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하는데 제대로 될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벽 이른 시간부터 뒤척이게 되었다. 일어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뒤척이고 있으니,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도 못하고, 수면의 질도 낮고, 수면 시간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틈만 나면 존다. 식사 후에 소파에서도,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이 것이 어떤 질병의 증상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나의 스승께 물었다. 구글 선생께서 답을 주셨다. 나이가 들면 수면과 각성을 담당하며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뇌 시상하부가 노화되면서 생기는 경향이란다. 훌륭하고 뛰어난 인간의 특성은 안 나타나면서 꼭 이런 노화 현상은 어김없이 따라가는지 나는 불만이다.
새벽이면, 비몽사몽 꿈인지 깨어서 생각한 것인지 모르는 상황도 있고, 프로이트 선생의 예상대로 무의식 속에 있던 저 옛날이야기를 소환해서 재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응어리들이 튀어나와서 화가 나기도 하고, 사소한 걱정거리가 꼬물꼬물 올라와서 걱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인간의 생각을 관장한다는 전전두엽과 해마와 편도체의 공세에 시달리다가 창 밖으로 새벽이 올라올 때쯤이면, 결국 새벽잠을 포기하고 '에이'하면서 일어난다.
어김없이 오늘 아침도 뒤척이고 있었다. 2번 메뉴, 무의식적으로 저장된 과거 상황 재방송하기를 실행하고 있었다. 장면이 수십 배속으로 빠르게 넘어가기도 하고, 운동 경기의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재생되기도 한다. 어제저녁의 한 장면이 천천히 흘러갔다. 저녁을 먹고, 우리 부부의 주말 애청 프로인 '미운 우리 새끼'를 본 뒤에 그대로 양쪽 소파에 몸을 늘어뜨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미국 사람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어. 아마,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어. 자기가 자라면서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있었으면 가르쳐 주었을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들을 배우지 못한 거지. 그래서, 아버지가 없이 자라는 아이나 청년들이 그때쯤이면 알아야 할 것들을 생각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설명하듯이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는 거지. 예를 들면, 넥타이 매는 법이나, 전구를 갈거나, 사소한 집안일을 돌보는 법 말이야."
아내가 덧붙였다.
"내가 한 번씩 보는 유튜브도 엄마와 딸이 같이 요리를 하는 영상인데, 엄마가 딸에게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도 간혹 우리 엄마가 이야기해 주던 것이 생각이 나고 그러더라."
나는 공감했다.
"기술이나 지식을 책이나 영상을 통해서 배울 수는 있는데, 사소한 일상생활은 성장하면서 엄마 아빠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참 어렵겠다 그지."
우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모님 아래에서 평온하게 성장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냥 평범하게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감사했다.
"우리 애들은 기본은 알 수 있으려나?"
살면서 아들 딸에게 특별히 알려 준 것이 없는 것 같은 내가 물었다.
"그래도, 요즘 음식 만들어 먹는 것 보면 잘하잖아."
아내의 대답이 위안이 되었다. 아들 딸이 각자 독립해서 살면서, 스스로 만들어 먹은 음식 사진을 공유하는데 제법이다. 우리가 가르쳐 준 것인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들 딸이 슬기롭게 스스로 터득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요리 잘하는 엄마를 옆에서 보고, 그 맛을 기억하고 있어서 잘할 수 있는 거야."
적절한 순간에 숟가락을 올리는 눈치 빠른 남편의 멘트 되시겠다. 뭐,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장면이 돌다가 잠시 멈추고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통을 뛰쳐나가면서 '유레카'라고 부르는 순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상큼한 아이디어였다. 자고 있던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부인이 요리하는 과정을 담아서 브런치에 올리는 것은 어떨까? 요리책에 나오는 폼나고 격식을 갖춘 요리 말고 냉장고에 있는 그대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한 끼를 만들어내는 그런 과정을 담으면 될 것 같은데. 부엌에서 엄마가 딸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잠이 덜 깬 아내가 대꾸했다.
"올릴 만한 요리가 아니야."
집요하게 내가 설명했다.
"요리책에 올릴 요리를 올리자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늘 하듯이 '오늘 뭐 먹지?' 하면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있는 그대로 올리는 거야. 부인은 그냥 요리만 해. 내가 사진 찍고 글 정리해서 올릴게."
아내는 말없이 돌아 누웠다. 새벽은 밝아 오는데 내 마음은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