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앞에서 시지프스를 생각하다
오늘 내 사유의 공간에 신화가 들어왔다.
인간이 궁금해서, 아니 어쩌면 내가 궁금해서 나는 대학원에서 심리를 전공했다.
대학원 수업 중 융 심리학을 듣던 어느 날 교수님이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전에도 나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책들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사고를 많이 쓰는 내게 신화는 어딘가 황당무계한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저 오래된 이야기 정도로 넘겨버렸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뭐랄까, 신화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신화 속에서 나는 내 깊은 곳의 욕구들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내 깊은 내면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수업에서 학우들의 눈빛은 유난히도 초롱거리고 깊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 시간 자기 안의 어디를 더듬으며 어떤 보석을 찾고 있었을까.
그때 나는 흠칫 깨달았다. 신화가 내가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인간 이해의 한 통로라는 것을.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진 맛’을 보았던 순간이었다.
오래전에 있었던 그 시간이 이렇게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아마 신화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신화를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우리의 내면을 만나고 싶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어느 날 미술관에서였다.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한 장면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시지프스.
한 인간이 굴러 떨어지는 돌을 끝없이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숨이 멎는 소리를 들었다. 호흡이 살짝 막히고 나도 모르게 잔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는 멈출 수 없는 고통을 보았다.
그 시기 나는 삶에 깊은 무력감과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의식을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마치 회색 시대를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살기는 사는데 내 발목이 계속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늪 외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그 암울하고 설명되지 않는 감각.
아마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발바닥이 어디에도 닿지 않는 느낌.
나는 그 그림에서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몹시 불편하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살고는 있지만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던 시절.
그때의 시지프스 신화는 내게 너무 가혹한 이야기였다.
나는 한때 사람마다 다른 쇠사슬을 목에 걸고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관계에 묶이고 누군가는 욕망에 묶이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묶인다.
나에게 그 쇠사슬은 끝이 없을 것 같은 삶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게 인생은 살고 싶은 장이라기보다 살아야만 하는 장에 가까웠다. 그래서 삶은 견디는 것이었다.
견딘다는 감각이 끝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것은 깊은 고통과 맞닿는다.
나는 오래도록 그 감각 속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주 평범한 진리가 내 가슴을 관통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끝이 있다. 누구나 아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 그 말은 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지나갔다.
아, 그렇구나...
나는 처음으로 용기가 생겼다.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였다.
예전의 나는 도전을 생각하면 항상 이런 생각이 따라왔다. 혹시 잘못되면? 그리고 그 잘못이 끝없이 계속된다면? 그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시지프스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숨이 막혔다. 이 저주는 끝이 없겠구나. 그것은 절망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다시 시지프스를 만났다.
이번에는 그가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신화 속에서는 그의 돌이 끝없이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이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것에 끝이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시지프스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끝이 없어 보일지라도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선택.
그 용기.
그리고 그 자신.
나는 지금도 가끔 그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만난다.
그래, 삶이 펼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삶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내 것이다.
어떻게 할래.
나는 그 순간마다 내가 선택한다.
아마 당분간 나는 인간의 내면 깊은 장소인 신화의 장에서 조금 더 서성거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