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성이 나를 향할 때

기억의 소환

by 파도



깊은 밤,

거실에서였다.


엄마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순영아,

순영아."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평평했다.


'왜,

뭐가 불편해"


그녀는 책상 의자에서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그녀 안에는

아주 오래된 깊은 분노와 싸늘함이 있다.


그녀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갈등을 피하고 싶었고,

갈등이 불러올 불편한 감정도 견디기 싫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엄마의 분노를 닮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분노는 불 같았다.

이기적이었고,
어떤 강렬한 욕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같은 성의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 부모가 가진 힘과 자원을

자기 안으로 가져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이 싫었다.


날것 그대로의 강렬함이

견딜 수 없이 거칠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공격성을 철저히 억눌렀다.


밖으로 향하지 못한 그녀의 공격성은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 자신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날, 분석가는 말했다.


“당신의 공격성이

당신을 향해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의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분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윗배와 창자가 꼬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가슴과 위가 동시에 조여들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혼자였다.


방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이 가득했다.


몹시 불안했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생각은 닿지 못하는 곳에 있었고,
느낌만이 그녀를 끌고 갔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 생각이 스쳤다.


너무 낯설고

너무 무서워서


그녀는 서둘러 그 생각을 밀어냈다.


그녀의 파괴성은

세상을 향하지 못했다.


그 밤에

오랫동안


그녀 자신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그날은
그녀가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생생하게 보게 된 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두려움으로 가보자".


도망치지 않고,
이 생생한 감각을

그대로 담아낸 채로.


나중에야 그녀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몸의 몸부림 같은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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