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낯선 세상을 향한 중독은 끝내 그 무게를 무디게만 만들었다. 내 시력이 낮아지는 이유가 고된 노동 때문인줄만 알았는데, 어쩌면 세상과 욕망을 향한 탐닉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모처럼의 연휴였으나 예년보다는 짧은 연휴였다. 이런 설도 나름 설이라고 불러야 하겠으나 별다른 이벤트나 가족 행사 없이 흘려보내는 명절은 또 새삼 오랜만이었다. 침대와 거실을 번갈아가며 널브러졌고, 곧잘 단잠에 빠진 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받아먹고는 또 뒹구는 것이 일상이었다.
계절은 분명 봄을 향해 가는 것만 같았다가도 이따금 추위가 몰아쳤다. 모처럼 찾은 따뜻한 쇼핑몰 안에선 그렇게도 땀을 흘렸다. 온몸에서 시큰한 냄새가 나도록. 뻘뻘거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건물 밖을 나설 때의 날카로운 냉기가 오래간 기억에 남았다.
본가 근처의 카페에 들어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작은 화면 속의 세상과 사람들을 탐닉하다, 창가를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고 만다. 괜히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이 덜컥 들다가도 곧 눈을 내리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면에 골몰한다.
새로 자른 머리가 이상하지는 않지만 미용실을 바꿔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 대부분의 사무직은 3년 내로 대체될 거라는 말, 2-0으로 앞서가다 후반 추가 시간 2골을 내주며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어떤 축구 경기, 더이상 국위선양이니 금맥이니 하는 말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잃은 올림픽 경기.
많은 것을 보고도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는 사실이 못내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골방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당신은 여행을 다녀왔으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였고 간밤에 술과 춤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나도 달라져있을 나를 상상해본다. 당신들과 함께 어색하게 서있는 내가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볼 수가 없다
아무래도 시력이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