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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Jan 01. 2024

강가에서


물 머금은 땅이 일렁인다.

     

겨울비가 드세게 내린 후, 강물 옆 단단하던 땅은 질퍽한 진흙이 되어버렸다. 발에 묻히기 싫어 조심조심 걸어가던 찰나, 한 무리의 새들이 부지런히 표면 아래를 쪼아먹고 있었다. 중요한 뭔가를 찾는 듯이. 괴이하면서도 생존의 방식일 그 광경을 멍하니 목도하였다. 다시 강물로 시선을 돌린다. 불어난 물에 여린 풀들은 휩쓸려갔고 앙상한 갈대만이 가냘픈 손인사를 건네온다. 돌다리 틈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표 반층만 올라서면 복잡한 도시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적막한 자연스러움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언젠가 내일이 마냥 불안하던 시절에도 이곳을 걸어갔다. 상념과 초조함이 온통 내 세상이던 그날에도 물은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을씨년스럽던 계절이 지난 뒤엔, 땅은 싹을 틔웠고 풀이 숲을 이뤘고 터전이 만들어졌다. 변덕스레 흔들리던 것은 나 뿐이었다. 강물이 장마에 넘쳐흐르고, 추위에 얼어붙고, 다시 녹아 흐르기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덩치가 커졌고, 다른 꿈을 꾸었고, 또 다른 내일을 불안해하게 되었다. 문득 더는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곳의 계절처럼 자연스레 익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언젠가 이 길을 다시 걷게 되는 날, 이 진득한 강가의 규칙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저 새들처럼 중요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다리 밑에 가까워지자 강물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마음 속 잡음들은 이내 묻히고 만다. 강물을 거슬러, 돌아오지 않을 이 날들을 넘어,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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