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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Jun 16. 2021

반려동물도 환생을 할까요?

글쓰기를 조금만 배운 사람들이라면 "반려동물도 환생을 할까요?"라는 제목이 얼마나 실패한 제목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무릇 제목이 의문문으로 쓰였다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니까 말이다. 내가 글쓴이가 아니었다면 "사람의 환생도 국가마다 종교마다 일치하지 않은데, 증언이나 간증도 들을 수 없는 동물들의 환생을 무슨 수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야?"라고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키우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환대받을지도 모른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고, 건강한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하고, 조건 없는 사랑(간식은 조건이 아니라 세금이라 생각하자)이 가능하다는 걸 알려준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반려동물이 환생을 한다면 분명 행복을 맘껏 누릴 생을 살테니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의 환상 같은 걸지도 모르지만 전생에 착하게 산 존재가 불행을 떠안은 채 다시 태어나게 되는 그런 인기 없을 종교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동물의 자의식이 있다 없다, 사람이 동물로 환생할 수 있다 없다, 사람으로 환생하는 것이 과연 정말 행복한 것인가 등등 조건과 가정에 따라 이야기는 산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살았던 반려동물이 환생을 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하자. 시작지점에 서면 우리는 한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반려동물이 환생할 때 나와 함께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면? 아니면 반드시 잊어야만 한다면?


내가 잘해주지 못했던 기억은 잊었으면, 행복했던 기억만 남았으면, 날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했으면, 다시 만났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너는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널 알아볼 수 있다면... 등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쉽사리 택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보고 싶기도 하지만 너무 기다리지는 않았으면 하니까. 두 가지 작품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는지 알아보자.


1. A Dog's Purpose(베일리 어게인)

PHOTO : UNIVERSAL STUDIOS

<A Dog's Purpose>는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2017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는 중에 적어도 한 번은 울게되는 그런 영화다. 물론 장르는 코미디고 해피엔딩이지만 말이다. 원작 소설에서 작가는 아내가 키우던 반려견을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다 강아지들이 환생을 통해서 삶의 목적을 찾아간는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 모두 강아지 베일리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자신의 삶의 목적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궁극적 자아 찾는 견생 이야기이다.


영화 속 베일리는 4번 죽는데, 속편으로 나온 <A Dog's Journey>에서 죽은 것과 합치면 9번 죽게 된다. 주인공이 죽는 영화치고 베스트 기록이 아닐까 싶다. 베일리는 처음엔 떠돌이개로 태어났다. 엄마가 있고 형제들이 있는 즐거운 강아지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만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어쩌면 삶엔 목적이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는 찰라 동물통제관에게 포획됨에 따라 첫 번째 환생을 경험한다.


그런데 환생을 하면서 과거의 기억과 질문을 그대로 안고 태어나면서 영화는 철학하는 강아지 베일리를 탄생시킨다. 인간도 기억을 갖고 몇 번이고 환생한다면 철학자가 될지 모른다. 그것도 인간은 실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에 목적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는 실존주의 철학을 하는. 목적 없이 살다보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업보처럼 느껴질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일리는 스스로 목적을 찾는 매우 진취적인 강아지다. 그 목적은 자신을 구해준 첫 번째 주인 '이든'을 '데리고'있는 것이다.


베일리는 이든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위로가 필요할 땐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된다. 이든은 베일리 덕분에 여자친구도 생기고 잘나가는 고등학교 풋볼팀 쿼터백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사고로 다리를 다치게 되고, 운동선수의 꿈을 접고 외할아버지의 농장으로 내려가 가업을 잇기 위해 농업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때 처음으로 베일리와 떨어지게 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만나 안락사 직전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나와 함께 살았던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과연 안락사를 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결정의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이 준비되는 날을 없을 거라는 것이다. 1년이 364일이 되더라도 맞이하고 싶지 않은 날일테니 말이다.


베일리는 여러 번 환생을 하면서 다양한 삶을 살게 되는데 경찰견도 되었다가, 다른 강아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천진난만한 강아지답게 처음에 정했던 삶의 목적을 잊어버린 듯 보인다. 하지만 유기견이 되었을 때 이든의 냄새를 다시 맡게 되면서 목적을기억해낸다.


