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초(Masaccio, 1401~1428)
중세 유럽의 회화는 신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도상적 도구였다. 인물들은 상징적 위계에 따라 배치되고, 배경은 금박으로 장식되었다. 깊이나 방향감은 필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영적 의미와 도덕적 교훈이었지, 그것이 어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 유럽의 도시들은 변화의 기운으로 들썩였다. 피렌체, 시에나, 베네치아와 같은 도시국가에서 상업과 금융이 발달하며 시민 계급이 성장했고, 그들은 이제 세속적인 세계와 인간의 감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더는 하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 신이 아닌 눈으로 바라본 현실이 회화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한 건축가와 화가가 있었다.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시점을 수학적으로 분석했고, 화가 마사초는 그 수학을 회화로 번역했다. 두 사람은 직접적인 협업보다는 피렌체라는 예술 도시 속에서 서로의 사고를 공유하고 창작에 반영하며 평행선을 그리듯 혁신을 이끌었다.
그들이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시각의 혁명이었다.
15세기 초 이탈리아, 회화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오랫동안 교회의 권위 아래 작동하던 중세의 시각 체계는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신과 성인, 천사들의 위계를 기준으로 구성된 장면은 여전히 장엄했지만 점차 ‘현실처럼 보이지 않는 그림’이라는 평가가 늘어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상징만으로 감동하지 않았고, 눈으로 본 세계와 그림 속 세계 사이의 간극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단순한 미학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관의 이동이었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은 신의 질서에서 인간의 시선으로 중심이 바뀌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회화는 정직하게 반영했다. 이 전환의 중심에 원근법(perspective)이 있었다. 원근법은 단지 공간에 깊이를 부여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보는 방식 자체를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언어였다.
중세 회화는 시공간의 연속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 화면 안에 여러 사건이 병렬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제단화 안에 예수의 탄생, 십자가형, 부활이 함께 배치되거나 인물들이 크기와 위치에 관계없이 위계적으로 그려지는 일이 흔했다. 이는 시각적 현실성보다는 도상학적 상징성과 교리적 메시지를 우선시한 결과였다.
하지만 14세기 말부터 피렌체와 같은 도시국가에서는 새로운 후원자 계층이 등장했다. 금융가, 상인, 은행가 등 시민계급은 교회보다는 세속적 권위와 이성을 중시했다. 그들은 회화를 신의 뜻을 담은 상징체계가 아니라, 현실의 반영으로 보고 싶어 했다. 이 시기부터 회화에 ‘자연스러움’, ‘현실감’, ‘공간의 일관성’이라는 개념이 진지하게 요구되기 시작한다.
이때 원근법은 결정적인 돌파구를 제공한다. 원근법의 핵심은 명확하다. 관람자의 눈, 즉, 시점을 기준으로 모든 사물의 크기와 위치가 계산된다는 것이다. 멀리 있는 것은 작아지고, 가까운 것은 커진다. 모든 수직선과 수평선은 특정한 소실점으로 수렴하며, 그 점은 관람자의 시선과 일치한다. 이것은 세계를 하나의 시점으로 통합하고 그 시점이 '인간의 눈'임을 강조하는 시각적 선언이었다.
이제 회화는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측정하고 해석하는 도구가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신성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을 갖고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존재로 격상되었다. 이 단일 시점 체계는 르네상스 회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건축, 조각, 도시 설계, 무대 예술에까지 그 원리가 확산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본질적으로 수학적이었다. 기하학과 기하투영법, 비례의 원리 등이 원근법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었고, 이는 단지 예술적 직관이 아닌, 이성적 계산과 설계에 근거한 결과물이었다. 이로써 회화는 수공예가 아닌 과학에 가까운 고차원의 사고 체계로 격상된다.
원근법은 본질적으로 ‘보는 자의 시점’에 따라 세계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각 철학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깊이를 부여하는 기술이 아니라, 누가 세계를 보는가, 그 시선이 무엇을 중심으로 삼는가를 묻는 사고의 구조였다.
