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 Mania]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가을로 접어드는 환절기는 이불을 덮어야 할지 말지 애매한 계절이다. 여름에 극성을 부리던 모기가 여전히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밤이면 주변에 앵앵거리고 있었다. 20대의 젊고 신선한 피는 모기들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눈앞에 보이는 긴장된 군사적 대치 상황이 없었던, 도시 인근 지역 공군 기지의 병사에게는 모기가 매일 밤 싸워 이겨야 하는 현실적인 주적이었다.
지질한 병역 비리 덕분으로 나의 군생활은 황량했던 군부 독재 시대의 군복무 상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편했다고 자평하고 싶다. '지질한' 병역 비리라 함은, 회복 가능한 짝눈이거나, 후유증이 없는 피부 질환 등의 명목으로 완전한 병역 면제를 받지 못하고, 단 하루의 특혜도 없이 만땅으로 복무 기간을 채우면서 기껏 육체적으로 조금 덜 피곤한 보직을 받는 것을 말한다. 사실, 군대 안에서 보면 제한된 선택 중에서 제일 잘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군대 밖에서 보면 이거나 저거나 무슨 차이가 있나 싶은 한심한 선택의 문제이다. 나는 지질한 병역 비리의 덕분으로 북적거리는 내무반의 단체 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서 외롭게 잠을 잘 수 있는 특혜를 얻었다.
'병역 비리'라는 말에 민감하신 분은 추적해 보아야 할 국가적인 비리 사건은 아닌가 궁금하실 것 같은데, 겨우 혼자서 잠을 잘 수 있는 (엄청난) 보직에 배정하는 힘(권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을 발휘하신 (고마운)분들은 안타깝게 모두 세상을 떠나셨고, 확인은 해 보지 않았지만 30년이 훨씬 넘었으니 공소시효도 지났을 것이다. 대학 1, 2학년 때 교련 4학점을 억지로 따고(남학생은 교양 필수 과목이라 교련 학점이 없으면 졸업을 못한다), 전두환 정권이 정신 개조시킨다고 대학생들을 병영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육군 훈련소에서 1주일 뺑뺑이 돌리고, 전방 입소라고 휴전선 앞에 데려다 놓고 1주일 동안 괴롭히는 수모를 견딘 끝에 눈물 나게 3개월 단축 혜택을 받아서, 35개월 복무 기간에 32개월 만기 제대하였으니 뭐 할 만큼 했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하면 이렇게 말이 길어진다. 아니, 할 말이 많다.
다시 공군 기지로 돌아 가자. 이불을 덮기도 덮지 않기도 애매한 어느 초가을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다. 나무로 만든 1인용 침대가 나의 잠자리였다. 현재 여러분들의 집에 버티고 있는 고상하고 럭셔리한 침대를 상상하지 마시라. 목수일을 하던 방위병을 차출하여 뚝딱뚝딱 만든 간이침대였다. 바닥으로부터 약 30센티 정도 올라와 있었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놓고 겨울에도 덮을 수 있는 두껍고 넉넉한 넓이의 사철용 솜이불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구분 없이 올려져 있었다. 애초에 호환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고려하지 않은 수제 싱글 침대 나무 프레임 위에, 법을 바꾸어야만 크기 변경이 가능한 군용 더블 사이즈의 이불이 올려져 있었기 때문에, 자다 보면 이불이 바닥에 반쯤 내려와 있었다. 밤마다 모기는 앵앵거리고 있었고, 4,500원 병장 월급을 털어서 구입한 초록색 나선형 모기향을 매일 밤 하나씩 피워 놓고 모기의 공습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날은 모기향을 피우려고 보니 피우다 만 마지막 반 토막만이 남아 있었다. 새로 구입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긴긴밤에 청춘의 피를 지키려면 온전한 한 개의 모기향이 필요한데 난감했다. 모기향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었기에 모기향은 피우되 가능한 침대로부터 멀찍이 놓아두었다. 반 밖에 없으니 오늘은 가까이 오는 녀석들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반토막 모기향을 발아래 침대 쪽으로 바짝 붙여 놓았다.
꿈을 꾸었다. 휴가를 갔다. 군바리의 꿈은 참으로 소박하다. 모처럼 우리 집 안 방에 누웠다. 언제나처럼 아랫목은 뜨끈뜨끈했다. 다리를 통해서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피로가 확 풀렸다. 아~ 좋다. 너무 좋다. 따뜻한 우리 집 안방에 누우니 세상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꿈속에서 꿈꾸고 있는 사실이 꿈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지만 꿈에서 현실을 자각하는 상태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을 체험했다. 어떤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갑자기 자기 뺨을 때려서 놀라서 벌떡 일어나니 불이 나서 집이 훨훨 타고 있어서 간신히 몸만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증언하는 그 순간이다. 종교인들은 이런 경험을 신의 계시로 간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상님의 도움이든, 신의 계시든, 또 다른 자아의 각성이든, 나는 꿈속에서 '나는 휴가를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발이 따뜻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모기향을 침대 가까이에 두고 잔 것이 화근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게 살짝 걸쳤던 이불 끝이 침대를 넘쳐흘러 바닥으로 떨어졌고, 가까이에 두었던 모기향을 감싸고 솜이불이 천천히 타고 있었다. 이미 한 뼘 정도 타고 들어 온 상태였다. 놀라서 이불을 감싸 쥐고 긴 복도를 따라 화장실로 달렸을 때, 담뱃불처럼 소리 없이 피어나고 있던 솜이불이 바람을 받아 어둡고 침침한 군대 막사에 횃불처럼 타 올랐다. 올림픽 성화 봉송처럼.
꿈에서도 꿈을 허황되지 않게 하고, 꿈의 논리를 다듬고, 꿈을 현실에 연결하는 장치가 있나 보다. '휴가'라는 설정에 나의 꿈이 정문 위병소처럼 나의 꿈을 검열하여 나의 탈영을 놓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보고된 화재도 없었고, 한 명의 병사가 모기향 때문에 사망하였다는 어이없는 기록도 없다. 따라서, 불탄 이불은 어떻게 처리하였으며, 어디에다 감추어 두고 전역하였으며, 어떻게 새로운 이불로 교체하였는지는 묻지 마라. 개인적인 군사 기밀이다. 더 알려고 하면 다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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