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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Apr 23. 2024

어느 봄날


주말만 되면 잠이 길어진다. 정오를 넘어 일몰에 가까워진 시간에 눈을 떴다. 아까운 하루를 이렇게 또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우울하던 찰나, 무작정 집을 나서기로 했다.


가까운 곳을 갈까, 먼 곳을 갈까 고민하다 집 근처 안양천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벚꽃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봄이었다. 휑하던 천변이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들뜬 표정을 한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의 행복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 이런 나날을 기다렸던 거였다. 온도와 풍경이 빚어내는 찰나의 기적을, 그리고 순간에 대한 감사함을. 쏟아질 듯 흐드러진 이 장관을 볼 수 있음에 좋았고, 감격했고, 행복했다. 벚꽃은 남쪽을 향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렸고 모든 것이 꿈을 꾸는 듯 느껴졌다.


이런 날엔 별수 없이 걸어야 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걷고, 또 걷고, 다리를 건너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한강을 향해서 걸었다. 얼마를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을 살 수 있어 기뻤다. 해가 서서히 저물고 하늘빛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동안 한강을 너머 양화대교 인근까지 걸어갔다. 합정에서 라멘을 먹으려던 계획은 접고, 당산에 있는 한 베트남 음식점으로 향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정말 완벽한 곳. 음식도, 분위기도 만족스러웠다.


집으로 가는 길, 어딘가 아쉬워 다시 안양천으로 향했다. 밤에 보는 벚꽃은 또 다를 수 있으니까. 낮의 열기는 가시고 조금은 한적해진 거리에서 비로소 마음 놓고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풍경들, 마음속에 영원한 계절로 깊게 자리 잡아갈 것이다. 


이 봄날,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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