르네상스 시대, 이 시선은 보통 한 명의 인간, 하나의 고정된 시점이었다. 이는 인간 중심주의의 시각적 표현이자 세계가 이해될 수 있고, 구조화될 수 있다는 낙관적 신념의 표명이기도 했다. 이 원근법은 회화에 강력한 일관성과 명확성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다중의 시점, 감정의 유동성, 개인차를 제거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로코코, 인상주의, 큐비즘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이 단일 시점을 의심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원근법이 제공한 ‘질서’의 언어는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유럽 시각 예술의 공통 토대가 되었으며, 그 출발점에는 브루넬레스키의 실험과 마사초의 실천이 있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공학자, 그리고 시각의 질서를 수학적으로 재정립한 ‘시점의 발명가’였다. 그는 정식으로 화가의 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 바깥에서 회화를 구성하는 원리, 즉 공간이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들어갔다. 그의 관심은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인간의 시선 안에서 어떻게 구조화될 수 있는가를 파악하는 데 있었다.
그가 최초로 본격적인 원근법 실험을 한 것은 약 1420년경, 피렌체의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을 대상으로 한 ‘나무판 그림 실험’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건축물의 파사드를 정확한 비례로 묘사한 그림을 그린 뒤, 그 그림에 구멍을 뚫고 관람자가 구멍을 통해 거울로 실물과 그림을 교차해 보도록 유도했다. 이 실험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인간의 시점, 그 단 하나의 시각 중심에서 출발해 모든 사물과 선을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으는 이론, 즉,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이 시각적으로 검증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때 브루넬레스키는 단지 회화의 표현 기법을 개선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건축가로서,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분할하고, 당시의 기술로 이를 구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회화도 하나의 ‘공간 설계’였고, 이 공간이 인간의 시선에 따라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지를 수학적으로 정의하고자 했다. 브루넬레스키의 실험은 철저히 수학적 감각과 시각적 체험을 결합한 르네상스적 탐구 정신의 산물이었다.
이 실험이 구술로만 전해진 데 반해, 후대 이론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1435년 [회화론(De pictura)]에서 이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그는 “회화는 창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통해, 원근법이란 세계를 ‘특정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창’으로 여기는 방식임을 밝혔다. 브루넬레스키는 바로 이 시점 중심 체계를 실제 시각 경험으로 검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단순한 회화 기법을 넘어서, 세계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는 근대적 인식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전의 중세 회화가 위계적 질서와 상징 체계로 세계를 배열했다면, 브루넬레스키는 “한 사람의 눈으로 본 세계”를 회화와 건축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것은 인간 개개인의 시선이 세계를 조직할 수 있다는 사상적 대전환이었다.
브루넬레스키의 이론은 단지 회화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그는 피렌체 대성당 돔의 건축에서도 이러한 원리를 응용했다. 이 돔은 기존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구조물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이중 돔 구조와 중심 회전형 배열을 고안해 무리한 버팀목 없이 거대한 공간을 지탱할 수 있도록 했다. 돔 내부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일정한 소실점을 향해 수렴하는 듯한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회화 속 원근법이 거대한 현실 공간에 구현된 결정적 사례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하늘과 인간 이성 사이의 교차점을 경험하게 한다.
브루넬레스키는 또한 당대 젊은 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이 새로운 시점의 원리를 회화에 적용하도록 유도했다. 조각가 도나텔로, 금세공사 로렌초 기베르티,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마사초와의 관계는 특별했다. 브루넬레스키는 마사초에게 단순한 수학적 조언자가 아니라, 회화를 공간 예술로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창의적 조력자였다.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Holy Trinity)]에서 보이는 정밀한 아치 구조와 시점의 설정은 브루넬레스키가 직접 계산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회화와 건축, 수학이 하나로 융합된 르네상스 협업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브루넬레스키의 진정한 업적은 단지 원근법을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인간의 눈, 하나의 시선, 그리고 그것이 구축하는 공간의 가능성을 예술의 중심에 두었고, 그 시선이 세계를 재조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 인물이었다.
