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바람 바람 ]
1.
국민 가수가 노래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국민 가수는 들었을까?
언젠가는 듣고 싶었던
바람의 노래를
2.
바람은 늘 불었다. 물론, 불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만 바람을 생각하였으므로 바람이 불지 않았을 때는 없었다. 그래서, 바람은 늘 불었다. 바람이 늘 불었기 때문에 바람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늘 불었기 때문에 바람에 관심이 없었다.
3.
바람은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였다. 창밖에서 뒤뚱 뒤뚱 걷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때로는 지팡이를 휘둘러 난장판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다음 장면에서 세상은 깨끗이 정돈되었고 스토리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화면 위에 그려 놓은 자막으로 바람은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4.
세상의 현란한 색상과 다양한 소리에 매혹된 나는 흑백의 무성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폭죽처럼 터지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일상의 이벤트와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나의 귓전을 때리며 떠다니는 음파와 전파의 홍수 속을 부유하며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원더풀 라이프! 판 똬스틱! 나는 선언했다. '내가 세상이다!'
5.
창문을 닫고 있으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단열과 효율의 강박 속에서 어느새 나의 창은 이중창이 되고 삼중창이 되었다. 그래서 내 인생은 바람이 한 점이라도 새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밖에서도 막고, 안에서도 막고, 혹시나 싶어 테두리는 거품을 쏘아 막았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람이 노래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6.
오늘은 창문을 열고 싶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늘만 바람이 부나?
바람이 늘 불고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7.
오늘은 창밖에 나갈 용기를 내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바람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어디 보자 우리 딸 청이가 맞는지?"
머리카락, 얼굴, 손, 옷소매, 바짓가랑이
바람은 떨리는 손으로 나를 더듬었다.
8.
바람이 울었다.
승천하지 못한 천 개의 영혼들이 하소연을 하듯이
바람이 휘파람을 불었다.
마을 아이들을 이끌고 사라진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9.
국민 가수가 노래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10.
나는 국민 가수에게
언젠가는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바람의 노래를
들었노라.
이제는
바람의 노래를
듣게 되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