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겨울

by 김민영

남녘으로 향하는 동안 눈이 참 많이 내려왔다 계절의 끝물이었음에도 온 산과 들이 하얗게 덮여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왜 그렇게도 추웠던 걸까 봄이 지척이었음에도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은 늦은 밤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얼렁뚱땅 전화를 받으려던 심산이었으나 마지못해 받은 전화를 듣고 마음이 철렁 주저 앉았다


간밤에 날이 추운 탓이었을까. 캠핑에 갔다 텐트 안을 따뜻하게 하려다 벌어진 일이라 들었다. 관련한 소식이 포털 뉴스 1면을 가득 메웠을 때 실은 어렴풋이 읽고 넘겨버렸다. 나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날이 밝은 뒤 두 분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셨고, 그것은 어느 활자 속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동안 옷걸이 깊숙히 숨어있던 양복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잡다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메일 몇통과 장표 몇장을 만든 뒤 사무실을 나선다.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조차 고객의 끊임없는 연락이 못내 지겹게 느껴졌다. 그 어떤 사정 설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잠기고 싶었다.


눈보라를 뚫고 한참을 달리자 드디어 남쪽 고장에 다다랐다. 터미널 앞은 숨죽이듯 고요하였다. 서울보다 기온이 찰 줄 몰랐는데, 예상치 못한 추위에 서둘러 카페로 몸을 피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부모님을 만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다정히 웃고 있는 둘이 보인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계단을 오르자 사뭇 다른 분위기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쏟아진다. 여전히 다정한 당신들의 사진 앞에서 공손히 두번 절을 하고 인사를 건넨다. 생과 사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슬퍼하는 이들도 모두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


부검을 마치고 느지막히 도착한 당신들은, 이윽고 깨끗이 염을 한 뒤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살아 생전 사람이 죽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탄식보다 눈물이 터져나왔다.


사람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다. 다정한 사람들이 늘 곁에 머물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의 욕심과 치기어림 서투름 질투 모두 용서할 수 있으니 그저 그 모습 그대로만.


아무렇지 않은 듯 육개장 몇그릇을 먹고, 옛 일들을 떠올리며 한참 웃다가 다시 울고. 그렇게 따스한 아침은 얄궂은 밤으로 향한다. 이토록 따뜻할 것이라면 그날밤은 왜 그토록 싸늘했는가. 노을의 고을에 석양이 자취를 감춘 뒤에 비로소 떠날 채비를 한다. 온 마음을 다한 인사를 건네며


식장을 나서 역으로 향한다. 달려가는 택시 안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담담해질 줄 알았는데, 눈물은 그칠 줄을 모른다.


어제는 오늘로 오늘은 내일로, 얼마나 많은 인연이 또 스쳤다 떠나갈 것인가. 떠나간 그들을 향해 누군가 이런 말을 건넸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에 접어든 것이라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그러나 그 길위를 걸어가는 당신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별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 먼 곳에서 당신들의 발걸음에 맞춰 나도 천천히 걸어가보는 것이다.


영영 작별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그림자가 이 길 위에도 드리우면

나는 비로소 늘 그랬듯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넬 것이다


남겨진 것을 두고 다정하게 떠나간 당신들에게.

두고 간 것은 모두 잊고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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