 집에서 1시간 30분 떨어진 지역센터였다. 그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뽑힌 다른 계약직분들과 울고 웃으면서 업무를 배워나갔다. 하지만 세 달도 안돼서 지독한 현타가 찾아왔는데, 내가 그동안 공부하고 배웠던 것들은 도대체가 전혀 쓸모를 찾지 못하고 오탈자를 찾아내는 작업만 계속된 탓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공부를 했던 것인지, 중학생도 할 수 있을 법한 일을 하기 위함이었는지...
6개월 뒤 해가 넘어가자 인사발령 시즌이 도래했다. 경기남부의 한 지역센터에서 근무하던 나는 뜬금없이 경기북부, 북한에 가까운 지역에 배치가 되었다. 그때 진심으로 퇴사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명확한 신분과 수입 없이 나를 받아주는 곳을 찾아 헤매는 불안감을 또 겪고 싶지 않았기에 우선 스테이하기로 했다. 본가에서 출퇴근 할 수 없는 거리였기 때문에 나는 급하게 회사 근처로 원룸을 얻었다. 보증금 4천만원으로 저렴하다면 저렴한 전세였지만 뭐든지 싼 덴 이유가 있는 법. 그래도 그곳에서 1년 가까이 지내면서 새로운 지역과 동료들에게 적응하고 정을 붙이고 살았다.
하지만 일에는 영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콜센터가 있었으나 내용이 조금만 복잡해진다 싶으면 콜을 담당에게 바로 넘겨버렸기 때문에 민원을 걸러주는 역할은 거의 수행하지 못했다. 하루종일 울리는 벨소리에 나의 업무나 행정을 처리할 수 없어 6시, 공식적인 업무 종료 후 야근을 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어쩔 땐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환청을 듣기도 했다.
그 와중에 지역센터가 이사를 하게 되어, 원상복구 공사를 진행하고 이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돈을 맡겨둔 것처럼 구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건 가이드가 어느정도 있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각오가 서있었다. 그러나 쌩뚱맞은 업무를 맡으면서 관련된 교육이나 인수인계는 전혀 받을 수 없었고 밤 10시가 넘도록 회사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건축, 소방 관련 법규부터 부동산과 용역 계약까지 혼자 알아나가야 하는 과정이 힘겨웠다. (블랙기업은 무슨 교과서라도 있는건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결과물을 기대하는 건 만국공통이었다)
사실 그때에는 그런 업무적인 측면보다도 예산도 남아있는데 굳이 행정력을 소요하며 별다른 차이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한다는 무의미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다만 이 부분은 수직적인 체계, 페이퍼워크와 관례가 중요한 공공기관을 다니다보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타이고, ‘자아실현은 원래 퇴근 후에 하는 것이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도 밥벌이가 된다면 그것대로의 의의가 있다!’는 나름의 정신승리랄지 자기합리화로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걸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있었다 해도 경험이 부족한 그때의 나로서는 받아들일 준비도 안되어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낯선 지역에서 과중한 일과 무의미감에 시달리며 1년 정도를 버티다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