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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May 15. 2024

걸어서 영국 국경 넘기

스페인 속 작은 영국

알헤시라스에서 버스로 40분을 달려와 국경 앞에 다다랐다. 바람에 당차게 흩날리고 있는 스페인과 영국의 국기를 보니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브롤터 국경


"비자 있어?"

"나 비자 필요 없는데?"

"어디로 스페인 들어왔어?"

"발렌시아."

“비자 어디있어?”

“비자 필요없대도?”

텅 빈 입국심사장이었지만 황당한 심사 덕에 상당히 오랜 시단을 끌고 마침내 영국으로 넘어왔다. 삼면이 바다에 북한 덕에 육로가 막힌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걸어서 국경 넘기’란 너무나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것도 목적지가 섬나라로 알려진 영국이라니.


비록 본토가 아닌 스페인 남쪽 끝자락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땅. 지리적으로 재미난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많은 유럽국의 해외영토 중 지브롤터가 가장 알려진 이유이지 않을까.


지브롤터 공항


심사장을 지나면 지브롤터 공항이 있다. 나름 국제공항이지만, 비행 편 수가 적어서인지 그냥 활주로를 걸어서 지나갈 수 있다. 활주로는 생각보다 상당히 넓었다. 혹여나 비행기가 착륙하지 않을까 사방을 구경하며 걸어가는데도 그 길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 자연이 아닌 인공의 땅이 드넓다고 느낀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스페인 + 영국 = 지브롤터

활주로를 넘어 마을 쪽으로 걸어오니, 빨간 전화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영국에 왔음이 직관적으로 와닿았다. 또, 스페인에 오기 전에 영국에 있었던지라 반가움도 컸다.


직선거리로 걸어서 1시간 남짓 걸리는 작은 지브롤터는 스페인 속에 고립된 곳이기에 문화가 섞인 재밌는 곳이었다. 영국 고유의 아이덴티티는 그대로 가져가되, 주민들의 생활 면에서 편의를 상당히 고려한 듯했다.


지브롤터 내 우체통, 전화부스


빨간 전화부스, 우체통을 비롯해 전반적인 마을의 느낌은 주변국 스페인 보단 영국 특유의 감성이 더 많이 담겼다.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흐린 날씨와 꽤나 잘 어울리는 고유의 그 느낌과. 하지만 주변국 스페인과의 교류가 굉장히 많은 곳이기에 유료 사용률이 높고, 차량통행도 우측에 좌측핸들을 사용한다.


영국 문화의 흔적


이러한 점은 여행자 입장에서도 편리했다. 대부분이 스페인에서 들어와 잠시 여행을 하다 가기에 단순히 지브롤터 여행을 위해 파운드로 환전을 하는 불편함 따위는 덜었으니까.


하나 단점이 있었다면, 휴대폰 통신은 잘 터지지 않았다. 스페인 통신사를 잡았다가 영국 통신사를 잡았다가 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더니 이내 통신 자체가 중단되어버린 불상사가 발생했고, 덕분에 산속에서 간신히 터지는 와이파이를 갈구하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지브롤터 자연보호 지역

마을 구경을 하며 한참 안으로 걸어 들어오니, 좌측에 산이 눈에 띄었다. 주차장을 지나 더 내려가면, 케이블카 탑승장이 나온다. 바로 원숭이 소굴로 가는 길. 이 산속에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사는 바바리원숭이가 가득한 곳이다. 작지만 원숭이 외에도 다양한 자연의 매력을 갖고 있는 이곳을 탐방하기 위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지브롤터를 방문한단다. 그래서 나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편도? 왕복? 어떡하지?'

티켓 사러 가는 길목에 놓인 티켓 안내문을 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티켓은 산 위에서 팔지 않고, 밑에서만 판매한다. 다시 말하면, 편도티켓을 사면 케이블카를 위에서 타고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참 그 안내문 앞에서 서서 고민하다 함께 고민하던 사람들이 내린 결정을 몰래 엿듣고, 편도 티켓으로 따라 샀다. 결과적으로는 편도 티켓이 좋은 선택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볼 수 있는 자연환경이 많았는데, 왕복 티켓을 사면 정상 부근만 보고 다시 내려오는 셈이기 때문에.