"나의 첫번째 주인을 행복하게 하고 사랑하는 것"
웹툰 웅동스, by스노우캣

한 평생을 같이 산 반려동물이 계속 날 기억하고 찾아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가 너무 나쁜 주인은 아니었다는 의미일까? 아마도 너무 많이 혼자 기다리게하고,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놀아주지 못하고, 아픈 걸 미리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주인이었는데도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생각뿐일 것이다. 한편으론 기다리지 말고 환생해서 더 좋은 주인을 만나거나 되고 싶은 그 어떤 거라도 되어서 행복하게 살지 그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대답을 다음 작품에서 들을 수 있다.


2. 환생동물학교

웹툰 환생동물학교, by 엘렌 심

<환생동물학교>는 네이버에서 2017년 9월부터 약 1년간 연재된 환생 센터 동물 섹션에서 환생을 기다리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이다. 환생은 이 세계관에서 모든 생명이 거쳐가는 단계이며, 자신이 살아온 생을 지우고 다음 생에 되고 싶은 동물(인간을 포함하여)을 미리 학습하여 쉽게 적응하도록 돕는 시스템이 특징이다. 만약 본성을 지우지 못하고 환생할 경우 늑대나 원숭이들과 함께 살아가다 인간에게 발견되어 인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는 뉴스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AH-27반은 인간이 될 준비를 하는 강아지, 고양이, 하이에나, 고슴도치, 악어들이 나오는데 아이들은 모두 평생 한 주인과 함께했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을 지우지 못하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는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기억이라기엔 너무 깊고 추억이라기엔 너무 많은 지난 생의 모든 것이다.


철학을 배웠다는 삐딱한 시선으로, 사실은 본래 성격이 그러한, 보자면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과연 이 양극화가 심화된 세상에서 현명한 선택일지는 모르겠다. 상위 1%가 69억명이 보유한 재산보다 2배 많고, 피라미드가 건설된 이후 매일 1만달러(약 1100만원)씩 모아도 전세계 억만장자 5명이 보유한 평규 자산의 1/5에 불과하고, 1명이 1,695채(2017년 교통건설부 통계)의 집을 갖고 있는 세상이다. 물론 극단적인 비유이고 중산층에 태어나도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환경과 양극화는 계속 안 좋은 쪽으로 심화되고 있는게 현실이다.(역시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그럼에도 이 웹툰을 다 보고 나면 아이들이 왜 인간이 되려 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건 주인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삶도 사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받았던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사실은 그들이 먼저 조건 없는 사랑을 알려주었지만, 인간이 될 거라고 확신하기에 다소 이기적이지만 착한 반려동물들이 많이 환생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만약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이 다음 생에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할 줄 아는 건 귀여운 것 밖에 없고, 자기를 귀엽다고 해주는 사람만 좋아하고, 맛있는 간식만 편식하는 인간이 된다면 훤칠한 외모로 태어나 연예인이 되는 것 밖에 살아갈 길이 안 보인다. 그래서 환생동물학교가 필요한 건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매일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인간처럼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업보단 사회성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서로 다른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두려움 또는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까지 끝마치면 꼬리가 없어지고 인간이 될 준비가 끝난다. 아무리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해도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니까 이러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대부분이 자기 잘못으로 주인과 헤어졌다고 생각하거나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고 슬퍼하는 경우지만 말이다.


IN CASE OF FAREWELL BREAK GLASS
PHOTO : Bloemenbureau Holland

위 사진은 네덜란드 화훼위원회에서 만든 광고 중 일부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유리를 깨고 장미꽃을 가져가서 마음을 전하라는 내용의 광고다. 물론 실제 유리는 아니고 랩이라 주먹에서 피를 흘린 채로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 웹툰에서는 1화에서 등장하는데, 롤 클리너가 들어있고 겉면에 'IN CASE OF FURR BREAK GLASS'라고 적혀있다. 동물들이 등장할 거라는 예고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 장면인데 마지막에도 등장한다. AH-27반 아이들 모두 꼬리가 없어져 졸업하는 장면이다. 어쩌면 반려동물들이 인간이 될 준비를 끝마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이별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더 사랑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마법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연하겠지만 두 이야기 모두 반려동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사실 인간들의 해석일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이 환생을 통해서라도 삶의 목적을 이루고 더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경우 반려동물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짧다. 그렇기에 아픔을 견뎌야 하는 시간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세금(+간식)같은 건지도 모른다. 반려동물의 환생을 믿고 싶은 건 그 아픔의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반려동물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거라는 걸 말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작품을 보고나서 반려동물을 한번 더 안아주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글쓴이: 쌀밥

글쓰는 전업 백수. 현재 10월에 가족이 된 반려동물 시월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영화를 좋아하여 다수가 모르는 단편 영화를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음. 뛰어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무주택자이자 불로무소득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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