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 정복기
한창 루트를 정하고 있을 때, 현빈과 박신혜가 주연인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에 관심 없는 우리가 제목을 알 정도면 나름 뜬 드라마다. 주변이들에게 얘기하면 모두가 알만한 드라마.
그런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그라나다를 보니 반가웠다. 드라마 속 배경과 겹치는지와 관계없이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곳이 실존한다는 사실 자체로. 현시점에 가장 잘 나가는 드라마 속 배경은 실제로 어떤 곳일지 가보고 싶었다.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여행객들 대부분의 가장 큰 이유다. 방문객이 많기 때문에 온라인을 통해 날짜,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힘들었다. 티켓 하나 구매하는 게.
알함브라 궁전 예약 및 교통 Info.
나스리 궁전이 30분 단위로 정해진 인원만 받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다. 예약은 (https://tickets.alhambra-patronato.es/en/) 이곳에서 하면 된다. 알카사바, 헤네랄리페, 나스리 궁 등을 한 번에 보는 통합권부터, 나스리 궁전 야간권, 헤네랄리페 야간권 등 다양하게 티켓이 판매되고 있다. 각각의 티켓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 및 참고사항을 잘 읽어보고 구매해야 한다.
가장 많이 사는 티켓은 Alhambra General 티켓으로, 성인 기준 14유로이며, 알함브라 전체를 다 낮에 둘러보는 티켓이다. 전날 밤에 나스리 궁을 보고 다음 날에 나머지를 보는 것은 Alhambra Experiences 티켓. 성인 기준 14유로로 General과 같은 금액이니,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야경도 궁금하다면 후자를 추천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Night visit to Nasrid Palaces와 Gardens, Generalife and Alcazaba 티켓을 별도로 구매한 경우고, 이렇게 구매할 경우 15유로다. (모든 금액은 2019년의 성인 기준이며, 학생 요금도 별도로 있다.)
시내에서 그라나다까지는 도보도 가능하나 대부분이 버스를 탄다. C32번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매표소 앞에서 내릴 수 있다.
"엄마, 내가 고민이 하나 있어. 들어봐."
"뭔데?"
"입장 티켓이 두 종류가 있어. 알함브라 전체를 낮에 다 보면 14유로야. 근데 여기 나스리 궁전이 야간도 있는데, 야간이 예뻐서 보고 싶단 말이지? 그럼 전날 밤에 이걸 보고 다음날 낮에 나머지를 볼 수 있는 티켓을 사면 되거든? 근데 이거 지금 남은 날짜랑 우리 일정이랑 안 맞는데, 헤네랄리페, 정원, 알카사바 얘네들 보는 티켓이랑 나스리 궁전 야간에 보는 티켓을 따로 사면 그렇게 갈 수 있거든? 근데 1유로 더 비싸."
"그럼 1유로 더 내고 가."
1 유로면 과자 하나 값이니 그렇게 비싼 돈도 아니다. 비슷한 조건이 있는데 그거보다 1유로를 더 준다는 게 어찌 됐건 손해이긴 하니 그 크기가 어떻든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사람 심리일 뿐. 거기다 야간 예약이 다 찬 걸 보고 포기하던 찰나에 찾은 다른 대안이기에 한편으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티켓 하나 구매하는데 결정도 바로 못하고 며칠 동안 사이트를 들락날락할 만큼.
6월에 가는 티켓을 3월에 구매하는데도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다 차서 고민을 며칠이나 했다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기도 하면서 얼마나 대단한 곳일까 궁금했다. 우린 최종적으로 티켓을 따로 구매 해 하루 안에 낮에는 헤네랄리페와 카를로스 궁전 등을 보고 밤에 나스리 궁전을 다녀왔다.
1) 화사한 꽃과 정원이 아름다웠던 별궁, 헤네랄리페
"저기 마을 보인다."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꽤 달려온 만큼, 울창한 나무들 너머로 구시가지가 보였다. 여느 전망대만큼 높은 곳은 아니지만 나무들 사이로 훤하게 보이는 집들이 그림 같았다.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보이던 정원은 미로 같았다. 특이하게 관리되어있던 정원이 처음엔 신기했는데 보다 보니 질려서 옆길로 크게 지나왔다. 그곳에는 오기 전 미리 봤던 사진들 중 가장 오고 싶었던 곳, 헤네랄리페 궁. 옆으로 피어있는 보라색 꽃들과 가운데 수로 위로 올라오는 얇은 물줄기가 이곳의 아름다움을 배로 올려줬다.
