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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Apr 26. 2020

니가 가라 대항해 시대

세상의 끝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세상의 끝에서


고대인들은 지구가 편편한 원반과 같으며, 하늘은 구리로 큰 종과 같은 모양으로 육지를 덮고 있으며, 해는 동쪽 바다에서 올라와 서쪽 바다로 가라앉으며, 그 너머에 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있다고 믿고 살았다. 그 후로도 쭉 오래동안.



위 지도는 첨단 과학을 이용하여 위성에서 찍은 또렷한 지구 사진들로 이미 오염된 우리의 상상력을 설득하고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그래서 편편한 지구의 모양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낸 그림들을 살펴보자면, (고대 지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아닐 수 있다. 다만, 지리상의 발견 이전의 유럽인들이 느꼈을 세상의 끝에 대한 공포감에 공감을 하자는 수준으로 이해해 주시길.)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양은 위 그림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세상의 끝에 대한 심리적인 공포감은 아래 그림 이상으로 과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축적된 정보와 학습으로 고대인들에 비해 많이 똑똑해졌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지식을 고대인의 관점과 혼합하여 다시 그려내면 이 정도가 되겠다.



엄마 말 잘 들어


하여튼, 바다 너머 저 쪽이 세상의 끝이다. 저 끝으로 가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저 너머로 가면 절대로 못 돌아온다. 포르투갈 바닷가 사람들도 절대불변의 진실로 믿고 바다 너머를 두려워하며 가까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긴 세월을 살았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폭풍우에 휩쓸려 저 쪽 바다 너머로 떠밀려 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는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바다에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아들아, 너는 절대로 저 너머로 가면 안 된다. 알았지?' 아들을 혼내고 다독였을 것입니다. 죽습니다. 저 너머로 가면.


아마 대여섯 살쯤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학교에 갈 나이는 아니었고, 같이 놀아 줄 형들이 모두 학교에 간 낮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께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강에 빨래를 하러 갈 때 어쩔 수 없이 나를 데리고 가곤 했습니다. 빨래를 하기 좋은 굵은 자갈이 모여진 부분과 가까이에 완만한 경사를 가진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진 제법 넓었던 강으로 기억합니다. 강이 건너편 산 절벽을 끼고돌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 갈수록 점점 깊어졌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깊은 곳에서 수영을 하다가 죽었다는 오래된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놀기가 좋은 모래사장에 팬티만 입혀서 나를 남겨 놓고 가면서 어머니는 항상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절대로 저 쪽으로 가면 안 된다. 알았지?" 나의 가슴 젖꼭지 부분에 손을 가로로 대며 "여기 위로 물이 오면 죽는다"는 무섭고 중요한 지시를 남기며 빨래터로 총총이 가셨습니다.


강가에서 혼자서 모래성을 만들며 놀다가 지루해지면 강 저편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은 짙은 물빛의 몇 미터 앞 강 저편을 잔뜩 겁에 질려서 쳐다보곤 했습니다. 대부분은 다시 눈을 돌려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고 부수기를 반복하였지만, 때로는 엄청난 용기를 내어 강으로 걸어 들어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천천히 강 쪽으로 걸어 들어갔고, 물이 배꼽을 지나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이때쯤 타협하고 그날의 모험을 중단합니다. '오늘의 모험은 여기까지.' 제정신이 아닌 어떤 날들은 죽음을 건 모험을 단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근거 없이 용기백배하였던 어느 날은 배꼽보다 더 깊이 시도를 하였고, 강물이 가슴에 차오르고 '죽는다'는 젖꼭지 부분에 도달할 때쯤이면 심장이 요동치고 나의 죽음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듯한 긴장감과 흥분으로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극도로 긴장하고 강물이 젖꼭지에 도달하는 순간 황급히 뒤돌아서 뛰어나왔습니다. 그 후에 몇 번 더 목숨을 건 위험한 시도, 즉, 젖꼭지에 물이 닿을 때까지 강에 들어가 보는 모험을 감행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목숨을 건 시도에 대해서 어머니께는 영원한 비밀입니다. 간이 콩알만 한 나는 덕분에 아직까지 안전하게 잘 살아 있습니다.



하물며, 세상의 끝이라는 저 바다 너머는 절대로 안 갑니다. 착한 아들이라서. 그리고, 죽을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소인배라서. 그래서, 소위 대항해시대를 열었다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무모함을 절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지중해는 세상의 중심이다


고대 유럽 문명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성장해 왔습니다. 지중해는 지금의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의 아주 좁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막힌 육지로 둘러싸인 잔잔한 바다입니다.



잔잔한 바다인 지중해를 오가는 배와 최대한 육지에 근접하여 바다로 이동하였던 그 당시의 배는 선원들이 노를 저어서 가는 크기가 작은 형태였습니다. 파도도 잔잔하고 이동 거리도 짧았기 때문에 특별히 크고 튼튼한 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노를 저어서 가는 작은 배로는 육지로부터 크게 벗어나기가 어려웠고, 지중해를 벗어나서 대서양의 넓은 바다로 나가 볼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저 너머에 죽음의 땅끝이 있기 때문에 나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적응하고 살았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서, 치고받고, 지지고 볶으면서.


형씨, 조용히 삽시다 제발


아, 그런데 살다보면 어느 집단이든 꼭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피곤하게. 그냥 있는 대로 먹고살면 될 텐데 말입니다. 포르투갈이 딱 엉뚱한 생각을 하기가 좋은 위치입니다. 주어진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장벽을 두려워하면서 외면하고 살든가. 아니면, 저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궁금해 미치거나.



그 거친 바다 끝에 서서, 세상의 상식을 거부하고,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죽기로 각오함으로 이겨낸,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위대한 실천의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너도 같이 갈래?'라고 물었다면, '니만 가라. 내 끌어들이지 말고'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주어진대로 찌그러져 있기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그 인간들에 대해서 애써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대서양의 석양을 바라보며 세상의 끝 Sagres의 절벽에서


어느 날 대서양의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나에게 바람이 귀에 속삭였습니다. 니도 갈래 대항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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