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자리
결핍은
가만히 있다고
저절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른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비어 있던 자리가 자연스럽게 메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결핍은 언제
채워져 가는 걸까.
결핍을 없애려 하지 않을 때
결핍을 느끼면
우리는 보통 서둘러 해결하려 한다.
채우거나,
덮거나,
없는 척 지나가려 한다.
그러나 결핍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은
그 자리를 문제 삼지 않을 때다.
“왜 아직도 이럴까”가 아니라
“아, 이 자리가 있구나”라고
인식되는 순간,
결핍은 더 이상
쫓아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된다.
결핍이 관계 안으로 들어올 때
많은 결핍은
혼자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결핍은 대부분
관계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족한 상태로 있어도,
정리되지 않은 말로 말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경험.
이 경험이 반복될 때
결핍의 자리는
조금씩 성질을 바꾼다.
미완성인 채로 머물 수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정리된 상태에서만
관계에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채워지는 순간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도,
답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함께 머물 수 있을 때 찾아온다.
그때 마음은
이렇게 배운다.
“아, 내가 이렇게 있어도 되는구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결핍은
무언가로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구조로 바뀔 때
채워져 간다.
애써 긍정하지 않아도 되고,
빨리 좋아지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자리를 없애려 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그곳에 머무는 것.
그때
결핍은 멈춰 있지 않고
천천히
채워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