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과 퇴사, 자유를 꿈꾸며 회사에 몸담은 회사원에게

4. 퇴사 후 강릉, 반년의 행복한 생활

by 밀밀

당장 이직처 없는 쌩퇴사를 갈기긴 갈겼는데. 이제 어떻게 한담?


신입치고는 나이가 좀 있긴 하지만, 공공기관은 보통 나이와 학벌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액면가를 잘 관리하면 된다(!)는 농담이 퍼져있을 정도.


그러나 소액이나마 모은 돈을 까먹으며 취업준비를 하기는 싫었고, 무엇보다 또 이대로 회사의 부품이 되어 몇 십년을 살아야 하는건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다행히 퇴사 후 짧게 계약직으로 일한 덕에 실업급여를 탈 수 있었다. 이 기간동안 취업준비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도 해보고 이걸로 수익화를 할 수 있는지 시도라도 해보기로 했다.


다만 이제 퇴사도 했으니, 굳이 연고가 없는 경기북부의 외딴 곳에 있을 필요도 없고 주거비도 아끼는 차원에서 집을 정리해야 할 문제가 남았다. 다행히 다음 세입자는 금방 구해졌다. 이사 날짜를 조정하고, 이제 본가로 들어가 다시 엄마아빠의 왕국에서 잠시 기생을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강릉에서 늦깎이 대학생 생활을 하던 친구가 방이 하나 남는데 자기랑 같이 지내지 않겠냐는 제안을 주었다. 방 2개짜리 전세집, 바다까지는 차로 10분 거리의 작은 아파트였다.


머릿속으로 계산이 팽팽 돌아갔다.

본가가기) 서른살이 다 된 나이에 부모님네 백수로 얹혀 살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대신에 지출을 최소화하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것.

강릉살이) 친구와 함께 살면서 자유를 누리고, 한적한 곳에서 바다를 자주 볼 수 있는 점, 반면에 월세나 생활비 등 감당해야 할 비용이 훨씬 많은 점.


실업급여를 받고 있지 않았더라면 후자는 선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강릉고용센터도 친구의 아파트에서 멀지 않았고, 강릉으로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담당기관도 변경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확인이 되니 결심은 쉬워졌다. 언제 또 바다를 이렇게 자주 볼 수 있는데서 살아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삿짐을 본가가 아닌 강릉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강릉에서 지내며 나는 취업준비를 놓지 않으면서 인스타툰, 만화수업 등 그림 위주로 평소에 하고 싶던 일들을 본격적으로 시도해보았다.

수익화? 돈만 쓰고 나왔지만 (비즈니스 계정 광고비 등) 후회는 없다. 이것저것 직접 부딪혀 본 만큼 난 뭘 할 수 있고 어떤 건 안되는 성향이라는 것도 알고, 취업해서 일하는 것보다 이게 더 신경쓸 것도 많고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걸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걸 통해 먹고 살 수 있다면-그럴 재능이 나에게 있다면-그것 역시 다른 형태의 축복이겠지만.


내가 지냈던 강릉의 도시는 번화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노인인구의 비중이 높은 곳이었다. 그만큼 한적하고 조용했으며 하천이며 바다며 어디든 물과 자연이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물친화적인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거주지였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마트에서 조금씩 자주 장을 보고 식재료를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물론 이것도 백수여서 시간이 되기 때문에 가능했다. 직장인 1인 가구? 그냥 사먹읍시다.)

40분 거리의 근처 대형마트까지 하천을 따라 걸으면서, 채소 조금과 두부, 딸기를 품에 안고 ‘나 지금 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누군지 세상이 어떤지 알 수 없어 막연하게 불안하기만 했던 대학생 시절과, 취업준비와 진로에 대한 방황으로 고민이 깊었던 사회초년생 시절을 거쳐 30대 백수가 되고 나서야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강릉 바다를 보며 책읽고 그림그리던 행복한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