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나라의앨 Oct 17. 2021

이 시대의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경의와 감사를

가사노동의 숭고함에 대하여


처음으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신생아•산모 건강관리사업'을 신청해 한 달간 서비스를 이용했다. 쉽게 말해 신생아 케어를 돕고 출산 후 산모의 몸조리를 위해 관리사가 집으로 와서 집안일을 해주는 것이다.


첫째 때는 조리원 퇴소 후 곧장 친정으로 향해  3개월 가까이 산후조리를 했기에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 이번엔 첫째도 있고 집에서 몸조리를 해야 하니 고민 끝에 한 달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 달이긴 하지만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20일이다.)


본 서비스 비용으로 치면 월 300만원 가까이 되는데 정부지원 사업이다 보니 총금액에서 소득에 따라 정부에서 일부 지원해주고 나머지를 본인부담금으로 내는 방식이다. 본인부담금이 적은 편이라 최대 서비스 이용기간인 한 달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관리사님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신다. 기본적으로 아이 케어와 식사 준비, 집안일을 해주신다.


아침에 오시면 산모인 내 아침밥을 차려주신 후에 청소를 하고 점심 준비를 하신다. 단순히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반찬을 만들고 요리를 해주신다. 내가 먹고 싶은 걸 생각해서 (물론, 산모 건강 회복에 도움 되고 모유수유에 좋은 음식으로^^) 장을 봐 두면 뚝딱뚝딱 만들어주시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난 한식을 워낙 좋아해서 밥에 국, 반찬을 다양하게 먹었고 가끔 특식(?)으로 찜닭, 수제비, 잔치국수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큰 아이가 있는 경우 등/하원도 시켜주신다. 하지만 우리는 등/하원을 나와 남편이 번갈아가며 맡아서 했다. 물론 아이 등원 전 한 시간, 하원 후 한 시간 정도는 관리사님이 큰 아이와 놀아주셨다. 큰 아이가 관리사님을 너무 좋아하고 잘 따랐고 매일같이 놀자고 졸라댔다.


관리사님의 휴식시간은 1시간인데 이때 잠심 식사도 하시고 잠깐 쉬는 타임. 그런데 사실 아기가 울면 또 바로 안아주시고 하다 보니 제대로 1시간을 쉬신 적이 없는 것 같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점심식사 후 커피를 꼭 내려드렸고 과일 등 간식을 먹을 따 관리사님 것도 따로 챙겨드리곤 했다.


오후에는 빨래를 돌리고 또 마른빨래는 개키고 저녁거리를 준비하시면서 중간중간 아이를 돌봐주셨다. 아이 목욕도 매일 시켜주신다. 바로 저녁식사를 할 거라면 저녁상까지 차려주고 퇴근하시는데 우리는 저녁밥을 좀 늦게 먹는 편이라 반찬만 해주시고 차려먹는 건 우리가 알아서 했다.


9-6 꽉 채워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해주시다니, 너무 고맙고 또 좋았다.



가정생활의 유지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하여 필요한 노동


‘가사 노동’의 많은 정의 중 하나다. 그렇다. 가사 노동은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리 잘해도 사실 티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아니 하루만 게을리 해도 티가 확 난다. 하루라도 청소를 안 하면 집안 곳곳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고 며칠 빨래를 돌리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어 옷장을 뒤적이게 된다. 하루 세 끼 먹는 밥은 특히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위 정의에서처럼 가사 노동은 다른 활동을 위한 근간이 되는 활동이다. '누군가'의 가사 노동이 없다면 우리는 일상을 누릴 수 없다.


그 '누군가'는 사실 '누구나'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또 지금까지도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옛날에야 남자가 밖에서 일하고 돈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애 키우고 집안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여자도 남자만큼, 아니 때로는 더 많고 활발한 사회활동, 경제활동을 하는데도 오늘날 수많은 여성의 머릿속은 '오늘 뭐 해 먹지?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아이도 씻기고 준비물도 챙겨야 하네'등의 생각으로 가득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남편과 가사 노동을 아주 공평하게 같이 하는 편이다. 밥은 주로 내가 하는 대신 남편이 설거지를 도맡아 해 주고 한 사람이 빨래를 돌리면 다른 사람이 빨래를 널고 뽀송하게 잘 마른빨래를 걷어 마주 앉아 함께 개킨다. 청소기 돌리는 것도 아이 등/하원도 남편 담당이다. 화장실 청소는 내가 한다. 큰 아이 목욕은 남편이, 작은 아이 목욕은 내가 시킨다. 재활용 버리는 것은 남편 담당이고 쓰레기는 외출하는 사람이 나가면서 버린다.


