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가 쌓이면

by 글빛아름


"설거지가 쌓이면 걱정과 근심이 쌓이는 거야. 쌓아두지 말고 바로해."

결혼 후 엄마가 우리 집에 오면 자주 했던 말이다.


"아이참 알겠어 엄마. 이따가 할게."

나는 웃음으로 방어했다.

'근데 그게 무슨 말이지. 설거지랑 걱정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참.'


가만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설거지를 바로 했었나. 잘은 모르겠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설거지를 하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며 걱정과 근심을 씻어버리려고 했던 걸까.


결혼 전 엄마는 나에게 집안일이나 요리를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하기도 했는데, 여자는 어차피 나중에 다 하게 된다며 지금부터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핑계지만 그래서인가 나는 기본적인 생활습관이 잘 안 되고 어렵다. 다 하게 된다고 했는데 나는 잘 못한다. 엄마말이 틀렸다. 밥 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는 습관이 체력과 마음을 더 편하게 한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2025년 1월 1일. 신랑은 매년 1월 1일에 하는 습관이 있다. 일 년에 한 번이라 습관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어쨌든 매년 1월 1일에 해 뜨는 걸 보러 간다. 신혼 때는 한번 같이 갔는데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패딩을 입어도 뼛속까지 추웠고, 해 뜨는 걸 보러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자고 나면 선물 같은 새 하루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매일 뜨는 해를 왜 보러 가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저 창조주가 만든 작품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젠 신랑의 습관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잘 다녀오라고 한다. 매년 12월 31일이면 나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신랑은 다음 날 1월 1일 새벽에 해 뜨는 것을 보러 간다.


오늘도 새벽에 준비해서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이들에게 과일을 주고 아점으로 떡국을 먹을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일출을 보고 달리기를 하고 밥을 먹고 온다는 것이다.

그때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니 더욱 화가 났다. 휴 한숨을 내쉬며 아주 뜨거운 물을 틀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혔다. 그릇에 묻은 찌꺼기를 씻어내며 내 안에 생긴 나쁜 감정의 찌꺼기가 다 씻겨 내려가길 바랐다. 천국에 있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 설거지가 쌓이면 걱정과 근심이 쌓이는 거야.‘

‘지금 바로 하고 있어. 고마워 엄마.‘


설거지를 마무리할 즈음 마음도 조금 깨끗해졌다. 신랑에게 미리 카톡을 보냈다. 평소라면 그냥 마음과 입을 닫았을 나인데 이번엔 내가 서운한 점을 구체적으로 알렸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기 위해 미리 이야기를 해두니 서로 더 조심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며 또 하나 알아차린 것이 있다. 나는 물소리, 특히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소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샤워를 할 때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도 몇 년 전에 눈치 했는데 설거지를 할 때도 그렇다는 걸 이제 알았다. 평소 너무 둔한 성격이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면 아픈 손목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하기 싫었는데 물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 샤워할 땐 바로 메모를 못하는데 설거지는 가능해서 더욱 좋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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