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지 문화에 물드는 과정, 시에스타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문화를.

by 녕로그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남쪽과 라틴아메리카에는 웬만한 한국인은 이해 못 할 문화 하나가 있다. 모두가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 심지어는 상점도 모두 문을 닫고 잔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서 일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없앤 곳이 많다고는 하지만, 여행 중에 심심찮게 봤다.


시에스타는 햇빛이 강한 지역적 특성에 맞추어 가장 강한 시간대에 일 대신 휴식을 선택하는 거다. 밤까지 일하기 위해. 사실 낮잠이라는 단어만 빼면,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보이는 식당에서의 브레이크 타임과 같은 개념이다. 이게 식당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원, 공무원 등 모두에게 해당하니 신기했다.


일주일 내내 반복적으로 몇 시간씩 연달아 일하는 걸 생각하면 시에스타만큼 달콤한 게 따로 없다. 밥 먹는 시간 제외하고 줄곧 일하다가 야근까지 밥 먹듯 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찌나 더 비교가 되던지.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참 좋은 제도라는 건 알겠으나, 현실에 적용하자면 나 역시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 사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애초에 잠이 없는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잠 많은 사람들을 잘 이해 못 하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이겠지만. 밖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라서도 아니고, 밖에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더워서 장사를 접고 쉰다니 말이 되나.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식당도, 밤늦게 여는 술집도, 일찍 문 닫는 어느 시골의 카페도 모두 운영 시간을 생각하면 사람이 많은 시간에만 일해 효율적으로 운영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시에스타 시간은 사람이 많고 적음은 반영하지 않는다. 관광산업이 주 돈벌이 수단인 이들은 되려 관광객이 많은 시간에도 일 보다는 휴식을 택하곤 하는 것이다.


KakaoTalk_Photo_2022-01-02-19-54-12 004.jpg 그라나다 대성당 맞은편 숙소 외관


"숙소에 잠깐 갔다 나올까?"

"그래."

말라가에서 그라나다로 넘어오자마자 알찬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바로 또 시작된 알함브라 투어. 낮에 볼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들을 다 보고 밤에 예약해 놓은 나스레 궁전 보는 시간까지 한참 남았다. 평소라면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여러 상점도 구경하고 그럴 텐데 숙소에 잠시 들르자는 말이 이 날따라 솔깃했다. 물론 이때까진 여행까지 와서 내가 낮에 잠을 잘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KakaoTalk_Photo_2022-01-02-19-54-12 002.jpg
KakaoTalk_Photo_2022-01-02-19-54-11 001.jpg
그라나다 대성당 앞의 숙소


그라나다 대성당이 바로 앞에 보이는 최고의 위치에 있던 숙소는 어디에 있어도 돌아가기도 편하고 좋았다. 숙소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었던 숙소. 숙소에는 있는 거라고는 침대뿐이니 들어오자마자 자동으로 몸이 가서 누웠다.


"우리 조금만 누워있다가 나가자."

침대에 발 뻗고 누우니 이보다 더 편한게 따로 없었다. 분명 30분 - 1시간 정도만 휴대폰 보면서 누워있을 생각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예상보다 한참 자고 일어났다.


KakaoTalk_Photo_2022-01-02-19-54-12 003.jpg 숙소 창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누적된 피로가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하나의 이유로는 숙소 내부로 들어오는 적절하게 은은한 자연광도 있었다. 지나치게 강한 햇빛 때문에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좁은 스페인. 덕분에 커튼을 굳이 치지 않아도 햇빛이 낮에 강하게 들어오지도 않으면서, 또 내부가 불을 켜지 않고도 어둡지 않을 만큼 들어와 잠깐의 휴식을 편하게 취하는 데에 큰 몫을 했다.


의도치 않은 그라나다에서의 시에스타 덕분에 생각보다 중간에 갖는 휴식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몸소 느꼈다. 역시 사람의 체력은 아무리 좋아도 매일 밖으로 나가 체력을 소모하면 결국은 지칠 때가 있더라. 이곳에서 시에스타를 체득한 게 장기 여행에서 항상 좋은 컨디션으로 여행지를 다니는 데에 큰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스타 델 솔을 즐기기 위한 두 개의 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