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빛을 그리다 展 - 영혼의 뮤즈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었던 8월 어느 날의 일이다. 뱃속 아이가 주수 대비 커서 빨리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많이 걸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 아직 야외에서 걷기는 너무 더워서 실내로 가야 했다. 그런데 마침 월요일이라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대부분 휴관. 썩 내키진 않았지만 딱히 다른 옵션이 없어서 잠깐 바람 쐴 겸 일산으로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를 보러 갔다.
생각보다 규모도 작고 미술작품에 대해 많은 걸 알지도 못하고 보는 눈도 딱히 없지만 생각지 못한 포인트에서 감정 이입돼서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 카미유와 아들을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리는 순간 모네가 얼마나 행복했을까 싶었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저도 모르게 붓을 내려놓고 미소 짓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그림에 담아낼 때 정말 행복했을 것 같다.
내게 모네는 따뜻하고 평온하고 예쁜 색감의 그림으로 익숙했는데 <카미유의 임종>을 그리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뮤즈’라고 할 만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을 담아내는 모네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전시를 보고 남편과 ‘살롱드모네’에서 음료를 마시며 감상평을 나누는데 남편도 카미유의 죽음을 그린 작품을 보며 감정 이입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죽음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큐(남편): 너랑 아이들 남겨두고 떠나는 고통과 괴로움보다는 혼자 남아서 겪는 괴로움이 그나마 덜할 것 같아. 물론 처절하게 살겠지. 조용한 곳에 혼자 가서 외로워하고 고독해하고 밥도 안 먹고 빨리 나도 데려가 달라고 하겠지.
앨(나):... (슬퍼서 눈물...)
난 둘 다 자신이 없다. 남편을 놓고 혼자 떠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아 살아갈 자신도 없다. 남편이 없는 걸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났다. 갑자기 그 상황을 상상하니 눈물이 났다. 카페에 앉아 펑펑 울었다.
앨: 난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어. 같이 동시에 하늘나라 가게.
큐: 만약에 내가 먼저 가게 되면 어떻게든 다시 올 거야.
앨: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Soul)>생각나네. 고양이로 오나? 아님 개? (웃겨서 눈물...)
호르몬 때문인지 몰라도 그렇게 눈물이 났다. 만삭의 몸으로 카페에 앉아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지나가던 사람이나 그 시간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싸웠거나 남편이 큰 잘못을 했거나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을 거다.
남편은 우리가 이래서 만났고 결혼한 거라고 했다. 내가 더위 먹었냐며 무슨 헛소리냐고 받아치면 더 못할 텐데 이렇게 울어주니 간지러운 말도 더 하게 된다며 좋아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이 사랑하고 더 용서하고 많이 웃고 현재를 누리며 살아야겠다. 어쨌든 오늘의 결론, 내편 남편이 최고다.
(아, 참고로 이 날 전시회 보며 걷고 카페에서 울고 다음 날 밤에 둘째가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