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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Jan 16. 2021

번아웃 된 휴학생, 49일 여행을 가다

현실에서 도망치다가 마주친 모녀여행

대학생들이라면 이런 경험을 한 번쯤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약 같은 방학에 속아 지옥 같은 한 학기를 반복하는 것 말이다.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딱 속기 좋은 사람이었다. 매 학기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그렇게 속고 또 속아 어느덧 3학년까지 쉼 없이 버텼다.


3학년이 끝나가던 해, 이대로 4학년을 맞이하면 내 인생을 놓아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 입학 이래로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나는 인생에 첫 쉼표를 찍을 결심을 했다.


설레는 마음을 붙잡고 휴학 인생 계획을 짜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굳게 마음을 먹고 나니 파워 J의 모습 어디 가지 않는다.


그리고 검색한 첫 단어.

대학생 휴학.


남들은 휴학을 하면 무엇을 할까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휴학은 잠시 학교를 쉬는 것일 뿐인데 왜 남들의 인생을 궁금해했을까 싶다.

또래들의 휴학 라이프를 이미 보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괜스레 검색을 해보았다. 대부분이 예상했듯, 자격증 공부 또는 인턴 이야기다.


물론, 정반대의 휴학 라이프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하지만 내 성격은 아무것도 안 하고는 못 산다. 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놀아 본 사람이 좀 놀 줄도 안다고, 놀 줄 몰라서 휴식 없이 달렸다. 이 사회는 젊은 청춘들에게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들었다. 이번만큼은 끌려갈 수 없다. 외면하고 싶었다.


생산적이면서도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 줄 무언가를 찾고 있던 그때, 수강하던 수업의 교수님과의 짧은 대화가 떠올랐다.

"너는 휴학했었니?"

"아니요."

"왜 안 해? 휴학하고 여행도 좀 갔다 오고 그래. 그게 제일 좋은 경험이야."


여행이 제일 좋은 경험이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어 희망 직업까지 바꿀 줄은.

뚜렷한 취미도 없던 나는 휴식을 가질 수 있는 방법으로 여행이 적합한 것처럼 느껴졌다.

여행이라는 핑계로 일상이 멈추는 게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 말은 별로 와 닿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여행 가는 이유로 설득할 명분으로 받아들였다.


솔직하게는 SNS의 영향이 크다.

종강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떠나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우정여행 사진이 행복해 보였다.

타인의 삶을 SNS로만 단정 지으면 안 되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재 행복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그들은 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뭐..그런 이유로,

처음 교수님 말씀이 귀에 들어왔던 것은 불특정 타인이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여행을 결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명분까지 찾았으니 고민이 더 필요하겠는가.


여행을 가겠다고 덜컥 결정해버렸지만, 사실 혼자 여행도 장기 여행도 경험이 없다. 허락받는 것부터 난관이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 것인가. 이번엔 후회 없이 한 번 정한 인생 그대로 살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휴학하면 유럽 갈 거야. 길게.”

새가슴은 어디 안 간다. 마음으로 수백 번을 고민 끝에 뻔뻔한 척 말을 던졌다. 최대한 단호한 말투로.


“유럽? 좋겠다. 혼자 갈 거야?"

"..."

"엄마도 같이 갈까?”

혼자 갈 거냐며 되묻기는 했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어떤 이유에서든 모녀 여행이 나에게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엄마는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겠지만, 진담처럼 받고 싶었다.


"가자. 요즘 엄마랑 여행 진짜 많이 가던데."


엄마가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잘 안다. 나 역시도 같은 이유로 혼자 갈 생각을 했던 것이고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자.


정해진 것 아무것도 없이,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시작된 내 생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

6개월의 기다림과 만반의 준비 끝에, 나의 삶을 바꾼 49일 6개국 여행의 막이 올랐다.


모녀 여행 49일 치 짐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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