마사초(Masaccio, 1401–1428)는 르네상스 회화의 지형을 바꾼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흔적은 너무도 짧고 조용했다. 그의 이름은 한동안 잊혔고, 작품조차 후대에 들어서야 진정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긴 생애를 살지도, 화려한 명성을 누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가 바꿔놓은 회화의 언어는 이후 수백 년의 유럽 회화를 지배했다.
그의 본명은 토마소 디 세르 조반니 디 몬네 카사이(Tommaso di Ser Giovanni di Mone Cassai)였다. ‘마사초’는 사실 그에게 붙여진 별명으로, ‘투박한 톰’, ‘엉뚱한 톰’쯤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의 외모나 무뚝뚝한 성격에서 비롯된 조롱조의 별칭이었지만, 훗날에는 오히려 그를 기억하게 해주는 이름이 되었다.
그는 아레초 근처의 작은 마을 산 조반니 발다르노(San Giovanni Valdarno)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조용히 보냈다. 금세공사였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어머니는 재혼하며 마사초는 피렌체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 피렌체는 예술적 르네상스의 발화점이었고, 그는 그곳에서 화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다. 정식 도제 과정을 밟았다는 기록은 없으나, 그가 당대 피렌체의 미술 환경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다.
마사초는 신체의 무게감, 빛의 방향, 공간의 깊이를 포착하는 데 놀라운 감각을 보였다. 특히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실험을 목격한 그는 이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회화에 적용했다. 동시대 화가들이 여전히 장식적이고 고딕적인 선과 금빛 배경에 의존하고 있을 때, 마사초는 ‘인간이 발 딛고 서 있는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사초는 회화를 단지 '선으로 그리는 예술'이 아니라, ‘빛과 구조로 세계를 구성하는 예술’로 인식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사고였다. 그는 종종 그림 작업 중 자신에게 질문하던 도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빛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먼저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도 그림자도 그 안에 산다.
그는 특정한 광원, 즉 빛의 방향을 회화에 처음으로 도입한 화가 중 하나였다. 이 빛은 단지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을 드러내고 인물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하며 심지어는 서사 전체의 흐름까지 유도하는 힘이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있는 [성삼위일체 (Holy Trinity)]는 마사초의 원근법 실험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당시 제단 벽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이 프레스코는, 마치 성당의 실제 건축 연장선처럼 보이는 구조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은 기둥과 아치로 구성된 정교한 공간 안에 성삼위일체(하느님, 그리스도, 성령)와 성모 마리아, 성 요한, 후원자 부부가 배치되어 있다. 이 공간은 완벽한 소실점에 따라 설계되었으며, 관람자의 눈높이를 중심으로 중앙 천장이 열리듯 펼쳐진다. 관람자는 마치 건축 안으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되며, 그림은 ‘평면 위의 문’처럼 기능한다.
특히 하단에 그려진 해골은 ‘아담의 해골’로, 인간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이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 경고가 아니라, 죽음과 구원의 구조가 회화 공간 안에 함께 존재함을 뜻한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듯한 아치 구조와 마사초의 인물 배치 감각은 이 작품을 르네상스 회화의 시작점으로 만든다.
[조공금화 (The Tribute Money)]는 브란카치 예배당에 그려진 대서사 프레스코의 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성경 속 에피소드(세금 징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꺼낸 베드로의 이야기)를 시공간적으로 통합된 한 화면에 담아낸 혁신적인 시도였다.
장면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중앙에서 예수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왼편에서 베드로가 물고기를 낚는 장면, 오른쪽에서 동전을 내는 장면이 순차적으로 배치된다. 하지만 각 장면은 별도의 칸막이나 경계 없이, 단일한 풍경 안에서 벌어진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공간적으로 ‘보이게’ 만든 첫 시도 중 하나였다.