지브롤터 산 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풍경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지브롤터가 워낙 작으니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담기더라. 지중해 바다는 투명한 에메랄드 느낌이라면 이곳은 짙은 코발트블루 빛깔이었다. 어릴 적 역사책 속에서나 들어본 ‘지브롤터 해협’을 눈앞에 두고 보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지브롤터의 원숭이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긴 건 사람이 아닌 원숭이. 울타리 속에 갇히지 않은 야생의 원숭이를 관리자도 없이 만나니 당황스러웠다.


가방 문 열려있으면 물건 집어간다는 성질이 꽤나 더러운 원숭이들. 그런 소문을 들어서인지 유난히도 무서웠다. 편도티켓을 끊은 나에겐 어떠한 선택지도 없었다. 스스로 하루를 원숭이와 지지고 볶을 것을 결심한 몇 분 전의 나를 원망할 뿐.


산 위의 풍경


투어를 온 사람들은 머리 위에 원숭이를 올려놓고 있기도 했다. 사람에게 서슴없이 다가오는 원숭이들을 보며 두려움이 증폭됐다. 케이블카 하차장을 떠나면 데이터도 터지지 않고 내려가는 사람이 있는지도 미지수고. 불안함만 가득해질 뿐이었다. 누군가를 붙잡고서라도 사정을 해 내려가고 싶었다.


서로 등을 긁어주고, 누가 사과를 던져주었는지 양손에 바나나 대신 사과를 소중히 쥐고 먹는 그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탈을 쓴 사람 같았다. 눈이 마주치면 흠칫했다. 이내 시간이 지나니 원숭이들이 익숙해지더라. 가까이 가지 못하고 끝내 하산했지만, 그들을 구경하는 재미 하나는 분명하게 찾았다.


구석구석 지나가며 표지판이 있는 곳은 모두 들렀다. 그리곤 그 남쪽 끝에서 운이 좋게도 미지의 대륙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모로코 땅.


급류만 아니었다면 진즉 다리가 지어서 차로 왕래를 했을 만큼 가까웠던 두 대륙의 거리를 두 눈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언젠간 가게 될 아프리카를 꿈에 그리며 그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그 후로 약 1년 뒤, 모로코를 다녀왔다. 반대로 탕헤르에서 지브롤터를 바라보았는데, 특별히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지만, 갖고 있던 추억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다.)


산 중턱의 동굴


자연보호구역답게 정상을 중심으로 양측에 다양한 자연유산들이 있다. 지도를 참고해 선택하거나 걷는 게 좋다면 양방향 모두 누리며 볼 수 있다. 나는 자연스레 걷는 사람들을 따라 내려왔고, 중턱에서 동굴을 찾았다. 이 작은 산속 동굴이지만, 그 규모는 꽤나 컸다. 나름 화려하게 꾸며놓기까지.


무엇보다도 그늘에 선선하니, 4월에 30도가 넘는 한여름 날씨를 자랑하는 지브롤터에서 딱 좋은 대피소 역할을 했다.


산 위의 풍경


태양을 피할 그늘 한 점 없고, 먹을 식당조차 없는 산에서 한나절을 걸어 다니다 마을에 도착했다. 강렬한 태양 아래 산과 바다, 그리고 원숭이까지 자연 그 자체였던 지브롤터. 여러 가지로 의미도 있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1부를 마치며

브런치 연재가 30회차까지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이렇게 어영부영 1부를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글로 기록을 남길 것을 계획하고 떠났던 지라 순간순간을 모두 휴대폰 메모장에 써 내려갔더니, 되려 너무 많은 것이 기억에 남아 내용을 거르기 바쁘지 않았나 싶습니다. 때로는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한 글을 그대로 올릴 때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꾸준히 읽어주신 구독자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쓰는 습관을 형성하고자 브런치에 연재 기능이 생기자마자 적어내려갔던 첫 연재 브런치북인데 사정이 있었던 2회 빼고 꾸준히 적었으니, 초기 목표는 어느정도 달성하지 않았나 싶네요. 이제는 꾸준히를 넘어 글의 질을 향상하는데에 더 집중해보겠습니다. 


2부는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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