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프로이방인
나는 프로이방인다. 7살 때 캐나다로 떠난 조기유학을 시작하여 캐나다, 뉴질랜드와 일본에서 살았고 중간중간에 한국에서도 살았으니 2013년에 한국으로 아예 돌아오기 전까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노매드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많았다. 내가 가장 오래 산 집이 2015년에 결혼하면서 얻은 신혼집이었다. 그 신혼집에서 3년을 산 것이 가장 오래 산 곳이라니 말 다 했다.
부모님이 외교관이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1세대 조기유학생이었고, 1세대 기러기가족이었으며 동시에 한국이란 이국적인 나라에서 온 이방인으로 살았다. 경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다시 나가 살기도 했다. 언니와 나, 그리고 엄마와 함께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살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은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기도 하지만 가시가 되고 깊은 상처와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원치 않는 유학으로 마음속 분노를 품고 사는 사춘기 소녀이기도 했고 겪은 수많은 차별로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다니는 마음 다친 영혼이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온 두 자매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나고 자란 굉장히 한국적인 남자와 결혼을 하여 ‘고은*’로 살고 있다. 그리고 서울의 한 아파트 대단지에서 아들을 하나 낳고 기르고 있다.
반면, 언니는 한국보다 외국이 항상 편했고 재미교포 남자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아들 하나 낳고 쥬디로 살고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우리 둘은 외국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많이 다르다. 난 앨리스가 불편했지만 언니는 쥬디가 편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내가 정착했다는 안정감을 느꼈다. 떠나는 것 밖에 모르는 배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여 줄로 고정시켜진 이 느낌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평생 떠돌며 여행하고 살고 싶다던데 나는 그렇게 여행하다가는 어딘가 몸 하나가 고장 날 것만 같았다. 소심하고 내성적, 안전추구형인 동생과 대범하고 외향적, 자극추구형인 언니는 이렇게 다른 삶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