아쉬웠던 게 있다면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단체 관광객이 많았다는 것. 약 20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 곳곳에 뭉쳐있다. 서로가 조금씩 피해 둥글게 뭉쳐 한참을 설명을 듣다 보니 가는 곳마다 사람은 미어터지고 깔끔하게 건축을 보고 싶은데 그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여기나 먼저 보고 있을까?"
궁전 내부도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항상 그곳에 있는 단체 관광객. 지나가는 것도, 보는 것도 다른 개인 관광객에 방해가 된다면 어느 정도 수를 제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보고 싶은 걸 보려면 가이드의 설명과 관람이 끝나야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회랑에 있는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시간 보내기로 했다.
이슬람 문화가 깃들어있는 건축을 코르도바를 시작으로 스페인 남부에서 줄곧 봐왔는데, 언제 봐도 참 매력 있다. 아치형 모양의 창문이 흔한 사각 프레임과 또 다른 느낌의 프레임을 만들어주니 사진 찍을 맛이 났다.
"이쪽도 봐봐. 이렇게 봐도 예뻐."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를 바라보는 뷰도 마찬가지. 아치형의 프레임이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풍경을 마치 그림 속의 한 장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거기에 건축 대부분에 새겨진 아라베스크 문양도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동서양이 적절히 섞인 것 같으면서도 독자적인 분위기랄까.
헤네랄리페 궁의 화룡점정은 예쁘게 핀 꽃이다. 조화라고 믿을 만큼 활짝 핀 꽃이 어찌나 이쁘던지. 이 궁이 아름답게 보였던 건 아마 이 꽃들 때문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 눈이 부실만큼 내리쬐는 햇살을 잔뜩 머금은 모습이, 여전히 눈에 아른거린다. 자연에 핀 꽃이 흠 하나 없이 이렇게 아름답게 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헤네랄리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함께하는 화사한 꽃. 벤치에 앉아 꽃들 구경하며 시간 보내는 걸로 헤네랄리페 궁전 구경을 마무리지었다.
2) 그라나다 최고 전망대, 알카사바
"저기도 가는 건가?"
헤네랄리페 궁 끝에 안내된 표지판을 따라 길을 걸으니, 가장 먼저 보인 알카사바. 몇 곳만 대충 알아보고 왔더니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떤 게 티켓에 포함되어 있는지 혼란스러워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냥 티켓 줘 보면 알겠지. 안된다고 하면 그냥 나오면 되는 거고."
서서 검색해봐야 땡볕 아래 태양만 잔뜩 흡수하며 익어갈 뿐. 모를 땐 무조건 밀어붙여 보는 게 최고다. 티켓 확인하는 곳에 가서 무작정 티켓을 들이밀었다.
과거 주거지 역할을 했던 알카사바 내에는 모든 게 무너지고 터만 남아있었다. 낮게 구조물만 남아있으니 답답한 느낌이 없었지만, 이 기본 구조 위로 건물들이 올라와있을 걸 상상해보면 꽤나 좁고 복잡했을 듯하다.
"그라나다가 한눈에 다 보이네."
"이게 유럽이지. TV에서 보던 주황색 지붕!"
과거 군사적 요충지였던 알카사바는 그라나다가 훤히 다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 사방으로 마을들이 보인다. 중간에 걸림돌 없이 파노라마 뷰로 한 번에 보이는 건 이곳이 처음. 특히 언덕 위로 복잡하게 형성된 과거 이슬람교도들의 거주지였던 알바이신 지구를 잘 볼 수 있었다.
3) 원형 경기장을 닮은 곳, 카를로스 5세 궁전
"여긴 또 뭐야? 들어가도 되는 건가?"
"들어가 보자."
알카사바 반대편, 나스리 궁 옆에 위치한 카를로스 5세 궁전. 이슬람의 영향이 많이 드러나는 알함브라 궁전 내의 다른 건축과는 다르게 고대 로마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곳. 겉으로는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으로 또 다른 느낌. 얼핏 보면 박물관 같기도 했다. 웅장한 외관에 비해 사람들의 주목을 덜 받는지, 밖에 사람이 많은데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문 앞에서 기웃거리다 들어갔다.