또한 건축과 인물은 철저히 원근법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빛의 방향도 예배당 창의 방향과 일치하게 설정되었다. 베드로는 세 번 등장하지만 각기 다른 제스처와 감정을 보이며, 사건의 내적 논리를 시각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이것은 회화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이야기를 공간 안에서 설계하는 예술’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브란카치 예배당의 또 다른 명작인 [아담과 이브의 추방 (The Expulsion from the Garden of Eden)]은 마사초가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극도로 압축하고 전달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림은 단순하다. 벌거벗은 두 인물이 칼을 든 천사에 의해 에덴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이 장면은 르네상스 회화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브는 두 팔로 몸을 감싸며 입을 벌려 통곡하고 있고, 아담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절망에 빠져 있다. 이들의 자세와 표정은, 감정이 조각상처럼 시각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사초는 이 장면에서 고전 조각의 해부학적 정확성과 인간 심리의 깊이를 통합해냈다.
특히 그는 이브의 표현에 있어,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조각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고전을 빌려와 비극을 새기는 매체로 전환시켰다. 또한 빛의 방향은 한쪽에서 일관되게 비추며, 인물의 육체에 명암을 부여하고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공간은 거의 텅 비어 있고 이것이 오히려 인물의 고통을 증폭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마사초는 1428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가 생전에 완성한 작품은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회화 언어는 피렌체를 넘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들이 그에게서 ‘공간 구성의 원리’와 ‘인간 감정의 조형화’를 배웠다.
그는 회화의 본질을 바꾸었다. 회화는 더 이상 평면의 장식이 아니며, 단지 신을 묘사하는 수단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시선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표현하는 하나의 ‘문’이었다. 마사초는 그 문을 처음으로 열었다.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는 르네상스를 연 두 개의 시선이었다. 한 사람은 건축과 수학을 통해 세계의 공간적 구조를 설계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구조 위에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그려냈다. 브루넬레스키는 "공간은 이성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고, 마사초는 "그 공간 안에서 인간은 느끼고 고뇌한다"고 답했다.
그들이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은 '보는 방식'의 혁신이었다. 원근법은 단지 하나의 기법이나 양식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시각적 문법이었다. 그 문법을 통해 인간은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시선은 회화뿐 아니라 건축, 조각, 과학, 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도상 안에 갇힌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만의 시점을 가진 주체가 되었고, 그 시선은 곧 사고의 출발점이 되었다.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와 마사초의 프레스코는 세계가 하나의 질서 아래 통일될 수 있다는 르네상스적 확신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하나의 소실점, 하나의 시선, 하나의 빛. 그 안에서 세계는 안정적으로 조직되었고, 인간은 그 구조 안에서 '이해 가능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단일한 시선이 만들어낸 질서는 그 자체로 새로운 질문을 낳았다. 하나의 시점은 누구의 것인가? 모두가 그 시점에 동의할 수 있는가? 감정과 기억, 지역성과 성별, 시대와 문화는 그 시점 안에서 어떻게 반영되는가?
이 질문은 곧 르네상스의 이상을 흔들기 시작했고, 회화는 다시금 다양성과 복잡성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에서 활동한 두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와 조반니 벨리니는 이러한 긴장과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한다. 이 두 사람은 마사초가 정립한 ‘질서 있는 시선’이라는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각기 다른 감정과 풍경, 지역성과 관계의 무늬를 얹는다.
만테냐는 고대의 환영을 좇으며 돌처럼 단단한 질서를 추구했고, 벨리니는 물처럼 부드럽고 감성적인 색채로 세상을 감쌌다. 한 사람은 조각가처럼 그렸고, 다른 한 사람은 음악가처럼 색을 다루었다. 그들은 동시대에 살아가며 서로의 작업을 의식했고, 심지어 가족이 되었지만, 서로 다른 회화 세계를 펼쳤다.
이제 우리는 다음 장에서 이 두 화가의 세계로 들어간다. 마사초와 브루넬레스키가 열어젖힌 문이 단일한 시점의 회화였다면, 만테냐와 벨리니는 그 문을 서로 다른 감각으로 통과하며, 르네상스의 두 번째 장을 써내려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비교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예술과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충돌하며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험이자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