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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Jan 16. 2022

길고양이 시절 TNR로 잘린 줄리의 귀를 보며

카메라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놀란 줄리

처음 만난 줄리는 양쪽 귀가 같았다. 쫑긋쫑긋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처럼 귀여운 두 귀. 집을 나가고 오랜만에 들른 부모님 댁 아파트 뒤뜰에서 만난 줄리의 귀 한쪽은 푹 꺼진 칼데라 caldera처럼 잘려있었다. '길에서나마 살기 위해 제 귀의 일부를 내어 주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어 혼자 속이 상했다. 어느 추운 겨울, 줄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밥을 먹기 위해 쪼르르 달려오는 줄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줄리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진첩에 남아 있는 줄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줄리의 초롱초롱한 눈 위, 비대칭의 귀에 눈이 가 마음이 먹먹해지곤 했다.


귀가 잘린 모습이건 귀가 잘리지 않은 모습이건, 밖에서 지내건 우리 집에서 지내건, 줄리는 그제나 지금이나 영특하고 씩씩하다. 호기심이 많아 처음 보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혼신의 힘을 다해 카샤카샤 사냥놀이를 하며 엉덩이를 씰룩이는 것도, 밥이 눈에 보이면 단박에 와구와구 급하게 먹는 것도, 잠을  때면 따뜻한 곳을 찾아 종종 콩이를  껴안고 자는 것도 그대로이다. 다만 변한  줄리의 마음뿐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줄리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 나에게 조금   시간 자신의 곁을 허락한다. 한때는 혼자 떨어져 동그랗게 몸을 말아  품으로 파고든  잠이 들었지만, 이제는 내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침대에 따라 올라와  다리에  몸을 찰싹 붙이고 함께 잠을 청한다.


줄리는 자신을 잃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면서 나에게 마음도 주었다. 이렇게 씩씩하고 대견하고 지혜롭고 똑똑한 고양이를, 나는 그저  한쪽 일부가 잘린 모습 하나 때문에 멋대로 속상해하며 줄리를 재단한  아닐까. 처음부터 '네가 어떤 모습이건 너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에 상관없이 몰려오는 속상한 감정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제 줄리와 놀아주며 문득  '어쩔 도리 없는' 감정이 어쩌면  마음 어딘가에 꼬여있는 오만함이 삐져나와 묻어있는  아닐까 었다. 줄리는 그제나 지금이나 그대로, 아니 나를  사랑해주며 꿋꿋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대체 나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겉모습으로 줄리를 측은한  바라보나.


그래서 오늘은 신발장 제일 아래 칸 카메라 가방에 넣어둔 SLR 카메라를 꺼내 가장 좋아하는 35mm 렌즈로 줄리의 모습을 담았다. 카메라 액정 안에 비친 줄리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더 이상 줄리의 귀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이제 감정이 가득 담긴 줄리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있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더라도 나의 남은 인생보다 짧은 게 묘생이니, 앞으로는 부지런히 꼬박꼬박, 오만하게 마음 아파하지 말고 줄리의 모습을 담아야지. 이 순간도, 줄리도 오래오래 기억하고 간직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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