사각형의 형태였던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원형 경기장을 연상케 했다. 천장이 막힌 건물인 줄 알았는데 뻥 뚫려있고, 사각형의 평범한 건물인 줄 알았는데 내부 공간은 원형이고. 반전 매력이 참 많은 곳이다.
"여기는 무슨 거인이 살아? 문들이 뭐 이리 커?"
사람이 드문 2층 회랑을 거닐며 보이는 거라고는 각종 방의 문뿐이니 자연스레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일반 인간의 키를 훌쩍 넘은 상당히 높은 문. 열고 닫기도 불편할 만큼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데 거기다 높이까지 있으니 상상 속 거인이 드나들 것 같았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의 볼거리는 많지 않았다. 회랑을 거닐며 이곳을 느껴보는 정도. 그리고 기둥 양식을 보는 정도.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 식. 시각적으로 주의를 끄는 건 별로 없지만 건축양식을 아는 만큼 적용하며 보기는 참 좋은 곳이었다.
4) 달빛 아래 아름다웠던, 나스리 궁전
알함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 나스리 궁전 야간 투어. 제한된 인원만 볼 수 있는 지라 더 특별했고, 그만큼 가고 싶었다. 나스리 궁전의 야경 사진을 보지도 못했는데 왠지 낮 풍경만 봐도 밤이 예쁠 것 같아 본능적으로 이끌렸다.
"저기 하늘 봐. 노을이 예쁘다."
첫 번째 타임에 예약을 했더니 해가 지기도 전에 입구에 도착해 기다리다 우연히 핑크빛 노을을 봤다. 알카사바에 반 이상 가려졌지만, 옆쪽까지 물든 하늘이 예술적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들어가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찍 갔다가 앉기도 애매하고 줄 서있기도 애매해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남은 시간을 노을 구경하다 순식간에 보냈다.
"야경 봐. 골목 사이에 노란 불."
"이제 와서 유럽의 야경을 보네."
여름의 유럽 특성상 해가 21시가 넘어야 해가 지는 것도 있고, 치안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항상 숙소에 들어갔었던 우리. 야간 투어 때문에 곳곳에 불이 켜진 유럽의 야경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살짝 언덕배기에 높은 건물 없이 빼곡하게 있던 알바이신 지구 사이로 노란 가로등이 켜 있는 모습이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잘 어울렸다.
"하늘에 보이는 달이 예쁘지 않아?"
각 방들을 지날 때 있는 작은 정원은 고개를 내릴 수 없었다. 정원보다도 뚫린 천장에 환하게 걸쳐서 보이는 달이 자꾸 시선을 끌었다. 강하게 비추는 달빛이 약간 성스러운 느낌도 들고.
이슬람의 영향이 깃든 곳이라면 빠질 수 없는 화려한 조각들. 이슬람교가 언뜻 보이는 무늬부터 히브리어까지 다양하게 새겨졌다. 이슬람 양식을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보는 데도 볼 때마다 새로웠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자꾸 가까이 가 이리저리 살피기까지 할 만큼.
"천장 봐봐. 나는 여기 와서 천장을 더 보는 거 같아."
벽면에 가득한 조각뿐만 아니라 궁전 내부 곳곳의 비범한 천장들 역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하나하나 보며 감탄만 나올 뿐. 고개를 젖혀 바라보면 어지러운데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치 별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천장부터, 무언가 흘러내리고 있는 듯한 천장까지 다양한 예술적인 모양들이 인상 깊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여기다!"
가장 보고 싶었던 나스리 궁전의 모습. 물에 건물과 사이의 빛이 반영된 모습이다. 모두가 숨 죽이고 중앙에 서 한 곳만 바라보았다. 고요함 속에 놓인 나스리 궁전은 없던 종교도 생길 것 같이 성스러웠다.
그라나다 2일 차 일정 전부를 바친 알함브라 궁전. 드라마와의 시기상 우연한 일치로 인해 단순 호기심으로 왔던 곳이지만 짧은 그라나다 일정의 대부분을 차지해도 후회되지 않을 만큼 인상 깊고 가치가 있었다. General 티켓으로 낮에 다 보려면 조금 힘에 부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넓어 여러모로 좋았던 선택이었던 알함브라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