물론, 이런 업무 분담은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한 사람이 바쁠 때 다른 한 사람이 기꺼이 더 많은 부분을 감당할 때도 있다. 이건 나와 남편 모두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일하는 개인사업자이자 프리랜서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가 직장인으로 맞벌이를 하며 살아갈 때 집안일을 이런 식으로 '함께' 하지 못한 채 한 사람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택할 것이다. (어쩌면 미리 그 길을 선택했는지도...^^) 그만큼 부부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우리 집 안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같이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부분이다.


나도 남편도 대단한 살림꾼까지는 아니지만 별 다른 일정이 없을 땐 같이 사이좋게 무리 없이 집안일을 소화해내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몸을 움직여하는 가사 노동이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일정이 잡히고 특히 바빠지는 봄가을 시즌에 가장 먼저 소홀히 하게 되는 게 청소와 빨래고 집에서 밥 해 먹는 게 큰 스트레스가 되는 게 사실이다. 자연스레 냉동식품과 배달 음식 먹는 날이 많아지곤 한다.


내가 슈퍼우먼이 되거나 남편이 슈퍼맨이 되어 일과 육아와 집안일까지 척척 잘 하내면 제일 좋겠지만 물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부담이다. 이제 둘째까지 더해지니 부담도 가중되었다. 이번에 관리사님을 만나면서 소위 말하는 '사람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 전에는 내가, 우리 부부가 조금 더 애쓰면 해낼 수 있는 일에 '굳이' 돈을 쓰고 집에 사람을 들이는 게 어쩐지 좀 꺼려졌었다. 그런데 둘째까지 태어나면서 '조금 더 애쓸' 에너지마저 바닥나면서 이럴 때 내가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영역을 누군가가 해결해준다면, 그래서 내 몸이 조금 편하고 스트레스도 조금 덜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하고 가사 노동 일부를 해줄 분을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게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것도 업무 분배 차원에서 본다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혼자 다 잘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직접 하되 내가 잘하지 못하는 건 그 일을 잘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 대신 무슨 일을 누구에게 얼마큼 맡길지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세우는 건 내가 혹은 부부가 지혜롭게 잘 결정해야 할 부분이다.




관리사님이 오시던 마지막 날, 서비스 비용은 업체에 이미 지불한 상태였고 추가 비용을 관리사님께 직접 드렸다. (큰 아이와 남편에 대한 추가 비용이었다.) 현금을 예쁜 봉투에 담아 건네는데 마음이 참 좋았다. 가사 노동이 누군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만만한 것이 아니라 그 노동에 값을 매겨 하루 종일 (누군가의) 집안일을 해준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으신다는 생각에 기뻤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도 기분 좋았던 건 처음이지 싶다.


'가사 도우미' '도우미 아줌마' '이모님'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에게는 방문하는  가정이 일터이고 직장이다. 그분들의 노동 덕분에 요리로 스트레스받는 누군가는 맛있게 밥을 먹을  있고 청소로 스트레스받는 누군가는 깨끗한 집에서 생활할  있게 된다. 집안일은 누구나, 아무나   있는 쉬운 일로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모든  척척  해내는 과거의 그리고  시대의 여성과 엄마들, 간혹 아빠들도 있다. 가족의 짜증 그리고 때로는 무시마저도 묵묵하게 받아내며 매일의 가사 노동을  나가는 이들. 그중  명인 우리 엄마에게 새삼 고맙고  고맙다.


반복적이고 해도  안나는 일을 매일 같이 묵묵하게 해내고 계신  시대의 모든 '가사 노동자'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사람이 '' 집에서  받고 가사 노동을 하는 분이라면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일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보수로 기꺼이 가사 노동을 해내는 가족이라면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감사와 존중을 받을  있기를 바란다.  가족이 참여하고 함께 애쓰고 있다면 서로에게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여줄  있기를.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 '에서 하는 수많은 일이 헛되지 않음을,  일이 대부분의 사람이 '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 있는 일임을 기억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