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그렇게 퇴사를 부르짖을 때에도 대게는 말버릇 혹은 한탄이라는 걸 다들 잘 알 것이다. 진짜 퇴사를 결심한, 혹은 앞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았기 때문에 오히려 말이 없다.
나는 환승이직을 염두에 두고 퇴근 후 짬짬히 입사지원을 꾸준히 했지만(심지어 입사동기들과 서로 채용공고를 공유하고, 필기시험장에서 만나면 야너두?하고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기도 했다) 이직처가 정해지지 않는 한 퇴사는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무모한 결정에 한 사건이 불씨를 당기게 된다.
선거철을 앞두고 특정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치권에서 확대를 약속한 공공사업 중에서는 우리 센터가 맡고 있는 사업도 있었다. 곧 예산소진으로 사업을 슬슬 종료하고 내년도 사업을 준비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던 차에, 갑자기 사업이 확대되며 기존의 5배가 넘는 예산이 배정되었고 이걸 당장 다음달부터 집행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내려왔다.
지금도 몰아치는 전화와 민원에 본연의 업무는 야근하면서 겨우겨우 해내고 있는데 인원충원이나 전문적인 콜센터같이 1차적인 방어막 없이 5배의 업무로드를 감당하란 말인가?
팀장님이 어두운 얼굴로 긴급소집한 전체회의에서 나는 퇴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같이 일하던 계약직 동료들도 못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분들은 계약종료를 앞두고 있었기에 사업확대가 더더욱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두달 정도의 기간만 겹쳤기 때문에 잠깐 힘들고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 센터에 남아서 이것들을 소화해 내야 하는 건 나를 포함한 정규직 5명 뿐이었고, 심지어 그 사업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놀랍도록 당연한 수순처럼, 고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나는 퇴사를 결심했고 부모님한테 전화를 걸어 알렸다. 내 고집은 못꺾는다는 걸 이미 아시는지 부모님은 그저 향후를 걱정하는 말만 전달하셨다. 그 때 못해먹겠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미 퇴사를 결심했으니까 더 토를 달지는 않겠지만, 다음에는 그런 일이 있으면 싸워도 보고 드러누워도 봐라. 못하겠다는 말을 할 줄 알아야 너를 소진하지 않으면서 조직에서 오래 갈 수 있다.”
요즘같이 구직자에게 냉랭한 때, 경력직으로 이직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인 3년도 채우지 않고 어딜 냉큼 퇴사하냐는 소리를 각오하고 있던 나에게 부모님의 조언들이 참 고맙고 도움이 되었다.
안된다, 못한다, 내 일 아니다. 이런 말들도 입밖으로 꺼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이 때 처음 들었다. 미디어 속 희화화된 MZ들은 이런 말들을 잘 한다던데, 왜 내 주변에는 주는 일을 받아먹다 체하고 번아웃오고 건강을 해치는 친구들만 있는지.
다음날 나는 출근해서 팀장님에게 퇴사를 알렸고, 인사팀에게 연락하여 날짜를 확정했다. 남은 기간동안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남은 팀원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해놓고 가기로 했다. 덕분에 퇴사 당일까지 야근을 하고, 지문을 찍고, 나의 첫 정규 직장에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